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내 마음의 隨筆] 어느 여름방학 - 2 of 3

2021.07.05

  엎친데 덥친 격으로 학교축구부대표선수로 활동하시다가 어느날 우연히 일본인 학생 둘이서 조선학생들을 멸시하는 말들을 주고 받으며 지나가는 것을 들으시고는 2층에서 축구화끈을 조여 메고서 연습에 참가하려던 참에  자리에서 1층으로 벼락같이 축구화를 신은 채로  몸을 날려 2명을 덥친 사건 때문에 겨우 퇴학을 면하고 학교장의 선처로 며칠간 근신으로 겨우겨우 사건이 해결이 되었으나더더욱 학교에서는 중요한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사사건건 모든 일에 끊임 없는 간섭과 감시를 졸업 때까지 받았다고 하셨다.


유학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아버님께서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생활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님께서 환한 얼굴로 나에게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일본의 모교 교장선생님이 한국의 제자들을 만나러 오신다고 하셨다.  아마 한일협정 (韓日協定) 발효되어 일본인의 입국이 허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같다.  아버님께서는 직접 부산 (釜山)으로 교장선생님 일행을 마중 나가셔서 경주부산서울  주요도시를 직접 구경시켜 드리면서 함께 매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하셨다.  말씀하시기로는  때의 교장선생님께서는 아버님을 개인적으로 매우 아끼셔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스승의 사랑으로 아버님을 대하셨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한 교장선생님은 아버님이 학교를 다니셨을 때의 교장선생님의 친아들로서 당시는 평교사 (平敎師) 근무하고 계셨다고 한다.  


한국음식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방문했던 교장선생님이 아버님더러 “최군최군은 아직도  때처럼 용감하고 활달한가?”하고 물어와 서로 손을 잡고 웃으며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 한다.  아마 아버님과 관련된 과거의 두개의  사건을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서 물어본 말씀이었으리라 쉽게 짐작이 간다.  한국방문  교장선생님은 감사의 편지와 함께 학교에 관한 최신 자료와 사진들을 보내 오고나는 아버님의 부탁으로 이에 대한 아주 간단한 감사의 답신 (答信) 교장선생님께 보내는데 도와드린 기억이 난다.


대학에 진학한 나는 개인적인 호기심에 일본어를 수강하고 언젠가는 일본어를  날이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아마도 아버님께서 들려주신 ‘어느 여름방학 이야기 나로하여금 일본어를 교양선택과목으로 배우게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세월은 흘러 나는 미국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근무하던1995  일본의 교토 (京都)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여 나라 (奈羅) 교토 (京都) 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나 아쉽게도 아버님의 모교가 있는 야마구치현 (山口縣)에는  보지 못하였다.  야마구치현 (山口縣) 일본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장이고 한국과는 많은 인연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따로 일본역사를 혼자  공부해 보고자 한다.  일주일 정도의 짧은 일본여행이었지만 어렸을  나는 아버님께로부터 들어온 이야기가 다시금 생각났고일본이라는 나라를 처음으로 방문한지라 재래식시장은 물론신사 (神社), 동네 골목에 있는 조그만 주점그리고 전통공연 관람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보다 많은 것을 보고 혼자 느껴볼려고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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