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隨筆]
부모님의 유산
사람은 누구나 삶의 어느 지점에서 ‘유산’이라는 단어와 마주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열어 보게 되는 상자이기도 하고, 살아 있는 동안에도 조용히 건네받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기도 하다. 유산은 단순히 남겨진 재산의 목록이 아니라,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자 한 삶의 방식이며 태도'이다. 그래서 유산의 중요성은 그 크기나 액수로 가늠되기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주는가에 따라 비로소 드러난다.
보통 유산이라 하면 집이나 땅, 돈과 같은 물질적 유산을 먼저 떠올린다. 물질적 유산은 삶을 안정시키는 힘을 가진다. 당장의 걱정을 덜어 주고, 선택의 폭을 넓혀 주며, 세상과 맞설 최소한의 무기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힘은 대체로 한 세대 안에서 소진되기 쉽다. 쓰면 줄어들고, 잘못 다루면 갈등을 낳으며,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갈라놓는다. 물질적 유산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해 주지는 못한다.
그에 비해 정신적 유산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준 성실함, 정직함, 타인을 대하는 태도, 실패 앞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바로 그것이다. 정신적 유산은 통장에 기록되지 않지만,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조용히 목소리를 낸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일 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흔들릴 때, 우리는 이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 기준에 기대어 판단한다.
물질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오늘의 세상에서 정신적 유산의 가치는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돈과 성과가 사람의 가치를 대신 평가하는 시대일수록, 인간다움은 쉽게 마모된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은 배울 수 있어도, 함께 살아가는 법은 저절로 익혀지지 않는다. 이때 부모가 남겨 준 정신적 유산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바로잡아 준다. 그것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정직하게 살아라”, “사람을 남기며 살아라”와 같은 말로, 혹은 말없이 보여 준 삶의 태도로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젊었을 때는 그 가치를 잘 알지 못한다. 부모의 말은 잔소리처럼 들리고, 그들이 지켜 온 원칙은 답답한 틀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세상에 부딪히며 살아갈수록, 그 말과 태도가 얼마나 단단한 토대였는지를 서서히 깨닫게 된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 유혹 앞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힘, 관계 속에서 신뢰를 쌓는 방식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을 통해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심어진 씨앗’이었음을 알게 된다.
옛말에 “재산은 쓰면 줄어들지만, 사람됨은 나눌수록 자란다”고 했다. 이 말처럼 정신적 유산은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또 다른 세대로 이어지며 살아 움직인다. 부모에게서 받은 정신적 유산이 나의 삶을 지탱해 주고, 언젠가 그것이 다시 다음 세대의 삶을 비추는 등불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상속일 것이다.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자식에게 재산을 남기는 것은 한 번 도와주는 것이지만, 올바른 정신을 남기는 것은 평생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 말은 유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것은 일시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기준과 태도, 즉 ‘흔들리지 않는 정신의 힘’이다. 부모님께서 남겨 주신 정신적 유산은 이미 내 삶 곳곳에 스며들어 나를 지탱하고 있다. 그 고귀한 가치를 어떻게 지켜 내고, 또 어떻게 다음 세대에 온전히 건네줄 것인지는 이제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자 몫이다. ***
2025. 12. 14.
崇善齋에서
{솔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