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내 마음의 隨筆] <정관(靜觀)의 마음가짐으로 혼란(混亂)한 세상(世上)을 건너며>

2026.03.03

[내 마음의 隨筆]


<정관(靜觀)의 마음가짐으로 혼란(混亂)한 세상(世上)을 건너며>


아침(朝)부터 서북풍(西北風)을 타고 눈(雪)이 다시 흩날렸다. 이미 봄(春)이 문턱에 이르렀다고 여겼건만, 자연(自然)은 아무 말 없이 겨울(冬)의 장막(帳幕)을 다시 펼쳐 보였다. 막 얼굴을 내민 크로커스는 차가운 눈발(雪發)을 맞으며 잠시 몸을 낮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여전히 대지(大地) 깊숙이 박혀 있다. 겉으로는 움츠러들었으나, 속으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場面)을 바라보며 나는 조선(朝鮮)의 외교관(外交官)이자 사유(思惟)의 선비(先備)였던 간이(簡易) 최립(崔岦: 1539-1612)이 말한 ‘정관(靜觀)’을 떠올린다. 정관(靜觀)은 단순(單純)히 조용히 바라보는 태도(態度)가 아니다. 격랑(激浪) 속에서도 중심(中心)을 잃지 않고, 감정(感情)에 휩쓸리지 않으며, 사물(事物)의 이치(理致)를 깊이 읽어내는 능동적(能動的)인 고요함이다. 외교(外交)의 긴장(緊張) 속에서도 그는 먼저 멈추어 상황(狀況)을 통찰(洞察)했고, 서두르기보다 흐름을 살폈다.


오늘날(今日) 우리의 세상(世上)은 눈보라처럼 빠르게 변동(變動)한다. 정보(情報)는 홍수(洪水)처럼 쏟아지고, 갈등(葛藤)은 확대(擴大) 재생산(再生産)되며, 사람들은 즉각적(卽刻的)인 반응(反應)을 요구(要求)받는다. 분노(憤怒)와 불안(不安)이 공기(空氣)처럼 확산(擴散)되어 있다. 이런 시대(時代)일수록 우리는 눈을 감거나 귀를 막는 대신, 오히려 더 깊이 관조(觀照)하는 정관(靜觀)의 태도(態度)가 필요(必要)하다. 소란(騷亂) 속에서 즉각적(卽刻的)으로 반응(反應)하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서서 본질(本質)을 묻는 힘(力) 말이다.


(雪) 속의 크로커스는 조급(躁急)해하지 않는다. 지금 개화(開花)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의 시간(時間)을 의심(疑心)하지 않는다. 다만 시기(時機)를 기다릴 뿐이다. 오늘의 혼란(混亂) 또한 어쩌면 계절(季節)의 한 과정(過程)일지 모른다. 변화(變化)는 직선(直線)으로 오지 않고, 후퇴(後退)처럼 보이는 굴곡(屈曲)을 지나 완성(完成)된다. 눈(雪)은 봄(春)을 방해(妨害)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봄을 더욱 견고(堅固)하게 준비(準備)하게 한다.


정관(靜觀)은 우리에게 세 가지(三 가지)를 가르친다.
 

첫째, 멈춤의 용기(勇氣)이다. 즉각적(卽刻的)인 판단(判斷)과 반응(反應)이 미덕(美德)처럼 여겨지는 시대(時代)에, 잠시 멈추어 숙고(熟考)하는 일은 오히려 더 큰 용기(勇氣)다.
 

둘째, 내면(內面)의 중심(中心) 확립(確立)이다. 외부(外部)의 소리(聲音)가 클수록 내부(內部)의 소리를 더 분명(分明)히 들어야 한다.
 

셋째, 시간(時間)을 신뢰(信賴)하는 태도(態度)이다. 모든 것이 일순간(一瞬間)에 해결(解決)되지 않는다는 사실(事實)을 수용(受容)하는 것, 그것이 성숙(成熟)이다.


어릴 적 한밤중(夜半)에 내리던 눈(雪)은 아침(朝)이면 세상(世上)을 전혀 다른 모습(模襲)으로 변모(變貌)시켰다. 그러나 그 변화(變化)는 무성(無聲)히 이루어졌다. 오늘 우리의 삶(人生)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전환(轉換)은 요란(擾亂)한 구호(口號)가 아니라, 조용한 내면(內面)의 변화(變化)에서 시작(始作)될지 모른다. 한 사람의 침착(沈着)한 선택(選擇), 한 번의 신중(愼重)한 판단(判斷)이 또 다른 질서(秩序)를 형성(形成)한다.


혼란(混亂)한 시대(時代)를 극복(克服)한다는 것은 모든 폭풍(暴風)을 제거(除去)하는 일이 아니다. 그 속에서 방향(方向)을 상실(喪失)하지 않는 일이다. 눈(雪) 속의 크로커스처럼, 잠시 몸을 낮추되 근본(根本)을 포기(抛棄)하지 않는 것. 외면(外面)으로는 유연(柔軟)하되, 내면(內面)의 확신(確信)은 굳게 수호(守護)하는 것. 그것이 정관(靜觀)의 실천(實踐)이다.


(雪)은 결국 융해(融解)된다. 그러나 눈(雪)이 내리는 동안 우리가 어떤 마음(心)을 품었는지는 잔존(殘存)한다. 불안(不安)에 휩쓸렸는지, 아니면 고요(靜寂)히 관조(觀照)하였는지에 따라 우리의 다음 계절(季節)은 달라질 것이다.


백설(白雪) 아래에서 크로커스는 이미 봄(春)을 알고 있다. 나 또한 이 혼란(混亂)한 세상(世上) 속에서 정관(靜觀)의 눈(眼)을 지니고자 한다. 조급(躁急)하지 않고, 동요(動搖)하지 않으며, 다만 심층(深層)을 관조(觀照)하며 한 걸음씩 전진(前進)하고자 한다.


겨울(冬)이 아무리 장구(長久)해도, 봄(春)은 그 아래에서 이미 준비(準備)되고 있다. 그리고 고요(靜寂)히 관조(觀照)하는 자(者)만이, 그 최초(最初)의 기척(氣息)을 가장 먼저 인지(認知)할 것이다. ***


2026. 3. 3. 


崇善齋에서

{솔티}


English Translation:  https://www.ktown1st.com/blog/VALover/348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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