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랑 루주 뮤지컬은 6월 30일부터 거의 두 달을 넘게 할리우드 판타지 시어터에서 공연을 했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다시 보는 뮤지컬로 감회가 새롭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흥행작으로 뮤지컬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총 10개 부문 토니상 수상했다. 십 년의 제작기간이 걸린 작품이라고 하며, 2019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시작하여 코로나로 중단되었다가 안 보면 후회할 거라는 입소문에 우리 식구는 공연이 끝나는 바로 전날 뒤늦게 관람을 하였다.
극장은 언제 코로나가 있었냐는 듯 빈자리 하나 없이 전 좌석이 꽉 찼다. 평소의 뮤지컬을 보러 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매표소 직원들은 마치 파리의 물랑 무즈 나이트클럽에 입장을 시키듯 입구에서부터 시끌벅적하며 소란하다. 관객 또한 카바레에 즐기러 가는 여성들처럼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사람들도 많다.
물랑 루즈를 본 소감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보다 더 화려한 공연을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나름대로 수많은 뮤지컬, 라스베가스 오쑈, 오페라. 신연 아크로바틱, 발레, 컨템포 로리 등 공연을 보았지만 참으로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물랑 루즈는 빨간 풍차라는 뜻으로 내용은 영국 작가 크리스티앙과 팜프 파달의 창부 샤틴의 비극적인 로맨스 이야기다. 스토리 전개가 마치 오페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뜻 보기에는 화려하고 코믹스럽지만 내면에 세계를 드려다 보면 슬프며 깊은 사색에 빠지는 게 하는 작품이다.
19세기 초 좋았던 시절이라고 일컫는 프랑스 벨 에포크( Belle Epoque) 시대의 정점에서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무대 뒤에 댄서들은 가난, 생존을 위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야 했고, 데미 몽드 ( Demimonde)와 불리는 주인공 샤틴같은 여자는 귀족과 접촉만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 시대는 발레리나들도 마찬가지였다. 발레의 암흑기 그 시대를 비꼬듯 무대 뒤의 서있는 후원자를 그렸던 드가의 “ 에투왈 ” 과 마네의 “ 올랭피아 ” 그림이 오버랩되면서 마음이 씁쓸했다.
우리가 열망하는 화려한 무대는 환상이고 겉모습이다. 무대 뒤는 고독과 자유, 사랑, 해방을 찾는 보해미안 라이프의 철학사상을 말한다. 뮤지컬 속 이야기는 내 안에 감춰져 있던 이성과 감성을 잔잔히 두둘긴다. “ 한번뿐인 인생 너무 애쓰지 말고 너도 물랑 무즈에 와서 즐기면서 살아. ”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오페라와 달리 뮤지컬은 확실히 신나고 대중적이다. 어쩌면 한 장면마다 그렇게 절묘하게 각종 노래를 패러디하며 딱 맞추어 노래를 붙여 놨을까? 내가 들어보고 아는 노래는 전부 다 나온 거 같다. 다이아몬드를 사랑하는 메릴린 먼로의 명장면, Come What May’나 ‘Your Song’, ‘Lady Marmalade’ 마돈나, 시아, 비욘세, 레이디 가가, 퀸 , 아델, 엘비스 프레슬리, 휘트니 휴스턴 등 세계적인 히트팝을 리믹스하고 , 오페라, 클래식, 랩 등 수도 없이 나온다. 팸플릿을 보니 70여 개의 팝 명곡이 나오고 노래 사용 허가를 받는데도 몇 년이 걸렸다고 한다.
뮤지컬에서 빠질 수 없는 건 당연히 춤이다. 발레, 재즈, 캉캉춤, 다양한 장르의 춤이 나온다. 실제로 파리의 물랑 무즈의 댄서 60여 명은 발레를 기본적으로 연습하며 촤고의 훈련을 받은 전문 댄서들로 구성되어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뮤지컬 역시 피루엣 턴, 점핑, 그랑 바트망, 발레의 엄격함 속에서도 연속적인 다양한 무용 안무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국에 있는 식구들에게 카톡으로 공연 사진을 보냈더니 엘에이는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부러워한다. CJ ENM과 인터파크의 공동 제작으로 올 12월에는 한국에서도 공연을 한다고 한다.
공연을 보면서 나는 칠 년 전 파리 여행을 갔을 때를 생각했다. 물랑 무즈 앞을 지나갔고,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 오 샹젤리제” 하며 콧노래를 불렀고,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예술가들의 체취를 느끼며 즐거워했던 파리의 밤을 회상하며 “ 다시 한번 유럽여행을 꼭 가야지!”하고 다짐을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극장이 카바레 안의 분위기를 만들어서 그런지 내 옆좌석에 앉은 육중한 체격의 남자와 주의의 몇몇 사람들이 흥겨운 나머지 노래를 따라 부르고 몸을 흔들고 해서 공연 내내 나는 멀미가 났다.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갈 때 시작 전에 노래를 따라 부르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하는 것처럼 뮤지컬에서도 방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관람 태도가 평상 와 사뭇 다르다. 술도 판다. 나이트클럽에 온 거 같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어쩌면 물랑 무즈는 이렇게 정신없이 관람히는게 정상인 거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