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隨筆]
<늦추위 속에서 피어나는 정관(靜觀)의 봄>
이른 아침(早朝), 뒷뜰(後庭)에 나가 마주한 풍경(風景)은 고요(靜寂)하면서도 어딘가 긴장(緊張)된 기운(氣運)을 품고 있었다. 밤사이 스며든 늦추위(晩寒)는 봄(春)의 숨결(氣息)을 잠시 멈추게 한 듯, 공기(空氣)마저 투명(透明)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 가운데, 그간 고아(高雅)하게 피어나던 자목련(紫木蓮)은 차가운 기운(氣運) 속에서 몸을 움츠린 채 서 있었다. 마치 한순간(瞬間)의 시련(試鍊) 앞에 선 인간(人間)의 모습(模樣)처럼, 그 아름다움(美)은 더욱 절실(切實)하게 느껴졌다.
찬란(燦爛)하게 피어난 개나리는 노란 빛(光)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바람에 흔들렸고, 청순(淸純)한 수선화(水仙花)는 고개를 살짝 떨군 채 조용히 견디고 있었다. 자연(自然)의 모든 존재(存在)들이 각자(各自)의 방식(方式)으로 추위(寒氣)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진보랏빛 꽃(花)을 막 피워낸 히아신스(風信子) 역시 그 예외(例外)는 아니었다. 막 시작(始作)된 생명(生命)의 기쁨(喜悅) 위로 덮쳐온 차가운 공기(空氣)는, 그들의 시간(時間)조차 시험(試驗)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模樣)을 바라보며, 봄(春)이란 단지 따뜻함만을 의미(意味)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봄(春)은 오히려 겨울(冬)과 여름(夏)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과정(過程) 그 자체(自體)였다.
자연(自然)은 인간(人間)의 기대(期待)를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思考)하는 순간(瞬間)에도, 자연(自然)은 여전히 자신의 질서(秩序) 속에서 움직인다.
이러한 질서(秩序)는 때로는 잔인(殘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공정(公正)한 법칙(法則)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예외(例外)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 순간(瞬間), 나는 조선(朝鮮)의 지성(知性) 최립(崔岦)이 말한 ‘정관(靜觀)’의 태도(態度)를 떠올리게 된다. 사물(事物)에 휘둘리지 않고, 그 본질(本質)을 고요히 바라보는 마음(心).
정관(靜觀)은 단순(單純)한 관찰(觀察)이 아니라, 마음(心)의 깊이(深度)를 요구(要求)하는 행위(行爲)다. 눈앞의 고통(苦痛)이나 변화(變化)에 즉각(卽刻) 반응(反應)하지 않고, 그 이면(裏面)의 흐름(流動)을 읽어내는 것이다.
얼어가는 꽃(花)들을 보며 슬픔(哀感)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관(靜觀)의 시선(視線)은 그 너머를 본다. 이 추위(寒氣) 또한 순환(循環)의 일부(一部)임을 이해(理解)하는 것이다.
삶(人生)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평온(平穩)함 속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어려움(困難)은 우리를 당황(當慌)하게 만들지만, 그것은 결코 예외적(例外的)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예기치 않은 순간(瞬間)들이야말로 삶(人生)의 본질(本質)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自己)을 시험(試驗)하고, 스스로를 재발견(再發見)하게 된다.
최립(崔岦)의 사유(思惟)는 바로 이 지점(地點)에서 빛난다. 그는 세상(世上)의 변화(變化) 속에서도 중심(中心)을 잃지 않는 태도(態度)를 강조(强調)했다.
자연(自然)의 변화(變化)와 인간(人間)의 삶(人生)을 분리(分離)하지 않고, 하나(一)의 흐름(流動)으로 바라보는 시선(視線). 그것이 그의 사유(思惟)가 오늘날(今日)까지도 의미(意味)를 갖는 이유(理由)다.
추위(寒氣) 속에 떨고 있는 꽃(花)들은 결코 패배(敗北)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시간(時間)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간(時間)은 결코 헛되지 않다. 오히려 다음 계절(季節)을 위한 깊은 준비(準備)의 과정(過程)이다.
인간(人間)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困難)과 시련(試鍊)은 단순한 고통(苦痛)이 아니라, 성숙(成熟)을 위한 필연적(必然的)인 통과의례(通過儀禮)다.
정관(靜觀)의 마음(心)으로 이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고통(苦痛)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中心)을 유지(維持)할 수 있다.
결국 자연(自然)은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친다. 모든 것은 지나가며,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事實)을.
내년(來年)이 되면, 오늘(今日) 추위(寒氣)에 떨던 꽃(花)들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삶(人生)이란 인내(忍耐) 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순환(循環)의 예술(藝術)’임을. ***
2026. 3. 18.
崇善齋에서
{솔티}
English Translation: https://www.ktown1st.com/blog/VALover/348641
日本語 飜譯: https://www.ktown1st.com/blog/VALover/3486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