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찾아가는 곳은 오늘날 '음악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헨델의 고향인 "할레" 입니다.
할레(Halle)는 201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와 역사의 도시입니다.
얼마전에 이미 포스팅한 '음악의 아버지' 인 바하와 1517년에 '종교 개혁' 을 시도한 마르틴 루터 와도 상당히 관련이 있는 도시입니다.
할레(Halle)는 헨델이 태어난 곳이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중 하나로 예전부터 소금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도시입니다 .
라이프치히에서 기차로 30분 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할레 기차역에 내려서 구도시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 가다 보면 큰 광장을 만날수 있습니다.
높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탑모양의 건물과 교회 모습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 옵니다.
헨델의 동상이 서 있는 여기가 바로 할레의 중심지인 마르크트 광장 입니다.
동상 앞에 높이 솟아 있는 탑은 시계탑 겸 종탑인 붉은 탑(Roger Turm)입니다.
1418년에서 1506년 사이에 지어진 건축물입니다.
84미터 높이의 탑 안에는 76개의 크고 작은 종들이 있고 규모면으로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것이라 합니다.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년 2월 23일 - 1759년 4월 14일)은
독일 할레(Halle)에서 태어나서 영국에서 활동한 바로크 시대 음악가 입니다.
'바하' 와는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이지만 그 보다 9년을 더 살았고
1726년에 영국으로 귀화해서 그의 무덤은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있습니다.
(나와 생일이 같아서 해마다 생일을 잊지 않고 기억 합니다.)
'마르크트 교회' 또는 '마리안 교회' 라고도 부르는 이 교회는 헨델, 바하,
루터와 연관이 있는 교회로써 1529년에서 1554년 사이에 세워진 후기 고딕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헨델이 세례를 받았고, 바하가 오르간 연주자를 하였고,
또한 루터가 3번에 걸쳐서 설교를 한 그런 역사를 지닌 교회입니다.
요즈음은 교회 앞에 자리한 핫 도그 가게가 세계적인 명소가 되어서 여기 찾아오는 관광객을 맞이합니다.
먼저 할레 여행객 방문자 센터에서 여기 여행 자료를 수집하고 헨델의 도시 관광을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헨델의 하우스를 찾아서 가겠습니다.
여기는 1685년 헨델이 태어나서 함브르크로 떠나기 전인 1703년 까지
18년 동안 살았으며 헨델의 부모가 죽을 때까지 살았던 핸델의 생가입니다.
할레시에 의해서 1948년 부터 헨델 박물관으로 개장되어 음악 박물관 및 콘서트 홀로 사용됩니다.
헨델 하우스 관람 루트는 2층 전시실을 먼저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1층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전시실 안에는 그의 동상, 사진, 악보, 악기 등을 사방에 배치하여 지루하지 않게 볼수 있도록 잘 꾸며져 있습니다.
악기는 바로크 시대 악기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주로 하얀 색상의 은은한 톤으로 되어 있어서 보는 사람이 편안한 느낌을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이 사진입니다.
어린 소년인 헨델이 밤중에 몰래 다락방에서 도둑 연습을 하다 아버지에게 들키는 장면입니다.
이발사인 헨델의 아버지는 헨델이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알고 아들이 음악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악기류는 손도 못대게 했으며 악기가 있는 곳에는 아예 가지 못하게 하는 등 철저히 음악적 환경을 차단 시켰습니다.
그러나 어린 헨델은 다락방에 숨겨둔 작은 건박 악기를 식구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 혼자 몰래 올라가서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을 보니 "크게 될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 라는 한국 속담이 생각납니다.
전시 되어 있는 고악기 들을 보고 가겠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바로크 시대 악기에 관한 음악적인 상식을 하나 알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a'(라 음정)=440 Hz 피치(음 높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엔 지역마다 또는 연주곡에 따라서 여러 피치를 사용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이 시대 독일에서 연주를 할때엔 지금 보다 대략 반음 정도 낮은 피치인 a'=약 415 Hz를 사용했습니다.
헨델의 바로크 시대 음악을 체험 할수 있는 공간입니다.
준수한 인물입니다. 평생 총각으로 지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음악 아닌 그 어떤 것 하고도 결혼 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 만을 생산해 낸 '음악의 어머니' 입니다.
헨델은 그의 평생에 수많은 곡을 작곡 하였습니다.
오페라 46곡, 오라토리오 29곡, 칸타타 등 성악곡 120여곡,
기타 수상 음악, 실내악, 송가 등 총 700여곡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숱한 바로크 시대 음악가들이 사후에 수백년간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것 과는 달리
헨델 음악은 그의 사후에도 꾸준히 연주되고 있으며 특히 "메시아"는 전세계에서 오늘날에도
꾸준히 연주되는 명곡 중의 명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헨델도 바하와 마찬가지로 개신교(루터교)신자 였습니다. 그래서 종교 음악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헨델이 영국서 56세때 단 24일만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1순위 오라토리오 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굳이 오라토리오 순위를 매긴다면,
2. 천지창조(하이든 작곡)
3. 엘리아(멘델스존 작곡)
4. 사도 바울(멘델스존 작곡)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 생각입니다.)
헨델은 젊은 시절 오페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여서 평생 46곡의 오페라를 작곡 하였습니다.
현대인이 선정한 세계 100대 오페라에 그의 작품이 4곡이나 올라 있습니다.
1. 이집트의 줄리오 체사레(51위. 1724년)
2. 알치나(64위, 1735년)
3. 올란도(80위, 1733년)
4. 세르세(88위, 1738년)
이 모두는 런던에서 초연된 작품입니다.
헨델이 오페라를 작곡한 시기는 독일에서 4편, 이태리서 2편을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영국으로 건너간 1711년부터 1741년 까지 30년 간을 작곡 하였습니다.
그가 영국에서 지낸 45년중 처음 30년 간은 오페라에 몰두 했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품 오페라 공연을 위해서 '왕립 음악 아카데미' 등 오페라 극단을 창립하여
수많은 작품을 흥행 시켰고 또한 후에 좌절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헨델 하우스에는 그의 생애에 대해서 정리된 자료들을 질서 정연하게 전시 해놓았습니다.
헨델이 활동을 한 지역입니다.
같은 년도에 태어난 바하는 독일을 떠나 본 적이 없는데
헨델은 유럽 여러 나라를 다니고 영국으로 귀화해서 영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박물관을 나와서 뒤에 있는 정원 쪽으로 가봅니다.
이젠 진짜 헨델이 '할레'에서 음악을 한 장소를 찾아서 갑니다.
헨델은 할레에서 대성당으로 부르는 '돔 교회 (Domkirche)' 에 18세 성년이 되던 1703년에 1년짜리
오르가니스트 인턴으로 들어 갑니다. 그때엔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법률 공부도 병행하고 있던 때 입니다.
그후에 법률 공부는 집어 치우고 음악만 하였습니다.
내가 들어 갔을때 교회당 안에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음악 워크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오르간이 헨델이 일년 동안 연주한 오르간입니다.
위크샵을 하는 동안 나는 교회 좌석에 앉아서 관람을 하였습니다.
이런 악기를 사용해서 위크샵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두 진지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임하고 있습니다.
아래 끝 부분에 동영상으로 여기서 위크샵 하는 장면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나도 잠시 그들과 함께 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헨델이 놀던 그 장소에서 나도 이렇게 재미나게 노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마침 방문한 날이 토요일이라서 광장에는 장이 열리고 있어서 간단한 로컬 음식을 몇 개 맛볼수 있었습니다.
돔 교회를 나와서 마르크트 교회쪽으로 걸어서 갑니다.
여기도 매해 6월에는 헨델 페스티벌이 약 열흘간 열립니다.
그땐 세계 전지역에서 헨델을 좋아하는 음악팬들이 몰려 온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먹은 핫 도그 맛은 지금도 가끔씩 생각이 납니다. 정말 많이도 사먹었습니다.
이렇게 생긴 트램이 도시의 운치를 더해 줍니다.
여기에서 뼈아픈 과거 역사 하나를 보고 가겠습니다.
'잔디 길'이라는 뜻의 'Graseweg' 거리에는 16세기에 지어진 반목조 주택이 있는데
이 집을 사이에 두고 골목이 양 갈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 양 갈래 좁은 골목 길에는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1348년 할레에
흑사병이 창궐하자 1350년 시당국은 더 이상의 감염을 막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한쪽 골목 쪽에 흑사병 감염자의 출입을 완전히 봉쇄하고 흑사병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은 막지 않은 다른 길을 사용 하도록 하였습니다.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통곡하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이나 봉쇄되어 있던 길에서
잔디가 자라나고 있는 것을 보고 막아 두었던 장벽을 허물고 보니 전염병과 굶주림에
죽은 사람들의 해골과 뼈가 산더미 처럼 쌓여 있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2020년 3월, 이미 전세계로 번진 코로나 19가 빨리 해소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헨델의 외할아버지는 개신교(루터교)목사 였습니다.
목사의 딸인 어머니를 둔 헨델은 어렸을때 어머니의 영향으로 기독교 정신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완고하게 헨델의 음악을 반대하던 아버지도 어느 순간에 아들의 음악을 반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헨델에게 음악 선생님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 음악 선생님은 여기에 있는 '마르크트 교회=마리안 교회' 의 오르가니스티인 '차차우'(F. W. Zach's, 1663-1712) 입니다.
헨델에게 바이올린, 오르간, 오보에 등 각종 악기는 물론이고 대위법등
작곡 이론과 음악적 상상력 자극 훈련까지 시켜준 매우 유능한 선생님 이었습니다.
헨델의 천재성을 간파한 그는 세속 음악과 종교 음악 그리고 기악곡과 성악곡 등 다양한 종류의
음악 지식을 아낌없이 전수하고 가끔씩 어린 제자에게 교회 오르간 연주도 할수 있는 기회를 마련 하였습니다.
헨델의 천재성과 훌륭한 선생님이 만들어낸 그야말로 진짜 걸작품을 사제 관계가 탄생 시켰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마리크트 교회 안에는 이번에 시간 관계상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또 할레(Halle)를 방문한다면 그때는 적어도 하루는 거기서 머물다가 와야 하겠습니다.
헨델과 바하의 손이 거쳐간 오르간이 있고 루터가 설교한 강대상이 안에 있은데 정말 아쉽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헨델은 독일인 일까요 아니면 영국인 일까요?
25살때 처음 영국으로 가서 이태리와 독일을 잠시 왕래하다가
영국으로 귀화후 약 45년 간을 영국서 살다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내 기준으로 대답을 하겠습니다.
나는 한국서 29세때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후 미국 시민권을 받고 2020년 현재까지 35년 간을 미국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 나는 한국인 입니까 아니면 미국인 입니까?
내 대답은 나는 뼈속까지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헨델은 '메시아' 악보가 놓여 있는 보면대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헨델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서 1859년에 영국과 독일에서
헨델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세운 기념비 동상입니다.
헨델이 소년 시절 18세 때 까지 지낸 마음의 고향인 할레 여행을 마칠 시간이 다가 옵니다.
처음 왔던 길을 걸어서 할레 역으로 다시 갑니다.
숙소가 있는 라이프치히로 다시 돌아 가야 합니다.
헨델이 고향을 떠나서 음악 활동을 한 훗날 그의 이야기는
그 지역을 방문하고 나서 전하는 기회를 그때 만들고 싶습니다.
그럴려면 독일의 함부르크와 이태리 그리고 영국과 아일랜드를 방문해야 합니다.
헨델은 바하 만큼 철두 철미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말년에 종교 오라토리오로
매진한 걸로 보아서는 어머니의 기도 힘이 상당히 작용 했을거라는 상상을 내 나름대로 해 봅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영국과 아일랜드를 '음악의 어머니'를 더 알고 싶은 마음으로 찾아 가야 할 이유를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래 동영상 두개를 올립니다.
하나는 돔 교회 어린이 음악 워크샵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대관식 송가>에 나오는 "사독 대제사장"(Zadok the Priest)입니다.
클래식 전문 음악 방속국에서 선정한 헨델의 명곡 중에서 제 1위를 차지한 곡입니다.
돔 교회 어린이 음악 워크샵
"사독 대제사장"(Zadok the Priest)
다음은 바하의 생가를 찾아가서 '음악의 아버지'를 깊이있게 다시 만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