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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兀公金八字(올공금팔자)

2022.06.02

 




                   兀公金八字(올공금팔자) 


 옛 속담에 ‘올공금팔자’라는 말이 있다. 이 올공금(兀公金)이라는 것은 장고를 지탱하는 쇠인데 방언으로는 올공(兀公)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올공금팔자’라는 말이 연유한 것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옛날 남쪽 땅 전주에 큰 상인이 있었다. 배포가 크고 사내다운 호방함이 있어 장사에도 성공하고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이 전주의 상인이 배포큰 장사에 다시 나섰다. 남쪽 땅에만 나는 생강(生薑)을 배에 가득 싣고 평양의 패강(浿江)에 정박하였다. 생강은 당시 남쪽에서만 생산되는 귀중한 물건으로 관서지방에서는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그 값이 매우 높아 한배에 가득 실었으니 1천단의 포백(옷감)이나 1천석의 곡물가치를 지닌 어마어마하게 값이 나가는 물량이었다. 


색향으로 유명한 평양에는 양귀비 뺨칠 정도로 미모와 색기를 지닌 기생들이 수두룩하였는바 한가닥한다는 기생들이 이 전주상인을 어떡하든 유혹해 보려고 군침을 삼켰다. 드디어 한 요염한 기생이 이 상인을 자빠트리는데 성공했다. 전주상인은 이 기생의 요염함에 빠져 주야장창 주색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윽고 몇 년에 거쳐 배에 실린 생강을 기생의 사타구니 속에 다 빠트려버렸다. 한 배 가득한 생강을 주색잡기에다 소진하고 나니 그때부터 당장 기생의 태도가 달라졌다. “서방님 없으면 소녀는 이 세상에 살 낙이 없어요! 언제까지 제 곁에 머물러주세요 서방님!” 하던 기생은 갑자기 돌변하여 찬바람이 쌩쌩 부는 냉담한 태도로 상인을 구박했다. 상인은 집에 돌아가려해도 수중에 돈 한 푼 남아있지 않고 보니 고향 처자식과 친척, 친구들을 볼 낯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눌러앉았다. 


안방을 차지하고 호령하던 처지에서 기생집 하인이 되어 장작을 패고 주안상을 마련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이 끝없이 많아 손이 퉁퉁 부르트고 동상에 손발이 얼었다. 음식도 손님들이 남기고 간 찌꺼기 음식으로 허기를 때우고 옷은 다 헤어져 속살이다 드러날 지경이었다. 자기를 이렇게 거덜낸 기생은 다른 사내와 안방에서 희롱하며 음탕한 신음을 내뱉고 상인은 부엌에서 굴욕감에 얼굴이 상기된 채 그 방에 불을 지펴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인은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기생에게 마지막으로 인정에 호소하였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려하니 제발 여비라도 마련해주게!” 눈물로 호소하니 기생도 자기가 한 짓이 있는지라 박절히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노자를 주려니 쌀이나 포백은 아깝고 하여 집안에 예부터 뒹굴던 쓰다버린 장고의 이음쇠 16매를 주면서 갖다가 쌀로 바꿔 양식이나 하라고 인심 쓰듯 던져주었다. 


상인은 괘씸한 생각이 들었으나 이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울며겨자먹기로 그것을 받아들고 귀향길에 올랐다. 길을 가다가 이음쇠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더니 광택이났다. 이상히 여겨 황강장터에 나가 장고 전문가에게 보였더니 깜짝 놀래며 “이것은 진짜 올금으로 진짜 금으로 되어있는 아주 귀중한 것이요!” 라고 한 뒤 일백 만냥에 팔 것을 제의했다. 상인이 머물렀던 그 기생집은 아주 오래전부터 기생집을 대대로 운영돼 왔는데 이러다보니 쓰다버리는 장고들이 집 구석구석에 처박혀 있었던바 이 진짜 올금이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뒷마당에 버려졌던 거였다. 상인은 이것을 밑천삼아 다시 장사에 나섰고 옛 장사실력을 발휘하여 다시 큰 부자가 되었다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부자팔자를 지닌 사람은 일시적으로 영락해도 우연히 다시 기회가 생겨 다시 부자팔자로 살게 된다고 하며 ‘올공금팔자’를 이야기했다. 이 능화 著<조선해어화사>에 전하는 이야기다. 


필자의 고객인 K사장님도 이와 유사한 사연이 있다. K사장은 처음 미국에 이민와 시작한 일이 봉재업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 봉재업은 무척이나 호황이여서 밤낮없이 재봉틀을 밟아대면 그것이 모두 돈으로 어김없이 바뀌는 황금기였다. ‘밟아라! 삼천리’라는 은어로 봉재업이 불리던 시기였고 이때 ‘밟아라 삼천리’출신의 성공한 사업가가 여럿 나왔다. 봉재업을 통해 큰돈을 번 K사장은 부동산 투자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 부동산 투자로 성공한 알짜 부자가 되었다. 밤낮없이 일만하던 K사장님이 이때부터 슬슬 달라진다.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던 한국식 룸싸롱이 타운에 속속 생기고 한국에서 온 쭉쭉빵빵 섹시한 미녀들이 술집에 선을 보이자 주색에 빠져들기 시작한데다 카지노 노름에도 취미가 생겼다. 


술집마담과 아가씨들을 자신의 고급 승용차에 태우고 라스베가스로 달려가 며칠씩이나 머물며 흥청망청했다. 처음에는 ‘그동안 고생만했으니 이제는 좀 놀며 쉬는 것도 나쁘지 않지!’ 라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K사장의 일탈을 봐주던 부인도 그 도가 점점 지나치자 적극적으로 K사장님을 제지했고 이 과정에서 부부관계가 심하게 나빠져 결국 이혼까지 하고 만다. 부인과 이혼하며 많은 재산을 날렸지만 K사장은 게의치 않았다. 아직도 충분히 넉넉한 재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K사장의 일탈은 결국 큰 고비를 맞게 된다. 룸싸롱 마담과 눈이 맞아 살림을 차렸고, 마담의 요청으로 술집도 차려 주고 자신도 주색잡기와 도박에 열심이였다. 주위 친구들이 아무리 말려도 K사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도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이 연이어 터지고 마담과의 분쟁도 터져 결국에는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중에 필자에게 와서 하시는 말씀이 “일이 꼬여도 이렇게까지 꼬일 수가 없습니다. 만사불성(萬事不成)이라 하더니 어쩌면 모든 일이 손만 대면 어그러지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였다. 주변의 모든이들은 K사장님이 이제는 완전 끝장이라고들 보았다. 하지만 당시 필자가 K사장님의 쾌를 짚어보니 한 번 더 기회가 있을것 같았다. “한 번 더 기회가 있을테니 기대를 가지고 기다려보라”는 필자의 말에 “내 나이가 60중반을 넘었는데 어떻게 내게 다시 기회가 있단 말입니까? 괜히 위로해 주려는 말씀이지요?” 라고 하며 믿으려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필자가 이글을 쓰는 지금 현재 K사장님은 기적적으로 재기하셨다. 우연히 대학동창과 만났고 미국진출을 시도하던 동창은 K사장님을 앞세워 미국사업을 펼쳐나갔고 미국 지역책임자가 된 K사장님은 불같이 사업을 일으켜 다시 옛날의 부를 다시 누리게 되었다. 아마도 K사장님 역시 ‘올공금팔자’였던가 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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