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회태: 감성의 본질
Dr. Tatiana Rosenstein
허회태 (茂山, ‘무’는“무성한”, 산은“산”을 뜻 함)는 잘 알려진 한국의 서예가이자 현대예술가이다. 중국서예를 탐험하다 무산은 전통적 글쓰기를 넘어서 그 자신이 하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이를 새로운 수준의 예술적 표현으로 발전시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작품은 예술과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더 추상적인 형태를 취하게된다. 무산은 감성, 기분 및 다른 마음의 상태에 초점을 맞추고 서예의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예술적 자유를 탐구하면서 그들에 의해 부과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어떤 하나의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감정을 붓과 융합하여 자신을 표현한다.
허회태는 2005년에 2차원 붓글씨 그림을 몇몇 작품은 조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 3차원 예술품으로 바꾸어 이를 획기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티스트가 모델링하여 재료를 캔버스에 추가하여 객체를 생성하지만 이를 우리가 전통적인 조각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서예와 그림을 결합한 이 새로운 형태를 “Emography” (감성 + 서예 화풍)이라고 하며, 이는 글쓰기와 그림/회화의 현대적 구분의 경계를 초월한다. 무산은 작품의 표면을 텍스트와 그림요소로 보완하여 “저(低) 부조”라고볼수 있는 종이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는 한국의 전통 ‘한지’를 사용하여 이를 작은 형태로 꼬는데 이 위에는 붓글씨를 세필로 아주 작은 글자들이 쓰여져 있다. 한지는 뽕나무 껍질로 만들고 얇고 반투명하며 종이가 완전히 마르지 않았을 때 쉽게 누르거나 녹말을 칠하거나 접을 수 있는 종이를 말한다. 한지는 창조력을 자유스럽게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무산은 그의 작업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하고 있다.
먼저 주제에 관련된 많은 단어와 문장을 작은 종이에 쓴 다음, 스티로폼을 기준을 정하여 4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개별적으로 붓글씨로 쓴 종이를 붙이고 난 다음 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캔버스에 붙입니다. 이 과정은 나에게 우주를 만드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수많은 아주 작은 무의미한 조각들이 서로 통합되어 꽃으로 피어납니다. 이러한 섬세한 수작업은 제가 사람들과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한 감정코드를 심고 있는 것입니다.
특정 사회-민족 문화계층에 몰입하여 형성된 모든 예술가는 사회의 문화적 상징과 표현에 중점을 둔 특정 시청자에 대한 자신의 사회적공간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 무산의 예술과 작가의 견해를 이해하려면 그의 작품을 역사적 맥락에 두어야 한다. 한국인의 마음을 바꾸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는 1987년으로, 활발한 저항운동을 보여 주었고, 그 결과 대한민국 시민들은 마침내 민주주의를 수립할 수 있었다. 민족예술의 경우 이는 다원주의, 포스트모던 경향, 국제예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의 확산과 동시에 자기 문화의 독창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사회적 경향은 순수한 추상화에 대한 욕구와 같은 새로운 기능이나 강조된 표현성에 반영되며, 유럽, 특히 art informel (앙포멜)로 알려진 프랑스에서의 유사한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미국예술, 특히 액션페인팅의 영향은 의심할 여지없이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 장르의 가장 유명한 유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 학술적인 예술에 대한 저항은 1960년 말에 시작되었다. 이들은 앙포멜운동의 대표자들에 의해 주도 되었다. 예를 들어, 아방가르드의 거리전시는 경복궁의 외벽에서 이루어졌고 국립미술전 대안전시회가 근처에서 열렸다. 앙포멜예술가의 아이디어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정서성과 자발성은 합리성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다.
1970년대 한국미술에서 가장 큰 실험운동은 단색화 였는데 단색과 평평함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스타일은 Mark Rothko 또는 Clyfford Still의 컬러필드페인팅과 유사하다. 한국과 미국의 예술가들은 어떤 특정한 색들이 아니라 단색의 컬러필드를 묘사한다. 단색화를 면밀히 검토해보면 반복적인 얼룩 만들기와 없애기를 포함한 수많은 텍스처로 구성된 표면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단색화는 연필선을 반복하여 캔버스에서 흙을 제거하거나 그림의 일부를 긁어 다시 쓰고 설명함으로써 고대 동양의 철학계, 특히 불교의 아이디어를 사용하여 불교승려의 길고도 고통스러운 명상기술과 비교될 만하다. 1970년대 한국 실험예술의 역사에서 우리는 Avant-garde Group (AG) 또는 The Fourth Group과 같은 협회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평평한 그림이나 받침대의 조각과 같은 제한된 형식에서 예술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예술과 일상생활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새로운 창의적 표현방법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방가르드 그룹과 보수예술가의 대결은 1980년대에 민중예술과 같은 보수적 그룹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아방가르드운동은 의심할 여지없이 한국미술사에서 흔적을 남겼으며, 이는 다른 형태의 형상을 발견하려고 시도한 새로운 보수적 경향의 대표자들에게서 조차도 새로운 실험을 이끌어 냈다. 아마도 새로운 방향의 초현실성은 서양예술의 팝아트와 비교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예술가들은 주관적인 감정과 상징주의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서양화는 현대사회에 대한 숭배의 개념을 전승하는 데 열중했지만, 한국화는 주로 서구에서 자신의 존재에 집착하는 예술가를 양성하는 대신에 사람들의 존재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기를 원하는 것처럼 인간의 부족함을 자연으로 바꾸어 표현하고자 하였다. 1990년대 에는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화시대가 시작되었다. 예술가들은 해외여행을 더 자주 다니기 시작했으며 때로는 외국에서 수학하기도 하였다.
허회태는 1957 년 한국 미술계에 대한 저항이 시작되었을 때 태어났다. 아마도 그는 예술보다는 서예를 연구함으로써 더 안전한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작가자신에 따르면 그는 서예에 너무 몰두했다. 단지 태어난지 5 년 만에 그 자신의 첫 작품을 만들었던 것이다. 신동으로 알려진 그는 15 세에 서예대회에서 첫 대상을 받았다. 첫 개인전은 그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열렸다. 현대 한국미술의 세계화가 국제적으로 등장하고 현지 예술계가 다원주의적 의견과 실험의 기쁨을 위해 문을 열었을 때, 무산은 30 대 후반의 나이였다. 1990 년대 중반까지 그는 서예에서 알려진 모든 서체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로서는 마침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때가 찾아온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조선시대의 전설적인 서예가 김정희의 추사체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얼마나 잘 모방하더라도 기존서체로 그를 능가 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것을 시작 해야 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부분의 문자가 특정국가에서 사용 된 문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한 문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 세계로 통할 수 있는 문자로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새로운 형태의 예술은 서예, 회화 및 조각의 혼합이다. 그의 예술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에서도 똑같이 영향을 받았다. 그는 감성과 직관에 관여하여 사람들의 보편적 본능, 생각과 느낌을 바탕으로 한 형태의 인간 커뮤니케이션 도구, 즉 언어를 채택했다. 그는 존재에 대한 인간의 욕구에 뿌리를 둔 에로티시즘을 발견하고 존재하게 만든다. 그는 아이디어, 생각 또는 윤리가 지배하지 않는 유혹과 자연을 찾는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외음부의 아이콘이 보편적 인 삶과 창조, 욕망, 고통과 즐거움의 원천임을 느끼게 된다. 그의 초기작업은 대부분 흑백이다. 이러한 선택은 그가 서예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한국의 많은 예술작품에는 색상의 제약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무산은 또한 동양철학과 불교에서 영감을 얻어 환생과 이주의 개념인 출생과 환생의 순환을 탐구했다. 때로는 스타일의 유사성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아도 만들어지기 때문에 작가의 견해는 Zeitgeist(時代精神)에 의해 형성되었다.
나는 한국으로의 세 번째 여행을 통하여 무산의 스튜디오를 처음 방문했다. 서울의 강남에 위치한 아늑한 공간은 붓과 종이, 책, 두터운 도록, 그래픽 작품 및 그림, 조각 및 이모티콘 조각으로 온통 채워져 있었으나 모든 것이 순서대로 조화롭고 단순했다. 무산은 새로운 전시회를 위한 작품을 선택하고 숙고하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우선 하나의 캔버스가 먼저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표면은 파란색, 빨간색 및 노란색의 색상으로 덮인 세 개의 동일한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무산에 따르면 노란색은 믿음, 빨간색은 열정, 파란색은 평화와 안정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자신의 현실 속에서 살아있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고도로 정제된 형태의 아름다움으로 미니멀리스트 예술세계를 떠오르게 하였다. 좀더 가까이 접근하면 표면이 소용돌이처럼 움직이고 소용돌이 치는 것처럼 가장자리를 향해 색상이 흐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은 때때로 오른쪽, 때로는 아래쪽으로 이동하여 공간, 선 및 질량의 율동감 있는 소용돌이를 만든다. 면밀히 살펴보면 캔버스의 일부가 작가가 손으로 쓴 자그마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갑자기 알 수 있었다. 수공예 보석과 같은 아주 조그만 것들로 구성된 제작과정에서의 고통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수많은 구호 활동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다층과 의미론적 다양성에서 그들은 절대적인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여기에서 객체는 여전히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더 개념적으로 보인다. 필자는 “생명의 꽃” (헤아림의 꽃길) 시리즈의 제목을 무산에게서 들었다. 그 이름은 그 자체의 예술적인 이야기이다. 이제 이 추상적인 형태로 나는 꽃이나 다양한 자연적 요소를 추측 할 수 있다. 다른 모양과 표면을 묘사한 수많은 선이 3차원을 형성하는 것 같다. 관람자는 이 끝없는 우주에 대해 지루해하지 않으며 같은 순간에 풀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수께끼는 새로운 의미해석을 만드는 관점에서 즉시 사라진다. 한 조각에서 나는 다음에 방금 항해하는 보트에서 떠난 것처럼 얼룩이 있는 수면을 닮은 짙은 남빛이 보인다. 캔버스의 일부는 “심장의 울림, no 5”라는 제목의 캔버스와 같이 더 단색적이다. 피는 꽃 뿐만 아니고, 태양이나 인생의 굴레까지 빛나고 있음을 본다. 가장 작은 세밀한 부분까지 모든 것이 예술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을 나는 조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묘사 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는 중심을 향해 돌진하는 입자들에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가운데에 보석이 표시되어 균일한 공간에 강한 빛이 반사되었습니다. 이 중심은 주인의 행동과 느낌을 반영하는 사람의 상징적인 마음이 됩니다. 그것은 공간에서 나와 자연과 나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작업의 시작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만들고, 욕망을 표현하고, 주고 받으며, 질문하고 대답하는 우주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에너지를 생동하게 하고 삶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조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다가오는 전시회에 포함 된 일부 작품은 “비상, 비비상 (非常, 非非想)” 과 같이 그림으로만 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여러 독립적인 형태는 인간의 형상을 상기시키고, 증가하고 끊임없이 증가하는 군중을 상기시킨다. 형태는 여성의 신체부위, 아기의 테두리 및 기존의 생명 생성과정과 같은 다양한 상징을 포함한 꽃과 같은 아름다운 모티브를 가지고 있다.
무산의 새로운 작품은 복합적 이다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몇 가지 스타일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렇ㄴ 것들은 현대 한국예술과 서예술 모두에서 인식할 수 있다. 19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의 단색과 편평함의 전통은 액션페인팅의 경향 뿐만 아니라, 특히 붓과 잉크로 수많은 예술가들의 공연을 회상함으로써, 또는 전체 작품이 하나의 대상이 되는 개념예술에 의해 명확하게 유추되어 설명될 수 있다. 생각과 감정에 중점을 둔 ‘추상적 표현주의’의 유산이다. 예술은 이제 바야흐로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허회태의 다양한 예술과 그의 수많은 실험은 삶의 연구에 대한 그의 호기심과 지칠 줄 모르는 기쁨을 말해 준다. 아마도 역사가와 미술비평가는 예술을 설명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작품들을 조직화하여 예술작품의 정확한 분석을 하기 위해 노력 한다. 감정의 본질을 사용하여 예술을 감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보통의 관람객은 그들처럼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이는 바로 무산이 희망하는 바이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예기치 않게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인식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원문 번역: 최영배, Regent University, USA)
참고 기사: The Nature of Emotions: Via Moosan, Huh Hwe-tae, Gwangju News, April 14, 2021. URL=https://gwangjunewsgic.com/arts-culture/exhibitions/huh-hwe-tae/
저자 소개: Tatiana Rosenstein 박사는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춘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999 년부터 국제 영화제, 디자인 및 패션 행사, 독일어권 및 외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주요 예술행사를 보도해온 영화학자이며 비평가 심사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대학원 연구지도교수는 Andy Warhol을 발견하고 그의 첫 번째 작품집을 출판한 것으로 유명한 Rainer Crone 교수입니다. 그녀는 유럽과 러시아, 중국과 한국을 아우르는 다양한 출판물에 여러가지 언어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 info@kino-kunst.de
Tatiana Rosenstein: Journalist, Writer, Columnist: http://www.tatiana-rosenstein.com/
작가 소개: 무산 회회태는 5세부터 한학을 배운 후 중학교 때부터 전국의 각종 서예대회에서 수상. 상명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1995년 국전 서예부문 대상 수상 및 국전심사위원과 운영위원 역임. 현재 중국 연변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석좌교수. 서예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Emogrphy라는 새로운 조형 체계 창안. 그의 새로운 조형 예술작품은 미국의 CNN channel, Great Big Story, ABC와 Fox 에서도 방영되어 소개된 바 있다.
Emography URL= https://www.youtube.com/watch?v=dYLrIFuUENI&feature=youtu.be
Artist URL=http://moosan.net
The Vibration of a Heart (심장의 울림), Huh Hwe-Tae(허회태), © 2021
Korean Paper (“Hanji”) and Mixed Media, 65cm x 60cm
Bed of Roses in Enumeration (헤아림의 꽃길), Huh Hwe-Tae(허회태), © 2021
Korean Paper (“Hanji”) and Mixed Media, 95cm x 53cm
The Vibration of a Heart (심장의 울림), Huh Hwe-Tae(허회태), © 2021
Korean Paper (“Hanji”), Jewelry, and Mixed Media, 130cm x 120cm
The Vibration of a Heart (심장의 울림), Huh Hwe-Tae(허회태), ©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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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d of Roses in Enumeration (헤아림의 꽃길), Huh Hwe-Tae(허회태), © 2020
Korean Paper (“Hanji”) and Mixed Media, 65cm x 60cm
Bed of Roses in Enumeration (헤아림의 꽃길), Huh Hwe-Tae(허회태), © 2020
Korean Paper (“Hanji”) and Mixed Media, 91cm x 75cm
Bed of Roses in Enumeration (헤아림의 꽃길), Huh Hwe-Tae(허회태), © 2020
Korean Paper (“Hanji”) and Mixed Media, 91cm x 76cm
The Vibration of a Heart (심장의 울림), Huh Hwe-Tae(허회태), © 2021
Korean Paper (“Hanji”), Jewelry, and Mixed Media, 130cm x 120cm
URL=https://m.youtube.com/watch?v=IgVvexYDBRw&feature=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