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돈을 초월한 용기 있는 사람들 (April 30, 2026)

2026.04.30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돈을 초월한 용기 있는 사람들" (April 30, 2026)


요즘 집 밖으로 나가기가 하면, 모든 사람들이 내 돈을 뺏어 가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식당, 호텔, 병원, 차정비공장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적당한 가격을 받으면 좋을텐데, 서비스의 질과 양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비용을 요구하면,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등을 쳐서 돈을 벌려는 속내가 보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돈을 밝히는 삯군 목사요, 타락한 종교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일 낮 아침 예배 설교 달랑 하나 하고, 그리 많지는 않지만, 따박따박 봉급을 챙겨가니, 내가 받는 봉급에 비해 교인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었는가 생각해 보면,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는 미국인 목사에게 “왜 미국 백인 남자들이 목사가 되는 사람들이 줄었는가?”하고 물어 보았더니, “돈을 많이 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한국 시골교회에서 한달에 십만원도 못 받다가, 강원도 철책선 부대에서 3년간 군목으로 일할 때 한달에 삼십만원 정도 받았고, 미국에 유학와 미국인 교회 목사로 일하면서도 정회원 목사의 최저 봉급을 받으면서, 봉급이 적다는 불만을 품고 있다가,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되었고, 지금은 꾀가 나서 병원의 채플린 일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


어느 목회자 모임에서 어느 유능한 목사가, “나는 내 신학교 동기 목사들 중 봉급을 늘 제 일등으로 많이 받았다. 한번도 2등을 한 적이 없다”고 하길래, 무척 부럽고 질투심 마저 낫다.


남들 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일하는 성실하고, 유능한 목사에게는 봉급을 많이 주는 것이 당연하고, 게으르고, 무능한 나같은 목사는 도태 당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겠으나, 돈으로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금전만능 시대에,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옛 선인의 지혜를 기억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인도의 자이나교 승려들은 물욕을 초월하기 위해 모든 소유를 거부하고, 옷도 걸치지 않고 맨 몸으로 다니며, 밥그릇과 수저 마저 소유하지 않고, 탁발로 얻은 음식을 손바닥에 받아 먹고, 물도 손바닥으로 받아 마시며, 병이 나면 자연의 순리로 받아 들이고 길에서 죽는다고 한다.


천주교의 수도사들이나 불교의 스님도 종교적인 목적으로 자발적인 가난을 실천하지만, 캘리포니아에 사는 천주교의 수녀님이 교회돈을 훔쳐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다가 걸려 감옥에 가거나, 한국에서는 주지자리를 놓고 각목을 들고 패싸움을 하거나, 화투를 치며 도박을 하다가 들킨 스님들도 있고, 세계최대 교회의 목사가 교회 돈을 횡령하여 법정에서 머리를 조아리거나, 서울 대형교회의 목사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회계 장로가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한 일도 있다 하니, 물욕을 초월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내세워 물욕을 피해 산중 깊은 움막으로 피했으나, 그분의 무소유 정신에 감동을 받은 불교 여신도가 서울의 한 요정 건물을 통째로 법정 스님에게 기증했다고 하니, 돈을 쫓는 사람에게는 돈이 가지 않고, 돈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에게 오히려 돈이 좇아 가는 일도 생기는 모양이다.


가족이 없는 스님이나 신부님들은 무소유를 추구하는 것이 고상한 덕이 될 수 있겠으나, 가족 부양의 책임이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소유가 덕이라기 보다는 독이 되기 쉽다고 본다. 불교신자인 내 친구가 아들이 어렸을 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를 때, 아들에게, “욕심을 버려라.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배우라”고 하자, 아들이 아빠에게, “나는 법정스님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안살래”라고 했다고 한다.


법정 스님도 책판매 인세로 수입이 있었길래,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다니는 문화귀족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아버지로 부터 물려 받은 재산을, 구두쇠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철저히 관리하여, 경제자립을 유지하며, 남에게 머리 굽히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색과 철학 공부를 견지할 수 있었다.


나는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거제도에서 돌고래를 돌보는 사육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인터뷰를 하던 기자가, “어떻게 돌고래 사육사 일을 하게 되었어요? 특수한 일이라 돈은 많이 벌어요?”라고 묻자, 그 사육사는, “최저임금보다 좀 더 벌어요. 사육사를 하려면, 돈은 포기하셔야 합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수당이예요.”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목사요 종교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일에 헌신하느라, 돈을 포기 했는가? 나는 그 사육사에 비하면, 순 엉터리 목사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사육사에게 종교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 사육사는 나보다 훨씬 더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라고 본다. 성경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했다. (No one has ever seen God; but if we love one another, God lives in us. -1 John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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