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 Pisa
피사(Pisa)는 기적의 도시다.
기울어져 있으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신비의 사탑이 있기 때문이다. 사탑이 있는 광장의 이름도 기적의 광장(Piazza dei Miracoli)이다. 광장에는 모두 6개의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대성당 두오모(Duomo di Pisa)..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 납골묘당인 캄포산토(Campo Santo).. 시노피에 박물관(Museo delle Sinopie)..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Museo dell’Opera del Duomo).. 그리고,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Torre pendente di Pisa)이다. 6개의 건축물 외에도 광장에는 늑대젖을 먹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청동상이 있다. 늑대젖을 먹는 쌍둥이 동상은 로마 건국 신화를 이야기하는 매우 중요한 조각작품이다. 피사는 한 때 지중해에서 가장 번성한 해양도시 공화국이었다. 국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11세기 ~ 12세기 사이. 피사가 자랑하는 두오모, 세례당, 사탑 등이 건설된 때도 바로 이시기였다. 이곳에서 태어난 인물중 유명한 사람은 성 라이네리오, 피보나치, 지오반니 피사노,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있다. 성 라이네리오(St. Rainerus)는 피사인들의 추앙하는 인물로 피사의 성 프란치스코라 말할 수 있다. 방탕한 삶을 살다 회개한 후, 성수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사를 베풀어 ‘데 아콰’라는 별명을 얻은 성인이다. 레오나르도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는 아라비아 숫자를 전세계에 알린 사람으로 ‘피보나치의 수열’과 ‘황금비율’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수학자. 지오반니 피사노(Giovanni Pisano)는 페루자 분수대, 시에나 대성당 설교단, 그리고 피사 대성당 설교단 등을 제작한 이탈리아 고딕의 대표적인 조각가이다. 갈릴레이 갈릴레오(Galileo Galilei)는 피사대학 출신으로 천문학과 물리학의 상징적인 아이콘이며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찰하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전설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두오모는 지금은 사탑의 인기에 밀려 있지만, 사실은 피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다. 피렌체 또는 시에나 두오모 보다 훨씬 오래됐으니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오래된 성당이라 할 수 있다. 1064년, 부스게토의 설계로 착공한 건축물은 피사 -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1118년 완공됐다. 십자가 모양으로 지은 두오모는 십자가가 교차하는 중앙에는 커다란 돔을 얹었다. 청동문은 보난노 파사노가 1179 - 1180년 사이에 제작했지만, 1595년 화재로 소실됐다. 현재의 청동문은 후에 제작된 것이다. 안으로 들어 가면 황금색 코퍼(Coffer)의 천장과 줄무늬 대리석으로 장식한 웅장한 본당이 나온다. 본당 정면 애프스(Apse)에는 모자이크로 제작한 그리스도의 벽화가 있으며.. 촛불 뒤로 보이는 유리관은 피사의 수호성인, 성 라이네리오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무덤이다. 이탈리아인들은 그의 무덤 앞에서 묵상과 기도를 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갈릴레이가 이것의 흔들림을 보고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했다고 하는 갈릴레이 램프도 뒤 쪽 천장에 매달려 있다. 중앙에 위치해 있는 설교대는 피사 출신의 지오반니 파사노가 제작한 조각품이다. 세례당은 1152년, 디오티살리의 설계로 착공되어 1363년 완공된 건축물이다. 기적의 광장에서는 두오모에 이어 두 번째로 짓기 시작했다. 세례당의 높이는 55m(180피트), 둘레는 107m(351피트)로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지금도 침례식을 거행하는 침례탕은 1246년, ‘귀도 비가렐리’가 제작했다. 침례받는 사람들은 마치 세례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는 듯한 진한 감동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식 명칭이 ‘세례 요한의 세례당’이기도 하지만, 침례탕에는 세례 요한의 청동상까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안내를 하던 가이드가 음의 신비를 보여주겠다면 둥근 돔을 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돔으로 오르더니 천천히 세례당을 돌며 사람들의 귀를 쩡쩡 울린다. 육각 설교단은 지오반니 피사노의 아버지, 니콜라 피사노(Nicola Pisano)가 1260년 완성한 설교단이다. 7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설교단에는 그리스도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십자가에 달린 예수, 최후의 심판 등이 부조로 조각돼 있다. 국력이 절정이었던 시기, 피사는 지중해에서 일어난 전쟁에서는 늘 승리했다. 두오모와 세례당을 짓기 시작했지만, 그들에게는 승리를 반영하기 위한 또 하나의 건축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종탑(피사의 사탑)이다. 1173년 8월 9일, 8층 높이의 종탑은 착공식을 갖고 건설에 착수했다. 그러나 건축이 시작된지 몇 년이 지나자 사탑은 남동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튼튼하지 못한 지반 위에 기초의 깊이를 3m만 판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5년에 걸쳐 지어진 종탑은 3층에서 멈추었고, 공사는 100년 동안 중단됐다. 제노아, 루카, 피렌체 공화국 간의 전쟁으로 종탑 건설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사탑(무게 14,500톤)이 완공된 해는 1372년. 건립된 이후에도 사탑은 매년 1-2mm씩 기울어져 1990년에는 5.5도까지 각도가 기울게 됐다. 이에, 사탑이 무너지는 것을 염려한 시는 1990~2001년까지 11년 동안에 걸쳐 대규모 복원공사를 실시했다. 현대의 건축 기술로 똑바로 세울 수는 있지만, 일부러 4도 기울어진 상태로 보수공사를 마친 피사의 사탑. 앞으로 300년 동안은 현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사탑에 오르려면 293개의 나선형 계단을 걸어서 올라야 하는데 반드시 올라 가 보는 것이 좋다. 몸이 한 쪽으로 기울며 걸어서 올라 가고 내려 오는 경험이 매우 특별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탑 꼭대기에서는 여러개의 거대한 종을 관찰할 수 있으며.. 사탑에서 내려다 보는 피사 시내의 풍경.. 시노피에 박물관과 기적의 광장.. 위에서 내려다 보는 세례당과 두오모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갈릴레이는 이곳에서 ‘낙화 운동에 관한 법칙’을 증명 하기 위해 두 개의 공을 던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그의 제자였던 빈첸초 비비아니(Vincenzo Viviani)가 쓴 갈릴레이 전기에서 기록된 것이다. 달, 또는 진공방 등 공기의 저항이 없는 곳에서의 실험은 질량이나 부피에 관계없이 두 물질은 동시에 떨어졌다. 이것은 새의 깃털과 무거운 쇠덩어리를 떨어트렸을 때에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피사 출신은 아니지만, 갈릴레이의 까마득한 대학 후배로 안드레아 보첼리가 있다. 보첼리는 12살때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부딪혀 완전히 시력을 잃은 가수다. 그래도 그는 낙심하지 않았으며, 피사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법정 선임 변호사가 되기도 했다. 노력 끝에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된 안드레아 보첼리. 기적의 도시 피사에서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다. 글, 사진: 곽노은 P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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