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hime di Lavaredo) 미주리나 호수(Lago Misurina) 알프스는 유럽의 8개국에 걸쳐 있는 위대한 산맥이다. 그 중 유명한 곳으로는 프랑스의 몽블랑, 독일의 츄크슈피체, 스위스의 마테호른과 융푸라우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알프스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이탈리아의 돌로미티 산군이다. 나는 이곳을 방문하고 ‘세계 최고의 비경이다’라고 감탄하며 며칠동안 꿈속을 헤메는 듯 지냈다. 마테호른, 융푸라우, 츄크슈피체 등에서 받은 감동은 돌로미티에서 받은 감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돌로미티는 신비스러우며 광대한 알프스의 숨겨진 여행지였다. 돌로미티는 프랑스의 데오다 그라테 드 돌로미외(Déodat Gratet de Dolomieu)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지질학자겸 육군 사관이던 그는 수 년 간 돌로미티에서 지질을 연구한 후 파리 광산 학교의 교수가 됐다. 그가 발견한 탄산염광물의 하나인 백운암(돌로마이트)도 그의 이름을 기념해 지은 것이다. 돌로미티는 방문해야 할 곳도 많지만 1순위에 꼽히는 곳은 단연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다. 3개의 봉우리를 뜻하는 트레 치메는 돌로미티의 상징이자 하일라이트라 말 할 수 있다. 북쪽 방향에서 바라 보면 이탈리아어로 작은 봉우리인 치마 피콜라(Cima Picola, 2,857m)는 왼쪽. 중앙에는 거대한 봉우리를 뜻하는 치마 그란데(Cima Grande, 2,999m)가 우뚝 서있다. 서쪽 봉우리로 불리는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 2,973m)는 오른쪽에 있는 봉우리다. 코르티나 담페초에서는 들어 가는 입구까지 20분이면 갈 수 있다. 가는 길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장이 보인다. 다른 목장에서는 노새(Mule)들이 풀을 뜯고 있다. 소와 노새들은 행복에 겨워 꼬리를 흔들어 가며 그들만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1,756m 높이에 위치해 있는 미주리나 호수 뒤로는 거대한 트레 치메 암봉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1956년 동계올림픽 당시 스피드 스케이팅 대회가 열렸던 장소다. 실내 스케이트장이 아닌 자연빙에서 열린 스케이트 대회로서는 이것이 마지막 대회였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논두렁 얼음썰매와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던 경험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의 국민가수 클라우디오 발리오니는 미주리나 호수(Il largo di Misurina)를 멋진 노래로 만들었다. 후렴에 합창까지 동원시키니 가곡처럼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게 됐다. 그러나 가사를 자세히 살펴 보니 노래 속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담겨져 있었다. 옛날 돌로미티를 다스리던 늙은 왕에게 미주리나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왕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사랑스런 공주는 왕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언제나 발랄하고 호기심 많던 공주는 마법의 거울을 갖고 싶어 한다. 산 속에 요정이 갖고 있는 마법의 거울은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이에 왕은 공주의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해 그녀의 손을 잡고 요정에게로 향한다. 왕의 이야기를 들은 요정은 처음에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하지만 거듭되는 요청에 왕이 산으로 변해 주면 거울을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당시 요정은 아름다운 가든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햇볕을 막아 줄 나무와 산이 없었던 것이다. 산으로 변한다는 것은 이세상에서 산으로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왕은 공주를 바라 보며 흔쾌히 수락하고 공주는 환호하며 거울을 왕에게서 빼앗는다. 그러자 왕의 몸이 점점 커지며 머리는 나무로 변하고 주름은 크레바스(Crevasse)로 변하기 시작했다. 왕이 산으로 변하자 그의 손을 놓친 공주는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상상하지 못했던 왕은 추락해 가는 공주를 바라 보며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눈물은 전나무와 풀 밭 사이를 세차게 흘러 미주리나 호수가 됐다. 늙은 왕의 슬픈 눈물로 만들어진 미주리나 호수. 햇빛이 비추는 날에는 마법의 거울이 반사되어 호수는 반짝이는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호수를 떠나 위로 조금 더 올라가니 안토르노 호수(Antorno Lake)가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미주리나 호수에서 보다 트레 치메 암봉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트레 치메 디 라바레도의 트레킹은 아우론조 산장(Rifugio Auronzo)에서 부터 시작된다. 서쪽에서 부터 돌기 시작하는 이 코스는 대체로 완만하여 남녀노소 구분없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가는 길에는 계곡너머로 마을과 호수가 보이고 이름없는 암봉들이 반가운 인사를 한다. 돌로미티 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고개를 돌아 마주치는 것은 아담하게 지어진 로카텔리 예배당(La chiesetta del Locatelli). 19세기에 치마 그란데, 마르몰라다, 소라피스 등을 초등한 폴 그로후만(Paul Grohman)의 돌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30분 정도 걸으니 트레 치메 암봉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는 라바레도 산장(Rifugio Lavaredo)이 보인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 커피, 맥주 등을 마시고 식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 산장에 앉으면 트레 치메(남벽)가 바로 앞에 보이니 세상에 이런 호사가 또 있을까? 트레 치메로 가는 길에는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눈에 띈다. 동쪽 방향에서 바라 보면 치마 피콜라가 가장 먼저 보이는 트레 치메 암봉군. 멀리 봐서는 그 위용을 느끼기에 부족하다. 하지만 앞으로 가면 갈수록 암벽은 거대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암벽을 자세히 살피니 뭔가 움직이는 물체가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 의문은 금새 풀렸다. 그것은 몇 명의 등산가들이 암벽을 타고 내려 오는 중이었다. *에밀리오 코미치(Emilio Comici)는 알피니즘의 예술가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산악인이다. 1933년 8월 13일과 14일에는 디마이 형제와 함께 치마 그란데 북벽을 초등했다. 550m 의 높이 중 180m가 오버행을 이룬 북벽은 80개의 하켄을 사용했다. 코미치는 등반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로프만 어깨에 맨 채 뛰어 오르듯 암벽을 오른다. 하산할 때의 그의 모습은 더욱 경이스럽다. 로프를 하켄에 고정시킨 후 거침없이 그는 몸을 날린다. 하늘로 뛰어 오른 그는 로프를 길게 늘이며 발을 가분히 딛고 또 다시 암벽에서 몸을 날리는 것이다. 그는 로프를 잡고 하늘을 나는 돌로미티의 천사였다. 1937년에는 홀로 북벽에 올라 3시간 30분 만에 치마 그란데 북벽 등반을 끝내기도 했다. 200여 개의 루트를 개척했으며 600개 암벽을 등반하고 6급 등반 시대의 막을 연 위대한 산악인 코미치. 그러나 1940년 10월 19일, 돌로미티 셀바의 암벽에서 천사의 날개짓은 끝을 맺었다. 친구 부탁으로 등반을 가르치던 낡은 그의 로프가 끊어지며 코미치는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 갔다. *전설과 함께 처절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돌로미티. 노을에 물든 트레 치메는 전설과 천사들의 안식처다. 마음이 따뜻해 지는 평온한 안식처. 여행팁: 돌로미티는 베네치아 또는 밀라노에서 렌트카로 떠나면 좋다. 최소한 5일, 2주 이상 머물러도 식상하지 않을 좋은 여행지다. 트레 치메에서 새벽과 노을을 감상하려면 로카델리 산장(Rifugio Locatelli) 또는 아우론조 산장(Rifugio Auronzo)에서 숙박하면 된다. http://www.three-peaks.info/en/alta-pusteria/shopping-pleasure/huts-rest-stops.html(산장 정보) http://www.dreizinnenhuette.com/ (로카델리 산장 이탈리아어 웹사이트) http://www.rifugioauronzo.it/ (아우론조 산장 영어 웹사이트) http://www.rifugiolagazuoi.com/Ing/Prenota/index.php(라가주오이 산장 예약) 글, 사진: 곽노은
*표시의 이미지(4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