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隨筆]
<두 개의 봄, 두 개의 마음>
— 한국의 봄과 버지니아의 봄을 지나며
봄은 어디에나 온다. 그러나 봄을 맞이하는 방식은 그 땅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정신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나는 한국의 봄과 미국 Virginia의 봄을 오가며, 같은 계절이 전혀 다른 표정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하나는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피어나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일상 속에서 스며든다.
1. 한국의 봄 — 공동체적 기억과 의례의 계절
한국에서 봄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농경 문화를 통해 축적된 시간의 철학이자, 공동체적 리듬의 회복이다. 입춘이 지나고 매화가 피고, 산과 들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번질 때 사람들은 “봄이 왔다”고 말한다. 봄은 자연의 변화이면서 동시에 집안의 대청소, 묵은 기운을 털어내는 의식,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가족 단위의 시간이다.
유교적 전통 속에서 계절은 도덕적 질서와 연결되었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순환은 인간 삶의 책임과 근면을 상징했다. 그래서 봄은 ‘희망’ 이전에 ‘의무’와 ‘준비’의 계절이었다. 학생들은 새 학기를 맞고, 직장인들은 인사 이동을 겪으며, 사회 전체가 동시에 출발선에 선다. 봄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시작하는 계절이다.
또한 한국의 봄에는 정(情)의 문화가 짙게 깃들어 있다. 벚꽃 아래에서 가족이나 친구와 음식을 나누고, 산에 올라 진달래를 바라보며 도시락을 펼치는 풍경은 자연을 매개로 관계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자연은 감상의 대상이기 이전에 ‘함께 있음’의 공간이다.
2. 버지니아의 봄 — 개인적 성찰과 일상의 회복
반면 버지니아의 봄은 조금 더 조용하고 사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Williamsburg의 고즈넉한 거리나 Virginia Beach의 바닷가를 걸어보면, 사람들은 봄을 맞이하기 위해 특별한 의식을 치르기보다는 각자의 일상 속에서 천천히 계절을 받아들인다. 잔디를 깎고, 집 앞 정원을 가꾸고, 공원을 산책하며 햇살을 즐긴다.
미국적 전통, 특히 청교도적 유산은 자연을 하나의 개인적 성찰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Henry David Thoreau가 자연 속에서 자아를 성찰했듯, 이곳의 봄은 공동체적 의례보다는 개인적 회복과 연결된다. 누군가는 러닝화를 신고 강가를 달리고,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자연은 관계의 장이라기보다 사색의 배경이 된다.
버지니아의 봄에는 실용성과 자율성이 배어 있다. 사람들은 날씨가 따뜻해지면 바깥 활동을 늘리고, 마당을 손질하며, 삶의 균형을 조정한다. 특별히 ‘봄맞이’라는 집단적 의식은 없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새롭게 정비한다. 공동체가 동시에 움직이는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개인이 각자의 속도로 봄을 맞이한다.
3. 동서양 봄 문화의 철학적 대비
한국의 봄이 관계 중심적이고 집단적이라면, 버지니아의 봄은 개인 중심적이고 자율적이다. 한국에서는 자연이 인간 사회의 질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계절의 변화는 곧 사회적 리듬의 변화이다. 반면 버지니아에서는 자연이 개인의 내면을 환기시키는 공간이 된다.
한국의 봄이 ‘함께 나아감’이라면, 버지니아의 봄은 ‘각자 다시 시작함’에 가깝다. 전자는 공동체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후자는 개인적 자율성을 확장한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두 문화는 서로 다른 역사와 철학 위에서 꽃피었기 때문이다.
4. 두 개의 봄이 내게 가르쳐 준 것
나는 한국의 봄에서 ‘관계의 소중함’을 배우고, 버지니아의 봄에서 ‘내면의 균형’을 배운다. 한국에서는 함께 웃고 함께 출발하는 힘을 느끼고, 버지니아에서는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얻는다.
봄은 어디서나 희망의 계절이지만, 그 희망의 표현 방식은 다르다. 한국의 봄이 활짝 핀 꽃길처럼 다정하고 분주하다면, 버지니아의 봄은 햇살이 길게 드리운 잔디 위처럼 여유롭고 사색적이다.
그러나 결국 두 봄은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겨울은 가고, 삶은 다시 시작된다는 것. 동양과 서양, 공동체와 개인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의 토양 위에서도, 봄은 동일하게 우리 마음에 빛을 켠다. 그리고 나는 그 두 개의 빛 사이를 오가며, 조금 더 넓어진 시선으로 계절을 바라보게 된다. ***
2026. 2. 21.
崇善齋에서
{솔티}
English Translation: https://www.ktown1st.com/blog/VALover/3484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