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수천억대 재산가 하늘을 얻다!

2021.11.22


 



                  수천억대 재산가 하늘을 얻다! 


 20여 년 전 부터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잊지 않고 필자를 찾아 의논함을 빼놓지 않는 오회장님은 자수성가하여 수천억대의 재산을 이룬 자산가이시다. 오랜 세월 고생 끝에 성공을 이룬 자수성가 자들이 매우 인색한 경향이 많은데 이분은 전혀 그렇지 않고 남들에게 베풀기 를 즐기는 기분파이시다. 20여 년 전 당시는 필자가 고객분 들과 젊은 기분에 유흥가에서 어울리기도 할 때였는바, 이분은 툭하면 필자를 끌고 비싼 술집에 데려가 귀한 술과 안주 등을 대접하곤 했었다(이때가 좋았다. 지금은 건강상 남들과 술자리에서 어울리지는 않고 기분이 꿀꿀할 때 혼자서 소주 몇 잔 홀짝거리다 마는 게 전부다). 오회장님은 손이커서 술집에서 일하는 종업원들 에게도 백 불짜리 지페를 몇 장씩이나 척척 기분 내키는 대로 집어주니 술집에서는 오회장님만 오시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고 덕분에 동행한 필자 역시 최고 VIP 대접을 받곤 했다. 


오회장님은 미국에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정규적으로 다녀가시는데 대외적인 공식 이유는 사업시찰이지만, 사실은 자신보다 35살이나 어린 둘째부인(첩)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여운 어린자식 남매를 만나려는 목적이다. 둘째부인과 그 사이에 어린 남매가 있다는 사실은 본부인께서도 알고 계시는 듯 했지만 독하게도 전혀 아는 체를 안 하신다고 했다. 아마도 다 커서 이미 출가하여 자식까지 둔 딸자식들과 사위들 보기 창피해서인 듯 하다며 오회장님은 껄껄 웃으셨다. 이런 이유 외에도 이 문제가 공론화 될 경우 유산문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가 정식 제기될 수 있기에 그러한 듯 하기도 했다. 아무튼 오회장님의 가족은 본 부인이신 사모님과 그 사이에 난 여섯 명의 딸(모두 출가했고 모두 2-3명씩 자식을 두었음)과 사위, 바글바글한 외손자들 그리고 둘째부인과 그 사이에 둔 남매이다. 


둘째 부인이 첫째인 아들을 낳았을 때 오회장님은 기뻐서 날뛰다 큰일 날 뻔했다. 유일한 아들을 갖게 되었을 때 너무 기뻐 이 사람과 한 잔, 저 사람과 한 잔 하다 보니 도가 지나쳐 실신까지 해서 병원에 실려가 겨우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욕심에 혹시나 해서 둘째를 낳아 봤는데 아쉽게도 딸이었다. 아무튼 代(대)가 끊어질 줄 알고 노심초사 했었는데 씨를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 자기 전 재산을 얻은 것 보다 열배 백배 더 기쁘셨다고 하셨다. 오회장님은 1947년 음력 2월 21일 丑時生 이시다. 해서 사주팔자는 丁亥年 癸卯月 辛卯日 己丑時가 되었다. 辛卯 일주가 癸卯月에 태어나 득령하지 못했으나 時柱(시주)가 己丑土로 편인이 되어 신약하지 않다. 일지,월지에 연지 亥水와 亥卯未 반합으로 재를 이루어 財의 기운이 견실해졌다. 사주가 신약사주였다면 재가 왕성해지는 것이 좋지 못하나 시주에 인수가 있고 년간에 편관이 인수를 도와주니 신약하지 않은데다가 급기야 후천운인 대운에서 火운이 오자 크게 발복하여 준재벌이 된 것이다. 


오회장님은 저 남해바다 끝 추자도라는 섬 출신이시다. 어려서 아버지가 바다 귀신이 된 관계로 과부인 어머니와 어렵고도 어렵게 배곯아 가며 자랐다. 친척분의 소개로 어머니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좌판을 펴놓고 갈치장사 하는 것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바닷가 항구 주변이 그렇듯 바닥이 거칠어 어렸을 때부터 싸움깨나 하며 자랐다. 학업에는 관심이 없어 악동 짓만 하며 자라다보니 그 일대에서 알아주는 왈패가 되었고 결국 칠성파라는 깡패단의 초창기 주요 맴버로 활동까지 하게 된다. 이렇게 왈패짓을 하다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삶의 전기를 맞는다. 마지막 숨이 넘어가면서도 끝까지 자식이 못 미더워 “깡패 짓에서 손을 떼고 성실히 살아야한다. 꼭 그래야 한다. 이 애미 마지막 소원이다.” 라고 한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 때문 이였다. 


어렵게 깡패 세계에서 손을 떼고 처음 시작한 장사가 헌 군복을 사다가 시꺼멓게 물을 들여 파는 일이였다. 헌 군복을 모아 오는데도 주먹이 쎈 것이 필요해 득을 보았고 이를 통해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국수가게를 차린다. 국수틀을 사다가 국수면 을 쭉쭉 뽑아서 빨래대 같은 건조대에다 쭉 널어놓고 면을 말린 뒤 기계로 일정간격으로 잘라 판매하였다. 어려운 시절이라 세끼 밥해먹는 집은 드물었고 하루 한두끼는 국수나 밀가루 수제비가 주식인 시대여서 국수집은 꽤나 번창했다. 국수집으로 돈을 번 뒤에 본격적으로 염색 업에 뛰어든다. 이 염색 업을 통해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 직공 수백 명을 뽑아 염색공장을 가동하면서 여기서 번 돈으로 건축업을 시작했다. 당시는 아직 APT개념이 없어 집장사 수준 이였지만, 아무튼 이 집장사를 통해 떼돈을 벌고 이 번 돈으로 이곳저곳에 집 지을 수 있는 땅을 사두었는데 땅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어올라 마침내 거부가 된다. 


오회장님의 유일한 고민은 아들이 없다는데 있었다. 부인과 함께 둘이서 힘닿는 대로 열심히(?) 노력을 했건만 생기는 것은 계속 딸이었다. 첫째 딸을 낳았을 때는 무척 기뻤다. 둘째가 딸 일 때만 해도 기뻤지만, 셋째 딸이 나왔을 때는 슬슬 걱정이 되더니 넷째 딸이 나오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다섯 번째 딸 때에는 속상해서 집에도 가지 않고 외박을 했고 여섯 번째 딸이 나오자 급기야 호텔에 장기 투숙계약을 하고 몇 달 동안 집에 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들문제는 포기하고 오직 사업에만 집중하여 큰 성공을 이루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는 아들에 대한 열망이 컸었는데 우연히 어린 첩을 얻게 되었고 여기서 아들이 태어나자 기쁨이 하늘을 찔렀다. 본부인이 작은댁이 있음을 알고도 모른 체 하는 데에는 이런 미안함도 있는듯했다. 아무튼 손주 뻘도 더 되는 어린자식들을 데리고 행복해하는 오회장님을 보면 좀 안된 마음도 들면서도 필자도 모르게 “쯧쯧 아들이 뭔지...” 라는 소리가 나온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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