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회를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책을 이제서야 펼쳐본다. 독서 모임에서 한 달 전에 읽었어야 할 책,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다.
세계 3대 디스토피아로 꼽히는 이 작품은 1932년,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 에 의해 발표되었다. 그가 그려낸 시간은 서기 2540년, 이른바 ‘AF 632년’이다. 백 년 전의 한 작가는 이미 수백 년 뒤의 세계를 내다보듯 그려냈다. 과연 그것이 단순한 상상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않았을 뿐, 이미 시작된 미래의 한 단면이었을까?
이 작품 속 세계는 완벽해 보인다. 고통도 갈등도 없고, 슬픔은 ‘소마’ 한 알로 사라진다. 사람들은 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며 불편함조차 느끼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 상태에 스스로 만족한다.
겉으로 보면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선택도, 깊은 사랑도, 스스로 사유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설계되고 배치되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에서 그려낸 사회와는 또 다른 결을 지닌다. 그곳이 감시와 공포로 인간을 억압한다면, 이곳은 ‘행복’으로 인간을 길들인다. 바로 그 점에서, 이 세계는 더 조용하고 깊은 방식으로 우리를 흔든다.
이 소설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시간과 신념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예수의 탄생이 기준이 아니다. 대신 자동차 대량 생산을 시작한 포드를 기준으로 시간이 흐른다. ‘After Ford’. 사람들은 “Oh my God”이 아니라 “Oh my Ford”라고 말한다. 인간의 역사 대신 공장의 역사가 기준이 된 것이다. 인간보다 생산이 앞서고, 삶보다 효율이 우선되는 사회에 대한 아이러니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그와 대비되는 ‘야만의 세계’에는 고통과 불편함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사랑이 있고, 가족이 있으며, 인간적인 감정이 살아 있다. 그 세계에 속한 존은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인간의 감정을 배운다. 사랑, 질투, 고통, 비극—그 모든 감정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느 세계에 속해 있는가? 편안하지만 비어 있는 세계인가, 아니면 불편하지만 살아 있는 세계인가? 나는 스스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길들여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가?
복도의 꼭대기 바로 밑에 매달린 한 쌍의 발로 끝난다. 그것만으로도 죤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런데 그 장면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몸은 전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돌아간다.
북쪽, 동쪽, 남쪽, 남남쪽을 향하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는 그 반복되는 움직임.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며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 느린 회전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다. 매달린 채, 방향을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돌아가는 그 모습은 문명에도, 야만에도 속하지 못한 한 인간의 마지막 흔들림이다. 삶의 회의와 갈등, 그리고 끝내 닿지 못한 자유가 그 안에서 겹쳐진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낯설지 않았다. 마치 내가 이미 느껴보았던 감정처럼, 아직도 가슴 한쪽에 걸려 쉽게 떨어지지 않는 어떤 감정처럼. 그래서 이 작품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삶을 비추는 하나의 메타포로 남는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느 방향에 서 있는가? 어는 방향이 나의 멋진 신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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