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상점(物象占)과 선덕여왕(善德女王)
옛 부터 우리선조들은 이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자연현상이 우리들 인간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따라서 어떤 자연현상이 평소와 다르게 예사롭지 않을 경우 그것을 하늘의 어떤 계시로 해석하곤 했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과 인간사의 상관관계를 토대로 하여 인간사의 길흉을 예지하는 자연관상점이 옛부터 발전해왔다. 하늘에 재이(災異)가 있으면 반드시 중대한 일이 있는바 재이는 하늘에 속하는 것(天), 땅에 속하는 것(地), 사람에 속하는 것(人) 세 가지로 분류하여 혜성이 나타나는 것은 천이(天異), 산이 무너지고 샘이 고갈되는 것은 지이(地異),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흉악한 것을 인이(人異)라 하였다. 사람이 병이 들면 안면에 그 징조가 나타나듯이 이러한 이상스런 징조에 의해 미래를 예측하곤 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선덕여왕은 무속인들이 많이 모시는 神 중 하나인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신라 27대 덕만은 시호가 성덕여대 왕이고 성은 당연히 김씨이며 아버지는 진평왕이다. 632년 왕위에 올라 16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성왕인 성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은 아들이 없어 왕위 계승문제로 고민하였다. 오래전 법흥왕 무렵부터 성골만이 왕위에 오르는 분위기가 확고히 잡혀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들이 없으니 큰일이었다. 허나 선덕은 매우 총명하고 천성이 맑았다. 우여곡절 끝에 왕위를 계승하였고 세 번이나 결혼하였으나 자식을 얻지 못했다. 남편복과 자식복은 없는 팔자였던 것이다.
신라 27대 왕이 된 선덕여왕은 물상(物象)을 보고 어떤 일을 예측하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선덕왕 지기삼사(宣德王 知機三事)라는 제목으로 선덕여왕이 ‘기미’를 알아차린 세가지일을 극적으로 묘사한바있다. 첫 번째 사연은 모란과 관련된 이야기다. 당나라 태종이 붉은빛, 자주빛, 흰빛의 세 가지 색깔로 그린 모란그림과 그 씨 석 되를 보내온바 있다. 왕은 그림의 꽃을 보더니 “이 꽃은 필경 향기가 없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그 씨를 심도록 했다. 꽃이 피어 떨어질때까지 과연 왕의 말과 같았다. 두 번째 사연은 이렇다. 어느 겨울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많은 개구리들이 모여들어 3~4일 동안 울어댄 일이 있었다. 겨울철에 웬 개구리떼? 사람들은 이를 괴이히 여겨 왕에게 물었다.
그러자 왕은 급히 알천과 필탄 등에 명하여 정병 2천명을 뽑아 속히 서교로 가서 여근곡(女根谷)이 어딘지 찾아가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터이니 모두 죽이라고 명했다. 두 각간이 명을 받아 각각 군사 1천명을 거느리고 가서 여근곡이 어디인지 물었다. 부산(富山)아래 과연 여근곡이 있었고 백제군사 500명이 와서 숨어있기에 급습하여 이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또한 백제의 장군이 남산 고개바위 위에 숨어 있기에 포위하고 활로 쏘아 죽였다. 또 그 뒤에 군사 1천2백병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모두 쳐서 죽여 한사람도 남지 않았다. 후일에 여러 신하들이 이를 신기하게 여겨 왕께 물었다.
“어떻게 하여 모란에 향기가 없고 개구리가 우는 것으로 변란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하니 왕이 답하기를 “꽃은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메 이는 당나라 임금이 나의 배우자 없음을 희롱한 것이라(당시 왕은 배우자가 없었다) 이를 알 수 있었고, 개구리가 성난 모양을 하는 것은 병사의 형상이며 옥문(玉門)이란 곧 여자의 음경이다. 여자는 음(陰)이고 그 빛은 흰데 흰빛은 서쪽을 뜻한다. 그러므로 군사가 서쪽에 있음을 앎이라! 또한 남근(男根)이 여근(女根)에 들어가면 잠시 후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그들을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신하들은 모두 왕의 성스럽고 슬기로움에 탄복하게 되었다. 이렇듯 그 당시에는 물상의 변화와 동정을 관찰하여 사상(事象)의 생기(生起)를 점치는 일이 유행하였는바 총명하고 영기(靈氣)가 발달한 여왕은 이처럼 이에 능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무속인들 중에 선덕여왕을 자신의 주신(主神)으로 모시는 이가 유독 많은 것이다. 세 번째 사연은 왕이 아직 병이 없고 건강한 때였는데 여러 신하에게 “내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짜에 죽으리니 나를 도리천(忉利天)가운데 묻어주시오‘” 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다고 묻자 낭산(狼山)의 남쪽나라고만 하였다. 과연 왕은 자신이 말한 그해 그 달 그날에 죽었다. 신하들이 왕이 죽은 뒤 그 유언대로 낭산의 남쪽에 묻었는데 이곳은 왜 도리천이라 하였는지 몰랐다. 그 뒤 문무왕(文武王)이 선덕여왕의 무덤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었다. 선덕여왕이 죽은 646년부터 33년 뒤의 일이다. 사람들은 감탄하였다. 불가에서는 “사천왕천 뒤에 도리천이 있다.” 라고 하는 바 사천왕천을 상징하는 사천왕사가 지어졌으므로 그 바로 위인 선덕의 무덤은 도리천이 되는 것이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어 묻힌 뒤 그 아래 사천왕사가 생길 것을 미리 알고 자신을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한 것이다.
역학계에서도 사람의 사망 시기를 사주팔자로 풀이하는 것이 가능하다. 간명법상 사람의 사망 시기를 정하는 방법은 우선 사주 격국의 수명의 장단을 정하고 이를 대운과 년운의 길흉과 비교하여 정하는데 대운과 년운이 사주상의 용신을 극해하면 반드시 생명의 위험이 닥쳐온다고 본다. 필자의 고객분들 중 연세가 많으신 분이나 병환 중에 계신 분들이 자신이나 또는 자신의 부모 수명에 대해 문의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바 젊은 사람들이 이를 물으면 답해주지 않지만 이런 분들에게는 위에 간명방법에 의해 그 시기를 조심스레 예측해 드리기도 하였다. 예전에 병중에 있는 어느 어르신 부인과 자녀분들에게 그분의 사망 시기를 일러 드린바 있는데 “OO년 봄 쯤으로 보입니다.” 라고 하였는바 그 즈음에 그분이 돌아가시자 소문이 나기를 “구도원선생이 그분의 사망년, 월, 일, 그리고 정확히 시간까지 예측하였다!” 라고 과장되게 소문이 난 적도 있었다. 소문은 퍼지면 퍼질수록 과장 왜곡되는 법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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