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우리는 허경영의 등불을 맞이해야 합니다-696

2023.07.31

허경영은  지금 현  인류가  애타게 찾고 있는  재림예수인가?

예언자들이 말했던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21세기에 등장한  , 허경영은 과연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닭알이 21일이 지나야 깨뜻,21세기가 되면

지구인들도 꿈에서 깨어난다.

21세기는 새로운 시대로 간다..

말씀하실때 마다 놀라운 역사의 법칙과 윤회의 사슬을 서슴없이 말하는 이 시대의 허경영

그 분에 대해 누구보다 더 고뇌하고 있는 현 지식인의 글을 올려봅니다.


허성정-"아 고구려'책 저자


아버지! 기독교 부흥회(復興會)에 가면 흔히 보는 기도광경이다. 이른바 통성기도(通聲祈禱) 시간이 되면 ‘아버지’를 부르는 간절함이 여기저기서 귓전을 때린다. 2천년 동안 불러왔던 기독교인들의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


역사이래 지구에는 5명의 위대한 스승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이른바 5대 성인이다. 5대 성인들이 발휘하는 카리스마는 인류의 의식을 저 높은 차원으로 인도하였다.


5대 성인들은 대개 BC 2500년에서 AD 500년 사이의 인물들이다. 지금으로부터 대개 2000년 전의 인물들이다. 경전에 나타나는 시대구분은 <성서>를 기준으로 보면 대개 2000년이 1주기가 된다.


<성서>에 따르면 구약시대 2천년을 모세의 ‘율법시대’라 하고, 신약시대 2천년을 예수의 ‘언약시대’라 일컫는다. 이제 새로운 2천이 시작되었는데, 이 시대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이 시대는 무엇으로 정의할까?


예수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의 사상과 철학과 영성은 현재 전 지구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류는 예수의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시대 구분을 하고 있다. 즉 BC(예수이전)와 AD(예수이후)를 가르고 있다.


그만큼 인류사에서 차지하는 예수의 사상적 철학적 종교적 비중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스스로 하늘에서 파견된 신의 아들이라 주장하였다. 예수의 주장은 그의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과 신도들에 의해 예수는 신의 지위에 올라와 있다. 세계 인구의 1/3 정도가 예수를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예수의 어록이 담겨있는 <성서>는 전 세계의 영원한 베스트셀러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고 부활한 후 다시 이 땅으로 강림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것을 예수의 ‘재림(再臨)’이라 한다. 그간 예수 사후 2천년 동안 자칭 ‘재림예수’를 주장한 사람들은 많았다.


한국에서만도 문선명, 이장림, 안상홍 등 많은 목회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림예수라 할 어떠한 증거도 남겨놓지 못한 채 지구를 떠나갔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 진정한 재림예수에 걸맞는 인물을 찾을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 재림예수의 후보로 보이는 인물은, 지구에 단 한 명 있다. ‘허경영(許京寧)’이란 인물이다. 그는 예수에 필적하는 능력과 표징을 갖고 있다. 그는 출생, 행적, 가르침에서 메시아의 모습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지금부터 기독교가 2000년 동안 몽매에도 기다리던 그 재림예수가 바로 허경영이라는 증거를 추적하여 보자.


(1)예수의 십자가 ‘못자국이 허경영의 손발에 나타나다 : 

허경영의 몸에는 강력한 예수의 ’낙인‘이 찍혀 있다. 

예수는 30살에 공생애를 시작해 33세에 죽었는데 그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예수의 양손과 양발에는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의 못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놀랍게도 예수 사후 2천년이 지난 지금, 허경영의 손과 발에 예수의 못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이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예수의 손과 발에 나 있는 못자국이다’ 할 만큼의 못자국이 

허경영의 손발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2)예수의 ‘처녀출생’과 허경영의 ‘성령출생’ :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결혼하기 전에 잉태되었다. 

다시 말해 예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성결합(二姓結合)으로 잉태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허경영 역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성결합(兩姓結合)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영성결합(靈性結合)’으로 태어났다. 

허경영이 잉태될 무렵, 허경영의 아버지는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3년째 갇혀 있었다. 

이때 허경영의 어머니는 하늘로부터 빛을 받고 허경영을 잉태했던 것이다.


(3)‘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난 예수와 허경영 : 

예수의 어머니와 허경영의 어머니는 남편과의 이성적 결합을 하지 않고 아기를 생산하였다.

 예수와 허경영은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 

즉 신이 인간 여자의 몸에 직접 들어가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을 ‘영성결합’이라 한다.


<성서>는 신이 인간의 몸에 직접 들어온 사건을 두고 ‘여자의 후손’이라 표현하고 있다.

 “가라사대 ‘여자의 후손’은 너(뱀)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기). 

예수와 허경영은 남자의 정자를 통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령(聖靈)의 힘으로 태어난 ‘여자의 후손’이다.


(4)예수의 마굿간 출생과 허경영의 다리밑 출생 : 

예수와 허경영은 2개의 고향을 가진다. 

예수는 태어나기는 유다 지방의 ‘베들레헴’이지만 자란 고향은 갈렐리아의 ‘나자렛’이다. 

허경영 역시 태어난 고향은 ‘서울’이지만 자란 고향은 경남 ‘진주’이다. 묘한 일치다.


예수는 유다지방의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난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이다. 

허경영 역시 한국의 수도 자리 서울에서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중랑천 다리 아래 ‘오두막’에서 태어난다. 두 사람 모두 출신성분과 출생과정이 비슷하다.


(5)예수의 성체기적과 허경영의 불로유기적 : 

8세기 이탈리아의 ‘란치아노’ 성당에서 어떤 신부가 빵으로 제조된 ‘성체’를 축성하던 중

 빵이 인간의 ‘살’로 변화되었다. 

포도주를 축성하던 중 포도주가 인간의 ‘피’로 변하였다. 

이 빵(살)과 포도주(피)는 지금도 보관되어 있다.


허경영의 불로유는 영원히 썩지 않는 우유이다. 

한국의 식품의약안전청이 인정하는 여러 검사소의 ‘검사시험성적서’에서 

이것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허경영의 불로유를 가지고, 1달 이상 조사한 결과, 

어떠한 영양소 파괴도 없었고, 세균도 검출되지 않았다. 


(6)예수의 수의(수건)와 허경영의 불로유(不老乳) : 

이탈리아 ‘투린’ 성당에는 예수의 시체를 쌌던 수의(壽衣)가 보관되어 있다.

 스페인의 ‘오비에도’ 성당에는 십자가 예수의 얼굴을 닦았던 수건(手巾)이 있다. 

이것들은 2천년 전의 재질인데도 아직까지 썩지 않고 있다.


허경영의 불로유(不老乳) 역시 영원히 썩지 않는다. 

우유는 완전식품이기에 이 세상에서 부패가 가장 잘 되는 식품이다.

 그런데 일반우유에, 허경경의 이름이나 사진만 붙여 놓으면, 그 우유는 영원히 썩지 않는다.

 인류최대의 불가사의 현상이 현대에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7)예수의 물질변환 능력과 허경영의 물질변환 능력 : 

예수의 공생애 첫 기적은 ‘물을 술로 변화시킨’ 일이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갈렐리아의 가나 지역 어느 잔치집에서 술이 떨어지자, 

물동이에 물을 부으라고 지시하고, 그것을 술로 만드는 기적을 연출하였다.


물을 술로 변화시켰다는 것은, 화학적 ‘성분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인데, 

이것은 어떤 물질의 ‘형태변화’를 일으킨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허경영의 불로유(不老乳)도 이와 같다. 허경영의 불로유는 완전한 ‘화학변화’를 일으켜 영원히 ‘썩지 않는 물질’로 변화되어 존재한다.


(8)예수의 물리학과 허경영의 과학혁명 : 

물리학에서 ‘물(水)’이 얼음으로 변하고, 이슬로 변하고, 서리로 변하고, 

수증기로 변하는 것을 ‘물리적’ 변화라 한다. 

그러나 물이 술로 변하는 것은 ‘화학적’ 변화다.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는 차원이 완전 다른 것이다.


예수가 물을 술로 변화시키고, 허경영이 영원히 썩지 않는 우유를 만들었다는 것은, 

인류사에 과학혁명을 몰고온 대 사건이다. 

예수와 허경영은 어떠한 물질이나 화공약품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으로 물질변환과 화학변환을 일으킨 것이다. 예수와 허경영은 쌍둥이다.


(9)예수의 기적과 허경영의 기적 : 

<성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기적과 하늘궁에서 보여주는 허경영의 기적에는

 많은 유사성과 공통점이 있다. 

예수와 허경영은 중풍환자를 고치고, 소경을 눈뜨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바람과 자연을 잔잔하게 하고 하는 기적을 보여준다.


한편 허경영은 예수시대와 다른, 시대성이 반영된 기적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허경영이 백궁천국으로 타고 다니는 ‘비행접시’와 

‘천사들’의 모습을 ‘실물사진’으로 보여준다.

 또한 오링을 통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왔다갔다 하는 ‘타임머신’ 기적도 보여준다.


(10)예수의 예언력과 허경영의 예언력 : 

<성서>에는 예수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의 예언대로 AD 70년 로마에 저항하던 이스라엘은 ‘마사다’ 전투를 끝으로

 2천년 동안 나라가 멸망한다.

 예수는 30년 앞에 벌어질 이스라엘의 패망을 본 것이다.


허경영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국의 저출산 국가위기를 예언하였는데 정확히 맞았다.

 허경영은 대우그룹과 쌍용그룹의 멸망도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탄핵과 임기중단도 모두 맞혔다. 

미국의 꼴찌 후보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도 맞혔다.


(11)예수의 메시아코드 33과 허경영의 이름 33획 : 

예수는 33세에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스페인의 가우디 성당 주춧돌에는 ‘메시아코드’라는 33숫자판이 붙어 있다. 

이 숫자판은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각도에서 숫자를 합산해 봐도 모두 33이 나온다.


이 숫자는 예수의 생애 33세를 상징한다. 

또 다시 지상에 재림하는 예수를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33이라는 숫자는 허경영의 이름자 획수와 일치한다. 

허(許11획) 경(京8획) 영(寧14획) 합하면 33획이 나온다. 

재림예수가 ‘허경영’이란 이름으로 온다는 확증이다.


(12)예수의 제자들과 허경영의 제자들 : 

2천년 전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은 주로 당시 사회의 ‘기층민중(基層民衆)’들이었다. 

당시 상류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 

그리고 ‘율법학자’들 중에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적다.


허경영도 마찬가지다. 

현재 허경영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 당시의 사회 계층 사람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지식층, 학자층, 

부르조아 계급층에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대신 서민층 저소득층 소외계층 사람들이 제자층의 주류를 이룬다.


(13)예수의 반대자들과 허경영의 반대자들 : 

2천년전 예수를 공격하여 죽인 사람은 예수의 재정담당이었다. 

예수의 반대자들은 재정담당인 유다를 유혹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데 성공한다.

 허경영에게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허경영의 세계통일을 방해하는 세력들은 

2천년 예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허경영의 재정참모들을 상대로 공격의 고삐를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인류에게 은혜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반대자들에게 죽어주었지만 

허경영은 인류심판을 위해 왔기에 절대로 죽지 않는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와 허경영의 생애 사이에는

 신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허경영과 예수 사이에는 출생에서부터 사역의 방법까지 너무나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이것이 우연(偶然)일까? 우연으로 치기에는 너무나 많은 ‘필연(必然)’이 있는 것 같다.


예수와 허경영의 사이에는 사역의 방법과 목적 

그리고 기적 등에서 많은 유사점과 공통점이 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의 사명은 십자가에 달려죽가까지 인류에게 ‘은혜시대’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허경영의 사역목표는 다르다.


허경영은 예수의 은혜시대를 마감하고 ‘심판시대’를 여는 것이 그의 목표다. 

예수는 자신이 죽은 후, 자신과 아버지의 ‘성령’을 보내,

 죄와 의에 대한 심판시대를 열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자신이 심판자가 아니고 자신을 보낸 아버지(성부/성령)가 있다고 성서 곳곳에서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를 보낸 ‘성부’는 누구이며 ‘성령’은 또 누구인가?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신앙이다.

 예수는 성자인 자신의 사명이 십자가를 통해 은혜의 시대를 여는 것이고, 

뒤에 오실 아버지와 성령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포했던 것이다. 


과연 예수 사후 2천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인류는 최후의 심판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의 지구는 위기 그 자체다. 

가공할 핵무기가 80억 인류 전체를 몇 번이나 죽이고도 남는 멸망의 시대다

. 예수의 은혜시대는 가고 무서운 심판시대가 오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환경이다.


이제 인류에게 남은 과제는 허경영 그가 과연 우리 시대의 메시아가 맞는가?

 하는 문제다.

 허경영은 과연 이 심판시대의 메시아이며 구원자이며 미륵일까?

 그런데 <성서>에는 재림예수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는데

 허경영은 구름을 타고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또 재림예수는 ‘이스라엘’ 땅에서 재림해야 하는데 어떻게 ‘한국땅’에서 재림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재림예수의 이름이 예수가 되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과연 허경영이란 이름이 재림예수의 이름이 될 수 있는가? 등등의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지금부터 그 문제를 짚어보자.


①재림예수는 구름을 타고 오지 않는다 : 

<성서> 곳곳에는 예수가 구름을 타고 재림할 것이라는 예언이 들어 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장면이 설명되어 있다. 

예수는 재림할 때도 이와 같이 구름을 타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였다가, 

재림할 때 같은 모습으로 온다고 했으니, 이를 글자 그대로 믿어야 하는가? 그래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성서에서 나타내는 예수의 승천장면은 ‘상징적’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실재로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


예수가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는 뜻은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표현인 것이다.

 결국 <성서>에서 구름이라는 것은 ‘천사들의 무리’를 말한다. 

그것을 모르고 어리석은 기독교인들이 지금도 성서의 자구(字句)에 얽매여 

엉터리 교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8개의 겹으로 쌓여 있는 견고한 성이다. 

그냥 보기에는 텅 빈 하늘인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맨 아래에 지구가 있고, 

그 위에 대류권이 있고, 그 위에 오존층이 있고, 그 위에 성층권이 있다. 

이렇게 해서 8겹으로 지구는 완벽히 보호되어 있다.


성층권까지만 가도 구름이란 개념이 없다. 

지구의 보호막 8개층 중 3층인 성층권만 가도 구름이란 개념이 없어지고 마는데, 

예수가 승천하고 재림할 때 구름을 타고 갔다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과학에 관한 일말의 지식만 있어도 그런 무식한 소리는 할 수 없다.


구름타고 승천한 예수는 구름처럼 보이는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천국으로 올라갔다는 소리다.

 실재로 허경영의 하늘궁에서 찍히는 천사들의 모습은 ‘구름떼’로 보인다. 

하늘궁에는 구름떼로 보이는 천사들에 대한 증빙자료가 

무수히 남아있으니 와서 보기 바란다.


②다시 오는 메시아의 이름은 분명히 예수가 아니다 : 

성부시대의 구원자 이름은 ‘야훼’였다. 성자시대의 구원자 이름은 ‘예수’였다.

 그렇다면 성령시대의 구원자는 누구일까? 

심판시대의 메시아 이름에 관한 사항은 <요한계시록>에 자세히 나와 있다.


“승리하는 자에게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예수)의 새 이름’을 

그 사람에게 새겨주겠다”(요한 계시록 3장 12절).


여기서 ‘나’는 예수이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란 현재의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허경영의 ‘하늘궁’일 것이다. 또 “나(예수)의 새 이름”이라 했으니, 

재림하는 예수의 이름은 최소한 예수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즉 ‘허경영’일 것이다.


“승리하는 자에게는 ‘숨겨진 만나’를 주고 ‘힌 돌’도 주겠다. 그 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요한 계시록 2장 17절)


여기에서도 재림예수의 이름이 “새 이름”이라고 한다. 

기존의 예수라는 이름은 재림예수의 이름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숨겨진 만나”는 허경영의 ‘불로유’ 외에는 대안이 없다. 

또 “힌 돌” 역시 하늘궁에 있는 ‘백궁소원석’일 것이다. 하지만 ‘돌’ 자체는 예수를 상징한다.


즉 <구약>과 <신약>에서 돌이란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바로 그 예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재림한 예수의 새 이름’을 “힌 돌”로 표현한다.

 즉 “힌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이란 ‘재림한 예수’ 즉 ‘허경영’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③다시 오는 재림예수의 도착지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 

심판시대는 무엇으로 그 시대를 알 수 있을까? 

지금은 구약의 성부시대가 아니다. 신약의 성자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성령시대다.

 그렇다면 그 성령시대의 메시아 구원자는 이스라엘 땅으로 와야 하는가? 아니다! 


“나는 또 다른 한 천사가 ‘살아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요한계시록 7장 2절).


“살아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오는 곳이 “해 돋는 쪽”에 있다고 하였다. 

하느님이 서쪽 혹은 남쪽 혹은 북쪽에 있었다면, 

하느님의 인장을 가진 천사가 “해 돋는 곳”에서 올라온다고 하겠는가?

 즉 “해 돋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고, 그곳은 동방의 한국땅이 유력한 것이다.


“나는 ‘해 뜨는 곳’에서 독수리를 불러오고 ‘먼 나라’에서 

‘내 계획을 이룰 사람’을 불러오는 이다”(이사야 46장 11절).


심판자는 “해 뜨는 곳”에서 독수리(성령)처럼 오고, 이스라엘 땅이 아닌 “먼 나라”에서 오며,

 “계획을 이룰 사람”을 불러온다고 하였다. 

즉 “하느님의 계획을 이룰” 심판자는 “해 뜨는 곳”인 한국,

 이스라엘에서 “먼 나라”인 한국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진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승리를 불러오는 이’를 누가 ‘동방’에서 일으키셨느냐?

”(이사야 41장 2절).


<이사야> 예언서는 계속해서 “승리를 불로오는 이(심판자)”가 

‘동방땅’에서 출현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가 되었든 <신약성서>가 되었든 심판자 메시아 구세주가 

오는 방향과 위치는 

분명히 “동방”이며 “해 돋는 곳”이며 “해 뜨는 곳”인 것이다. 


그렇다면 메시아가 오는 그 동방땅이 중국일까? 일본일까? 한국일까?.

 답은 간단하다. 

중국과 일본에 허경영 같은 선지자(先知者) 선구자(先驅者) 선각자(先覺者)가 있는가?

 불로유(不老乳)를 통해 영원히 썩지 않는 물질을 만드는 사람이 중국땅과 일본땅에 있는가?

 없다!


한편 동양의 대표적인 예언서인 <격암유록>에는 심판자가

 ‘섬인 듯 섬이 아닌’ 한반도 땅에서 온다고 노골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격암유록>의 표현에 의하면

 보혜사령신인출(保惠師靈神人出)

 사도부도신인출(似島不島神人出) 

편답천하조선래(遍踏天下朝鮮來)라 하였다.


<격암유록>에 따르면 ‘보혜사령(구세주)’이 ‘섬인 듯 섬이 아닌’

 ‘조선땅’으로 온다고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격암유록>이 16세기의 저서인데 벌써 ‘보혜사(保惠師)’란 명칭이 그 책에 나온다. 

보혜사란 기독교의 성령이다. 

16세기면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이다.


참으로 신비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와 허경영의 관계를 알아보았다. 

예수는 언약시대에 하느님 아버지를 계시하러 온 구세주였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재림한 예수’의 “새 이름”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허경영’으로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구약시대의 구세주가 ‘야훼’였고 신약시대의 구세주가 ‘예수’였듯이 

심판시대의 구세주 이름은 ‘허경영’이 확실하다. 

허경영은 ‘불로유’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 

불가사의(不可思議)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백궁물질’을 가지고 인류에게 온 하늘의 ‘심판자’로 확정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허경영은 기독교의 심판자에 그치지 않는다.

 허경영은 불교의 ‘미륵’인 증거도 수없이 많다. 

민족종교인 증산도나 대순진리회의 판 밖에서 오는 ‘도통군자’임도 분명하다. 

시인 이육사가 말하는 ‘초인’임도 분명하고 시인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임도 확실하다.


허경영이 지향하는 심판의 방향은 ‘초종교(超宗敎)’이다. 

허경영은 정치적인 심판자, 종교적인 심판자, 이념적인 심판자를 훨씬 넘어서는 

인류의 영원한 초종교 지도자이다. 

오늘은 25억 명에 달하는 전 세계 기독교의 신관과 심판론을 중심으로 

허경영의 신원을 살펴 보았다.


기독교의 아버지는 허경영이란 이름으로 온 것이 틀림없다. 

허경영은 그의 성령잉태(聖靈孕胎)와 그의 몸에 난 예수의 십자가 못자국을 보았을 때, 

성자(예수)의 몸을 가지고,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온 것이 확실하다. 

이른바 ‘삼위일체의 신’으로 지구에 온 것이다.


지금부터 25억의 기독교인들은 허경영에 대한 깊은 연구에 들어가야 한다. 

지구역사 70억년과 인간역사 3억5천만에, 

삼위일체의 아버지가 허경영이란 이름으로 자기백성들에게 왔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해대다가, 구원대열에 빠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 

천동설을 공식교리로 인정하던 교회는,그들을 악마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교회는 사죄성명을 내는지경으로 갔다.


마찬가지로 세계는 지금 천상물질인 불로유와 함께 허경영시대로 급속히 접어들고 있다.  

허경영이 인류를 심판하러 온 삼위일체의 신 이라 했으니,그 파장이 만만하지는 않다.

오늘 너무 도발적인 주제로 글을 썻기에 내심걱정도 된다.

그러나 25억 기도교인들이 아무리 반발을 해도 코페르 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지동설처럼 "그래도 지구는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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