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예술 — 그 안에서 만난 나.
티노세갈, 데미안허스트, 금기숙 금속공예, 서울 시립발레단 ( Bliss & Jakie )
오랫동안 준비했던 발표회를 마치고 나는 재충전을 위해 딸들과 함께 한국으로 열흘간의 휴가를 떠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과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듯 시간을 채워 나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 열흘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 시간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병원이었다. 종합검사를 받으며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의 ‘안’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무대 위에서 보이는 몸, 선과 균형, 형태를 만드는 몸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내시경을 통해 들여다본 내 몸 안에는 작년까지 없던 작은 용종들이 곳곳에 나타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내 몸은 겉모습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동안 나는 내 몸의 바깥을 다듬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정작 내 몸의 안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서툴렀던 것이다.
며칠 뒤 찾은 리움 미술관에서 나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This is contemporary. This is contemporary.”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공간 속에는 작품 대신 사람이 있었다. 서 있는 몸, 누워 있는 몸, 서로 닿고 키스하는 몸. 그것은 티노 세갈의 작업이었다. 이것도 예술인가?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그곳에 갔을까?
그러나 그 장면은 낯설지 않았다. 이미 대학교 시절 현대무용을 배우며 수없이 지나왔던 몸의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삶의 장면을 기대했지만, 그보다는 현대무용 퍼포먼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남았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결국 모든 예술은 몸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그 흐름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이어졌다. 금기숙의 금속 공예 작품 앞에서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드레스, 그 차갑고 단단한 형태 속에서 ‘Dancing’이라는 개념이 읽혀졌기 때문이다. 몸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형태 자체가 이미 움직임을 품고 있었다. 정지된 조형이 아니라 이미 춤추고 있는 상태였다. 그 순간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몸이 없어도 움직임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이어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립발레단의 〈Bliss & Jakie〉를 보았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고, 반복되는 동작 속에서 몸은 점점 생각을 벗어난 상태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었다.
공연을 함께 본 딸의 말이 인상 깊게 남는다. 후반부는 완성도가 높았지만, 전반부는 의상과 안무의 조화가 부족해 흐름이 다소 끊겼다는 이야기였다. 나와 같은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딸의 감각은 또 하나의 기준이 되고, 딸은 내게 영원한 예술의 동반자다.
또한 동대문 DDP, 자하 하디드의 공간을 걸으며 나는 공간 또한 하나의 움직임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구나 일상처럼 지나치는 건물이지만, 그 곡선과 흐름은 멈춰 있는 구조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는 움직임처럼 다가왔다. 공간과 몸, 그리고 움직임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 모든 흐름을 이해하게 된 데에는 Kawa 서양미술사를 통해 쌓아온 배움이 있었다. 퍼즐처럼 이어지던 지식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었고, 그 배움은 이번 여정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었다. 한국에 가면 티노세갈과 데미안 허스트 작품전을 꼭 보라는 선생님이 추천이 생각났다.
여행의 마지막,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나는 데미언 허스트를 만났다. 웹사이트에는 에약이 이미 5월까지 매진이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개막 첫날 아침 일찍 미술관으로 향해 줄을 섰고, 오래 기다리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하고싶은 것이 있으면 어떤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린다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포르말린 속 상어, 다이아몬드 박힌 해골, 땡땡이그림 그동안 내가 아는 데미안 허스트의 전부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를 ‘이건 좀 지나친 거 아닌가’ 싶은 엽기작가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그의 작품은 전혀 달랐다. 수많은 의료기구와 끝없이 놓인 알약들. 그것은 치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림도 엄청 잘 그린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들이 오히려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나 자신의 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질문은 작품 속에 머물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데미언 허스트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으로,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그의 대표작들이 한 공간에 모이며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생명과 죽음이라는 주제는 더 이상 서구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질문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 열흘의 여정을 지나며 나는 하나의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예술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예술은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또다시 박물관과 발레 공연을 향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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