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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십정승 십판서가 날 명당

2022.06.04

  




             십정승 십판서가 날 명당 


 옛날 옛적에 아주 마음씨 착한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몇 대째 벼슬을 못해 영락한 양반집이었으나 어려서부터 예절과 인성교육을 잘 받아 항시 예의바르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를 돕는 것을 기뻐하며 무엇보다도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 우애가 돈독했다. 하루는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는데 웬 거지노인 하나가 와서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에 우글거리는 식구들이 복작거리며 사는데 내 줄 방이 있을리 없고 무엇보다도 대접할 저녁거리가 없어 문제였으나 착한 선비는 노인의 청을 받아들였다. 노인이 방에 들어와 가만히 들으니 부부가 부엌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선비의 부인이 “방도 마땅치 않고 저녁끼니도 우리식구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것 밖에 없는데 서방님께서 선뜩 노인분 청을 받아 주시는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쩌시려구요?” 목소리를 죽여 가며 부인이 선비에게 항의를 하자 선비 왈 “아무리 우리형편이 그렇다 해도 지쳐 곧 쓰러질것 같은 노인의 청을 어찌 거절한단 말이요, 오늘 저녁은 내 한 끼 거를테니 내 몫의 죽을 저 노인에게 내주시요! 방은 우리가 불편하더라도 하룻밤 외양간에서 보냅시다! 우리가 저 노인 청을 거절하면 아마도 저 노인은 오늘 밤 길을 걷다 쓰러져 돌아가실 것 같이 허약해 보였소, 내 뜻대로 합시다!” 부부가 소리죽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노인은 크게 감동을 하였다. 이 노인은 조선팔도에 명풍수로 이름이 높은 이였는데 세상에 얼굴을 내놓기를 꺼려해 어려운 처지에 길을 가다 이 선비 집에 인연이 닿은 것이다. 저녁식사로 내온 죽을 맛있게 먹은 후 거지노인이 선비에게 “정말 고맙소! 선비님 아니었으면 오늘 밤 찬 이슬과 허기에 죽을 뻔했소. 


답례로 내가 보아둔 천하의 명당을 일러 드릴 터이니 부친께서 돌아가시면 그곳에 묘를 쓰고 대대로 자손들도 그곳에 묘를 쓰시오! 그곳은 십정승 십판서가 나올 명당 중 명당이요!” 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절대로 그곳에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를 일러 주었다. 첫째는 그 땅 앞에 있는 시냇물에 다리를 놓아서는 안 되고 두 번째는 움막이든 정자든 묘 근처에는 지붕이 있는 것을 절대 세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선친이 돌아가시고 착한 선비는 노인이 일러준 그곳에 아버님을 장사지냈다. 그 후 선비에게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 아이가 무척이나 영특하여 주위에서 신동소리를 듣더니 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관직에 진출하였고 정승이 되었다. 정승의 아들 역시 영민하여 아버지와 같이 정승이 되었다. 정승의 손자도 역시 연이어 정승이 되니 3대가 정승을 지내게 되는 조선최고의 명문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 손자정승이 아버지의 정승의 묘소를 다녀갈 때마다 불편함이 많다고 느꼈다. 우선 정승체면에 바짓가랑이를 걷어 젖히고 가랑이를 내놓은 채 개울을 건너는 불편이 있었고, 성묘 후 마땅히 쉬어갈 만한 정자도 없는지라 아버지 정승이 죽기 전 절대로 묘 근처에는 지붕이 있는 것을 설치하지 말고 다리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지 않고 호화로운 큰 정자를 지어놓고 이에 걸맞는 호화로운 다리도 수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 건설했다. 착한 선비의 아들인 할아버지 정승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청렴결백한 관리가 될 것을 철저히 교육받아 청백리로 일생을 마치었다. 이 모습을 보고자란 아들 정승역시 청백리로서 재물에는 초연한 일생을 보냈다. 그러나 손자정승 때에 이르자 조선 최고의 3대 정승 명문가와 연를 맺고자하는 많은 이들이 앞 다투어 손자정승을 찾았고 이런저런 인맥과 혼 맥이 엮이게 되자 손자정승 댁에는 저절로 금은보화가 쌓이게 되고 손자정승 역시 자신도 모르게 시나브로 사치스러워졌다. 


이런 처지에 이르고 보니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묘를 찾을 때 개울을 건너야 하고 가서도 쉴 곳이 마땅치 않으니 무척이나 불편했던 것이었다. 아버지 정승 생전에 “절대로 묘 근처에는 지붕이 있는 어떤 것도 지어서는 안 되고, 특히나 묘 앞개울에는 절대 다리를 놓아서는 않된다!” 라는 신신당부가 그저 묘 근처를 사치스럽게 꾸미지 말라는 당부정도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저 청렴결백한 관리가 되라는 당부정도로 여기고 “내 형편에 크게 사치하는 정도도 아니니 괜찮겠지!” 라고 하는 안이한 생각에 공사를 강행한 것이었다. 그 후 그즈음 임금의 묘 자리를 보러 다니던 지관(地官)이 이 근처를 지나다가 큰 소나기를 만나게 되었다. 비를 피하려고 사방을 살펴보니 산에 세워 둔 손자정승의 정자를 보게 되었다. 


“아니? 이 깊은 산속에 웬 정자가 다 있나?” 라고 하며 비를 피하려 그 정자 쪽으로 가려했으나 개울이 앞을 가로 막았다. 소나기에 개울물이 불어 물살이 거쎄니 도저히 건너갈 수 없다고 보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마침 개울 윗편에 멀리 다리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지관은 서둘러 다리를 건넌 뒤 정자에 가서 한동안 비를 피하였다. 비가 그치고 지관이 밖에 나가보니 참으로 기막힌 천하의 명당이 보였다. “내 평생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지세를 보아왔지만 이처럼 빼어난 명당은 처음이다!” 라고 감탄한 뒤 임금에게 “조선 땅에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정도의 명당을 발견했습니다. 허나 아쉬웁게도 누군가가 이미 묘를 2개 쓴 자리였습니다!” 라고 보고하였다. 임금은 지관의 말에 은근히 이 땅이 탐났다. 


은밀히 묘 임자를 알아보니 손자정승의 선대 묘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임금이라 하여도 남의 묘를 함부로 할 수 없고 더구나 정승의 지위에 있는 집안의 묘인지라 임금도 어쩌지 못하고 포기하려 했으나 이상스럽게도 자꾸 욕심이 일었다. 그리하여 임금은 은밀히 정승을 불렀다. 아주 넓은 땅을 하사할 테니 묘를 그리로 이장하고 그 땅을 임금에게 넘기라는 요구를 했다. 손자정승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자신의 집안을 일으킨 명당을 아무리 임금의 요청이라 하여 포기할 수 없었다. 임금은 정승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격노했다. 결국 이런 저런 죄를 씌워 정승은 파직되었고, 이 정도로 분이 안풀린 임금을 손자정승의 정적들이 부추겨 역모를 하였다는 죄명으로 참수하고 손자정승의 일족들은 모두 노비가 되어 지방관청에 흩어져 배속시켰다. 완전히 ‘패가망신’하게 된 것이다. 결국 십정승 십판서 명당은 손자 정승의 실수로 삼정승만을 내놓은 채 막을 내리고 만것이다. 요즈음도 대통령 선거때만 되면 후보들의 조상 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마평들이 돌곤 하는데 이런 현상은 몇 대가 흘러도 같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민족의 DNA 속에는 풍수에 대한 환상이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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