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지미냐노 San Gimignano 피렌체 주위에는 아름다운 도시들이 많다. 서쪽으로는 루카와 피사가 있고 동쪽으로는 라벤나와 산 마리노 공화국이 있다. 그리고 남쪽에는 그레베 인 키안티, 아레초, 시에나, 산 지미냐노가 있다. 이번에 소개할 도시는 산 지미냐노. 탑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탑이 아니라 사람이 거주하는 탑집(Casatorre)을 말한다. 탑집은 1층은 작업장, 2층은 침실, 3층은 주방으로 만들고 벽에는 몇 개의 창문까지 만들었다. 벽은 보통 2m 두께로 쌓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아주 따뜻하다고 한다. 물론 탑 꼭대기를 통해 방어용 요새로서의 역활도 충분히 감당했다. 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300년 경부터 에트루리아인들이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고 한다. B.C. 63년에는 로마에서 탈출한 젊은 귀족 무치오와 실비오 형제가 두 개의 성을 이곳에 건축했다. 현재의 산 지미냐노는 아틸라의 침입을 물리친 성 지미니아누스의 이름을 따 10세기경에 지은 것이다. 산 지미냐노가 가장 많은 번영을 누렸던 시기는 12세기와 13세기 사이. 당시에는 이 작은 도시에 72개의 탑집이 솟아 있었다고 한다. 모두 귀족들이 세운 탑집이다. 가장 유명한 귀족으로는 교황파의 아르딩헬리 가문과 황제파의 살부치 가문이다. 두 가문이 세운 탑 중 가장 높은 것은 1298년에 세운 토레 그로사(Torre Grossa)다. 토레 그로사의 높이는 54m(177피트). 현재 남아있는 13개의 탑 중 유일하게 꼭대기 까지 올라 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나머지 12개의 탑과 시내의 목가적 풍경이 한 눈에 들어 온다. 72개의 탑이 있던 중세에는 산 지미냐노의 풍경이 더욱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1348년, 페스트로 수 천 명이 사망하면서 산 지미냐노는 쇠퇴의 길로 들어 서게 된다. 피렌체에서 산 지미냐노를 가려면 직행은 없고 포지본 시에서 버스를 갈아 타야 한다. 포지본 시에서 떠난 버스가 도착하는 곳은 산 조반니의 성문 앞. 성문을 들어서면 산 조반니 거리가 펼쳐진다. 이 거리는 카페와 상점이 많아 이곳 저곳을 살피며 올라 가게 된다. 즐거운 마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치스테르나 광장에 도착한다. 같은 이름의 우물이 있는 광장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젤라또 전문점이 위치해 있다. 젤라또의 명인으로 불리는 세르지오가 운영하는 젤라떼리아 돈돌리(Gelateria Dondoli)라는 곳이다. 세르지오는 아이스크림 세계 챔피언에 두 번이나 오른 이탈리아 팀의 중요한 구성원이었다고 한다. 그는 아메데이 초콜릿을 젤라또에 사용하기도 하며, 매운 초콜릿과 신 체리, 핑크 자몽 스파클링 와인 등 다른 곳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젤라또를 제조하는 이탈리아 최고의 젤라또 명인이다. 2-3유로로 가격 또한 착한 돈돌리 젤라또는 한 번 맛을 보면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지게 된다. 중세시대 건축물과 탑들로 둘러있는 이 광장은 삼각형이며 바로 위에는 대성당 광장이 있다. 대성당 광장에는 참사회 교회(Collegiate), 시청사(Palazzo Comunale), 그리고 토레 그로사가 우뚝 서있다. 시청사 건물 안에서 시립 미술관과 토레 그로사 탑을 올라 갈 수 있는 입장권을 구입할 수 있다. 미술관 2층에는 피렌체에서 파견된 대사의 신분으로 이곳에 머물었던 단테의 방이 있다. 단테는 35살의 나이로 이곳에 부임했는데 바로 토레 그로사를 짓기 시작한 그 해(1300)였다. 3층에서는 필리포 리피, 코포 디 마르코발도, 베노초 고촐리, 시모네 마르티니 등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피렌체, 시에나, 프라토, 산 지미냐노 등에서 활약한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었다. *참사회 교회에서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게 영향을 준 기를란다요의 프레스코화 작품을 볼 수 있다. *성녀 피나의 죽음, 성녀 피나의 장례식 등 작품들은 기를란다요가 26세때 그린 그림이다. *산 지미냐노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탑집, 광장, 성당이 아니라 성녀 피나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1238년, 산 지미냐노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피나는 금발의 매혹적인 소녀였다고 한다. 자신이 먹는 음식의 반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정도로 마음까지 착했는데.. 결핵성 골수염이 발병된 것은 피나가 10살 되던 해. 골수염은 뼈가 파골되며 살과 근육이 녹아 들어 가는 불치의 병이다. 목 밑으로는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일부러 고통을 감수하기 위해 나무 침대에 눕는 결정을 한다. 피부가 썩기 시작하자 벌레와 쥐가 들끓지만 5년 동안의 병상 생활 중 ‘내 상처보다 그리스도의 상처가 더 마음 아프다’고 말하며 불평 한마디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고 그녀를 돌보는 사람은 손이 뒤틀린 벨디아라는 장애인 간호사였다. 그 후 피나는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의 발현을 보았고 교황에게서 ‘내 축일에 하나님께서 너에게 안식을 주리라’ 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의 예언대로 피나는 교황 축일인 1253년 3월 12일, 15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피나가 숨을 거두자 사람이 종을 치지 않았는데도 근처 성당에서는 일제히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또한 유해를 치운 나무 침대에서는 하얀 제비꿏이 피어 올랐고 방안에는 꽃향기로 가득찼으며 뒤 틀려 있던 벨디아의 손이 정상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에도 피나의 무덤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의 병이 치유되는 등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지금도 매 년 3월 12일이 되면 산 지미냐노는 성 피나를 기리는 축제가 거행되며 산 지미냐노 사람들은 하얀 제비꿏을 성 피나의 꽃으로 부르고 있다. 내가 고통 속에 있다면 과연 하나님만을 바라 볼 수 있을까? 햇볕이 가슴으로 내려 앉았다. 글,사진: 곽노은
여행팁: 피렌체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산 지미냐노와 시에나를 가는 방법
*표시의 이미지(2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