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내 마음의 隨筆] 직관(直觀)과 본능(本能) 그리고 확률(確率)

2021.10.04

직관(直觀)과 본능(本能) 그리고 확률(確率)


지난 주말 나는 1938년에 문을 연 단골 포도밭에 오랜만에 갔었다.  벌써 이 포도밭과의 인연도 20년이 되었다.  마침 그날이 포도를 직접 딸 수 있는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소식도 듣고 하여 가족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간 것이었다.


바구니와 포도를 따는 기구를 받아들고 여느 해처럼 나이아가라 품종 (연두색의 단포도)과 콩코드 (짙은 보랏빛의 보통 포도)를 딸 참이었다.  나이아가라 포도부터 슬슬 따면서 그 향긋한 단맛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취해있던 차에 포도를 따고자 잎사귀 밑에 손을 조심스럽게 집어 넣었더니 뭔가 따끔하게 내 손바닥을 강하게 찌르는 게 있었다.


직관에 의해 나는 그 것이 벌에 쏘여 순간적으로 갑자기 따끔하게 전해오는 느낌이라는 것을 알았다.  본능에 의해 쏘인 부분을 얼른 찾아 보았더니, 꽤 큰 벌의 침이 맹렬하게 살갗을 뚫고 들어가 박혀 있음을 알고 나는 손톱으로 그 침을 재빠르게 빼내었다.   이는 어렸을적 산과 들을 노닐며 친구들과 돌아다니다 벌에 가끔 쏘여본 겸험이 있는 나로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얼른 농원주인인 나의 오랜 친구 David에게 달려 갔더니 자기 딸더러 baking soda를 빨리 물에 개어 벌레 쏘인데에 충분히 발라 달라고 하였다.  정말 그들이 아주 신속하게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에 나는 매우 감탄하였다.  아울러 내가 집에 돌아갈 때에는 좀 아리고 아플테니 통증을 더 완화하기 위해 친절하게 얼음주머니까지 즉시 만들어 주었다.  아마도 2-3일 정도는 부기가 있고 좀 아플꺼라는 말도 아울러 해주면서.  


어떻게 이렇게 응급대처법을 잘 아느냐고 물어보니 딸은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것이라고 하고, David는 웃으면서 자기는 어릴 적 포도원에서 일하며 하루에 몇번씩 벌에 밥먹듯이 무수히 쏘이곤 했다고 내게 말해 주었다.   


어찌나 고마웠던지…  미국인들이 응급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 야무진 한국벌에 쏘인지 근 50년만에 미국벌에 한번 쏘여보니 어릴적 철모르고 친구들과 밤이 되는 줄도 모르고 자연을 쏘다니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었다.


벌에 쏘일 확률과 그 때 응급처치를 빨리 해줄 수 있는 고마운 사람을 만날 확률, 그리고 그 응급처치에 쓰일 물품을 보유하고 있을 확률을 생각하니 우리는 모든 일들을 철저히 준비하고 유사시에 정해진 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에 따라 잘 대비해야 함을 나는 이번에 벌에게 쏘이면서 몸으로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농익은 맛있는 포도를 먹으며 친구 가족의 친절과 따스한 도움의 손길을 머리 속에 떠올리면서 나는 포도의 향긋하고 깔끔한 단맛에 느긋하게 취해 본다.   


2021년 10월 4일


崇善齋에서


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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