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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사진 damian 열린마당톡 2014.02.08 신고
너무나 평범한 '악'의 얼굴
지난주 AP통신을 타고 전세계에 전파된 사진 한 장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이 사진속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평범한 어느 가족의 초여름 가족나들이에서 찍었을 법한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낚싯대를 어깨에 걸치고 웃고 있는 중년남자의 옆에는 아내가 다소곳이 미소짓고 있고, 그 앞에는 단발머리와 금발머리를 땋아내린 두 여자아이, 그리고 몸에 맞지 않게 약간 짧은 듯한 소매의 재킷에 반바지 차림을 한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가족사진이 유독 나의 눈길을 끈 이유는 이 사진속의 중년남자가 다름아닌 2차대전 당시 나치친위대 최고 지휘관으로서, 600만에 이르는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한 최고책임자 하인리히 힘러였기 때문이다.

최근 독일의 유력 일간지 “디 벨트(Die Welt)’는 새로 발견된 힘러의 사진, 편지글, 메모 등을 모아 총8회에 걸친 연재시리즈를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진들중 하나가 바로 위에 언급한 사진이다. 이 사진들 중에는 딸아이가 들꽃들을 꺾어모으는 모습, 힘러가 아기사슴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 호수에서 목욕하는 모습등 여느 가족이 주말나들이 때 찍었을 법한 그런 단란한 가족 나들이의 모습들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힘러의 사진과 편지글들에 대한 보도가 나오기 열흘전 뉴욕타임즈에는 한 일본인 남자의 부고기사가 사진과 함께 큼지막하게 실렸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 29년동안이나 필리핀의 루방섬 정글에서 투항을 거부하고 버텼던 일본제국 육군 소위 오노다 히로가 그 주인공이었다.

오노다소위는 일본군 정보장교로서 1944년 12월 필리핀 루방섬에 투입되었고, 1945년 2월 연합군이 루방섬을 점령하면서 대부분의 일본군이 잡히거나 전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명의 동료와 함께 정글 깊이 숨어들었다. 그가 직속상관 다니구찌소령으로부터 마지막 받은 명령은 “자리를 지키고 끝까지 항전하라.”였고, “3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무슨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너를 구하러 돌아올 것이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1972년10월 오노다는 명령받은 ‘게릴라전 수행’의 일환으로 필리핀 농가를 습격하여 노적가리에 불을 지르다 출동한 현지경찰의 총에 맞아 마지막 동료도 사망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59년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망처리한 오노다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호기심이 발동한 스즈끼 노리오라는 한 대학생이 정글로 찾아가 오노다를 만나 종전소식을 알리면서 설득했으나 오노다는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며, 자기는 오직 직속상관의 명령만 따를 뿐이라고 고집을 부렸다. 스즈끼는 수소문끝에 당시 직속상관 다니구찌소령을 찾아 같이 루방섬을 다시 방문했고, 오노다는 오랜 설득끝에 직속상관의 명령에 따라 마지 못해 투항했다.
22세에 전장으로 떠났던 청년 오노다는 52세가 되어 낡은 군복을 입고 일본으로 돌아와 ‘살아있는 일본정신’의 상징으로 추앙되어 국민적인 영웅대접을 받았다.

나는 힘러와 오노다에 관한 두 기사를 보면서, 일종의 허탈감같은 걸 느꼈다. 그토록 악명높은 유대인대학살의 최고책임자가 머리에 뿔달리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불거진 악마의 모습도 아니고, 하다못해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을 한 독일군 장교의 모습이 아닌 너무나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모습을 하고 불쑥 우리 앞에 얼굴을 내밀 때의 그 당혹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또 우리에게 그토록 잔혹하게 몹쓸 짓을 많이 하고, 온갖 상상하기조차 몸서리쳐지는 생체 실험을 자행한 일본군의 얼굴이 단지 주어진 일에 충직한 어찌보면 보통의 우리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음이 정말 당혹스럽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나치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기록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서 이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고 썼다. 아이히만은 “그 시절에는 ‘너의 아버지는 배신자’라는 말을 들었다면 친아버지라도 죽였을 것이다.”, “부하는 단지 명령을 수행할 뿐”이며, “나의 죄는 순종했다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또 “만약 내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사례들를 보면,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유대인 대학살이나 731부대의 생체실험과같은 끔찍한 일들도 아이히만이나 오노다와같이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별다른 생각없이 충직하게 수행하는 어찌보면 평범한 직업인들이 모여서 저지를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이 두 사람에게서 우리는 그저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할 뿐인 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만 볼 수 있을 뿐, 광기어린 악마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듯 악마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우리 곁에, 아니 우리 안에 늘상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이런 속성은 실험자들에게 단순한 의학실험이라고 설득하여 다른 사람에게 수백볼트의 전기고문을 가하게 한 스탠리 밀그램의 심리실험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일본의 학교들에서 만연하는 ‘이지메’현상이나, 우리나라의 ‘왕따’현상들도 그 가해학생들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이 평소에는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한 학생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몹쓸 짓도 여럿이 모여서 같이 하게되면 어느새 개개인의 원래 착한 모습은 없어지고 집단으로서의 광기와 악마성이 쉽게 발동되는 것을 본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결국 우리 인간들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몸속 어디엔가 이런 악마성을 숨기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어떤 환경과 계기가 주어지면 숨겨져 있던 악마성이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속의 이런 악마성이 어느날 불쑥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이 철저하게 잘 이뤄진 정치/사회체제를 유지하고, 국민들을 집단광기로 몰아가지 않을 올바른 지도자를 뽑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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