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시-2
Nancy-2
대성당 외에도 낭시에는 1487년에 지어진 꼬르들리에 성당(Eglise des Cordeliers)과..
첨탑이 아름다운 생-에프르 성당(Basilique Saint-Epvre)이 있다.
스타니슬라스 광장(Place Stanislas)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낭시의 중심 광장이다.
광장에는 광광안내소, 시청사, 오페라 하우스, 그랜드 호텔, 낭시 미술관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광장으로 통하는 철문은 모두 금색으로 칠해져 있어 낭시는 ‘금문의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광장은 엠마뉘엘 에레와 장 라무르에 의해 1751년부터 1755년까지 4년 동안에 걸쳐 설계되고 건축됐다.
당시 낭시를 포함한 로렌 지방의 통치자는 한 때 폴란드의 왕이기도 했던
스타니슬라스 레슈진스카였다.
그는 왕의 자리에서 쫒겨난 뒤 프랑스의 온정으로 알자스에 정착하고 후에 로렌 지방의 통치자로 임명받았다.
그의 딸 마리 레슈진스카가 1925년 22살의 나이에 루이 15세( 당시15세)와 결혼했기에 받게
된 혜택이었다.
마리는 프랑스 왕비로서의 자격은 조금 부족했지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성인이라는 이유로 맺게 된 결혼이었다.
기대에 부응하듯 왕비는 매 년 1명꼴로 10명의 공주와 왕자를 낳는다.
그러나 막내딸 루이즈 마리를 낳으며 난산을 겪고 마리는 왕이 침실로 오는 것을 거절하게 된다.
이에 루이 15세는 퐁파두르 후작부인, 바리 백작부인 등 수많은 여인들을 정부로 두었다.
그 후 퐁파두르 후작부인이 궁정의 대소사를 좌우하며 국민들의 원성은 날로 커지게 된다.
루이 15세는
천연두로 64세에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을 슬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전해진다.
후에, 퐁파두르
후작부인은 왕의 뚜쟁이 노릇을 하다 1764년 사망했으며..
바리 백작 부인은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원래 스타니슬라스는 사위이자 왕이었던 루이 15세의 동상을 광장 중앙에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동상은 프랑스 혁명때 시민들에 의해 끌어 내려졌다.
그리고 그 곳에는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스타니슬라스의 동상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스타니슬라스는 폴란드 왕으로서는 88세로 가장 오래 살았으며
1766년, 크라쿠프(Krakow)의 바벨 대성당(Wawel Cathedral)에 묻혔다.
글, 사진:
곽노은
https://www.ktown1st.com/blog/nounkwak/2524 = (낭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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