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隨筆]
簡易集(간이집) – 인공지능 시대의 보물 서적?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학문적 분석까지 수행하는 시대에 우리는 종종 질문한다. “과연 인간 고유의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단서는 16세기 조선의 지식인, 간이(簡易) 최립(崔岦, 1536–1593)과 그의 문집 『간이집』에서 찾을 수 있다.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이 고전은, 역설적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생생한 의미를 지닌 ‘보물 서적’이라 할 만하다.
최립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르네상스형 인물이었다. 그는 성리학자이자 시인이었고, 외교관이자 교육자였으며, 현실 문제를 깊이 고민한 실천적 사상가였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여러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융합형 지식인’이었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 강점을 가진 시대일수록, 이러한 인간형 지성의 가치가 더욱 또렷이 드러난다.
『간이집』에 담긴 최립의 사유는 철학, 문학, 정치, 외교가 서로 단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의 시와 산문에는 인간 내면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으며, 학문적 글에서는 현실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이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창조적 사고의 결과였다. 인공지능이 모방하기 어려운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AI는 기존의 데이터를 재조합할 수는 있지만, 시대적 고민과 인간적 책임을 바탕으로 한 통합적 사유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에 속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최립의 외교 활동이다. 그는 명나라와의 외교 현장에서 조선의 입장을 지적·문화적으로 설득하며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이는 언어 능력이나 의전 지식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상대 문명에 대한 깊은 이해,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상황에 맞는 창의적 판단이 결합된 결과였다. 오늘날 글로벌 네트워크와 인공지능 번역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도, 이러한 ‘맥락을 읽는 창의성’은 여전히 인간 외교의 핵심이다.
또한 최립은 교육과 사회 사상 면에서도 선구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는 학문이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보았으며, 인간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태도는 훗날 실학(實學)의 토대를 이루는 사상적 흐름으로 이어졌다. 『간이집』은 바로 이러한 초기 실학적 문제의식과 리더십의 흔적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더 빨리 계산할 수 있는가’보다 ‘어떻게 더 의미 있게 생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간이집』은 단순한 고전 문헌이 아니라, 창의성을 기르는 하나의 안내서가 된다. 최립의 사유 방식은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개인의 수양과 사회적 책임을 연결하며, 시대정신(Zeitgeist)을 읽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오늘날 융합 교육, 창의적 문제 해결, 인문학적 상상력이 강조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최립의 삶과 사상은 지적 활동, 외교적 성취, 그리고 실천적 철학과 사회적 리더십이라는 세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세 영역은 분리된 업적이 아니라, 하나의 창조적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정신은 특정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다움의 본질을 묻는 질문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결국 『간이집』이 인공지능 시대의 보물 서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뿐 아니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빠른 답을 제시하는 인공지능과 달리, 최립의 글은 독자에게 사유의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고, 연결하고, 창조하게 된다.
수백 년 전 조선의 지식인이 남긴 사유의 기록이 오늘날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공지능이 일상이 된 시대일수록, 인간 고유의 창의적 정신은 더욱 소중해진다. 그리고 그 정신을 길러주는 조용하지만 깊은 안내서로서, 『간이집』은 지금 이 시대에도 충분히 “보물 서적”이라 불릴 충분한 자격이 있다. ***
English Translation:
https://www.ktown1st.com/blog/VALover/348116
2025년 12월 29일
{솔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