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자는 숲속의 발레리나 공주
“옛날 옛적에 왕궁에 예쁜 오로라 공주님이 태어났단다. 축하파티가
열렸지만 초대받지 못한 악마의 저주로 16살이 되었을 때 물레 바늘에 찔리어 죽게 된단다. 그러나 요정이 공주님을 100년 동안 잠이 들게 해 주고 왕자님이 키스하여 마법에서 깨어나고
함께 춤을 추며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었단다.” “엄마 나도 예쁜 공주님이 되고 싶어요. 공주님이 되려면 이렇게 춤추는 거죠.”
어릴 적 엄마가 읽어준 책에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알았고 학창시절에는 발레공연을 보면서 발레리나를 꿈꾸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중년이 되었지만, 발레는 아직도 나에게 가슴 설레게 하는 꿈과 로망이다. 발레를 처음으로 보는 사람에게 “발레란 어떤 춤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발끝으로 서서 추는 춤이라 대답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발레의 전부는 아니지만, 발레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그 대답은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발끝으로
춤춘다는 것을 그저 묘기를 과시하기 위한 곡예쯤으로 생각해 버린다면 발레에서 보아야 할 것을 너무나 많이 놓쳐 버리게 될 것이다. 발레는 몸짓을 통해 말을 한다. 그러나 단지 몸을 움직이며 춤만 추는 것이 아니다.
발레를 통하여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았던
아름다움과 감동을 되찾게 해준다. 그 중 슬리핑뷰티는19세기 러시아 발레의 총결산’이라고 일컬어지는 그랑 발레로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증오, 사랑과 이별 등 그 모든 의미를 무언의 몸짓 언어인
'마임'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오늘날 발레가 존재하는 것은 바로
슬리핑뷰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당대 최고의 무용가들이 말하기도 한다. 디아길레프를 비롯한 여러 무용수가 발레에 매혹되지 않았더라면 발레에 대한 환상과 열정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요즈음은 컴퓨터의 발달로 모든 일이 인터넷의 연결로 마우스의 클릭 하나로 모든 세상과 소통이 되고 있다.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어 세상은 편해졌지만, 우리의 정서는 그만큼 메말라 가고 있다.
밤하늘의 별들과 우거진 숲에서 요정들이 손에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모습을 떠오를 적이 있는가? 왕자님과 함께 춤을 추며 공주가 된 자신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서 주의를 다시 한번 돌아보자. 발레를 접해 보자. 생활이 바쁠수록
일이 힘이 들면 들수록 한 박자 늦춰 보자. 발레에
대한 아무런 기초지식도 없어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그리 어렵지 않게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고 어쩌면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우리의 능력 중에 감탄과 감동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놀라운 잠재적 능력이라고 어디선가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올 한 해가 지나기 전에 문화적 향유를 맘껏 누려보자. 어릴 적 꿈꾸던 공주가 되어 영원히
잊지 못할 진한 감동과 추억을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