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破字)의 대가(大家)
필자의 도반 중 辛氏성을 쓰는 이는 측자(側字), 파자(破字)에 매우 능한이였다. 예전에 언젠가 서울 변두리에 있던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목격한 일이다. 필자와 신군이 오랜만에 만난터라 이런저런 사담(私談)을 나누고 있던 중 두 명의 남자가 찾아와 신군에게 상담을 요청하였다. 필자가 예의상 자리를 피해주려하자 굳이 말리며 그대로 있기를 권한다. 신군은 우선 한 남자에게 한문 한 글자를 써보라 한다. 그이는 大자를 쓰고 자신의 진급관계를 알고 싶다고 한다. 신군은 큰소리로 “축하합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진급하시겠습니다. 여러번 진급에서 떨어졌다가 이제야 진급하게 되니 무척 기쁘시겠습니다!” 라고 하며 너스레를 떤다.
이 소리에 남자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이면서도 진급한다는 소리가 좋은지 어색하게 웃으며 “그런데 제가 여러번 진급에 누락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신군은 별 대답 없이 두 번째 남자에게 글자한자를 써보라고 한다. 두 번째 남자도 신군이 어쩌려고 보는 냥 같은 大자를 써놓고 사업운을 묻는다. 신군은 혀를 쯧쯧! 차며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저으며 “좋지 않습니다! 선생은 지금 사업상 돈에 몹시 쪼들리는 처지인데 자본가를 구하려고 애쓰지만 어렵다고 봅니다. 매우 초조하신 상태일텐데 안됐군요!” 라고 한다. 단호하게 어렵다고 하자 이 남자는 인상을 쓰며 대뜸 시비조로 나온다. “아니 왜? 똑같은 글자를 썼는데도 이 친구는 잘된다고 하고 나는 안된다는 거요? 그 이유나 압시다!” 합당한 근거를 대지 못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거친 태도였다.
필자역시 신군이 파자로 운수상담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기는 처음이여서 그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신군 왈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처음 大자를 쓴 친구분의 자세입니다. 大자처럼 어깨가 턱 벌어지고 턱이 강건해 보이는데다가 글씨 또한 힘차고 당당했습니다. 지금 이방에는 전부 네 사람이 있으니 입(口)이 네개인데 이것을 大자에다 붙여보면 기(器)자이고 이것을 그릇기의 약자로 쓰며 또한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으니 이전에 진급에 여러번 탈락하여 진급이 늦게 되는 형상이지요! 그런데 선생이 두 번째 쓴 大자는 조그맣고 힘이 없으며 더욱이 선생의 어깨가 축 쳐져있으니 힘없는 개(犬)가 입을 크게 벌리고 멍멍멍 짖는 형상입니다. 大자는 근본 본(本)글자에서 받침이 되는 한 획을 잃어버린 글자라고도 볼 수 있으니 자본을 다 까먹고 없는 형상이여서 자본을 구하려고 초조해하는 모습이 보여 그렇게 해석 했습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손님에게 멍멍멍 짖는 개새끼 같다는 소리를 태연히 해대는 신군은 평소에도 대놓고 바른 소리 잘하는 이 인지라 필자는 그러려니 했지만 이 소리를 들은 남자는 울화통이 터지는지 책상이라도 뒤집어놓을 행세더니 모두가 바른 소리인지라 흥분을 가라앉히고 묻는다. “맞습니다! 사실상 지금 자금사정이 너무도 좋지 못해 자본가를 빨리 구하지 않으면 쫄딱 망하게 생겼는데 선생께서 너무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니 제가 잠시 흥분했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떡하면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무례했던 점 용서하시고 길을 알려주십시요!” 이 소리를 듣고서야 신군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차분히 대답을 한다. “大자에다 十을 붙여보면 근본 본(本)자가 되는데 지금이 申月(신월‧입추월)이니 몇 달만 꼭 참고 ‘나 죽었소!’ 하고 견디면 선생은 사람(人)이고 申월은 원숭이 이게 합쳐지면 伸(펼신)자가 되니 어깨를 펼 수 있을 겁니다. 사람과 원숭이는 친근하고 원숭이는 재롱을 부려 사람을 웃기니 천우신조로 귀인이 나타나 좋은 일이 있을겁니다!” 라고 하며 이분을 위로해 주었다.
후에 들으니 이 두 남자는 신군의 단골고객이 되었다한다. 필자는 파자(破字)를 특별히 공부한바 없어 이 해석이 맞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적중하였으니 그 두 사람이 단골이 되었으리라! 스승께서는 파자를 제대로 다루어 가르치지는 않으셨다. 공부하는 과정에 있어 심심파적으로 하는 잔재주라 여기셨기 때문이다. 파자와 관련된 일화는 역사서나 야담 등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을 파자하여 ”18년간 집권하다 부하의 총에 땅땅땅땅! 총 4발을 맞고 죽는다“”는 파자는 시중에 너무 널리 알려져 있어 식상할 정도이다. 즉 억지로 꿰어 맞추기라는 느낌이 강해 신빙성이 많이 덜어지지만 어찌되었든 신군은 이 파자에 특별한 재주가 있어 이를 자신의 주 전공으로 정하고 이를 깊이 연구했다.
필자가 이들 두 남자가 돌아간 뒤에 “자네! 아무래도 눈치로 때려잡은 듯한데!” 라고 하니 씩 웃으며 “눈치라기보다는 파자를 할 때 그이의 관상을 적극 참고하는 것은 사실이네!” 라고 한 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신군은 이 파자점으로 생계를 일찍부터 유지하기 시작했는바 스승님께서는 신군을 몹시 미워하셨다. “일찌감치 잔재주만 배워 공부 때려치고 돈벌이에 나서는 신군 같은 놈들이 혹세무민에 빠지기 쉬운거여! 잔망스러운 놈! 쯧쯧쯧” 스승께서 특별히(?) 자신을 미워하니 신군도 지지 않고 대놓고 스승을 비난했다. “그 영감태기(?) 고지식해도 너무 고지식해서 탈이야! 지(?)가 도력이 높아 호풍환우할 줄 알면 뭐해? 그 아까운 재주를 가지고 남들 앞에서 조금만 실력을 보여도 떼돈을 벌고 세상에 유명해지는건 일도 아닌데 맨날 산속 토굴에서 숨쉬기운동(호흡 수련법)이나 하며 생쌀이나 씹어 먹고 사니 정말 불쌍한(?)영감태기지!”
서로가 이렇듯 서로를 미워하며 상종하지 않았고 끝내 두 사람은 이승에서 재회하지 못했다. 신군은 자신의 파자법으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리고 돈도 꽤 벌었다. 지역 신문에도 소개가 되었고 나름 열심히 광고도 하여 고객을 모았다. 집도사고 작은 5층짜리 건물도 사서 부자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쫄딱 망했다는 이야기를 지인으로 부터 듣게 되었다. 돈을 벌고 나서 신군의 불행은 시작됐다. 마누라가 맨날 명품으로 치장하고 고급 승용차로 나들이가 잦더니 제비족 에게 걸려 큰 돈 날리고 부부는 이혼했고 신군은 계속 지 특기(?)나 살릴 일이지 무슨 사업인가 한답시고 거들먹거리다가 부도를 냈고 ‘부정 당좌수표’를 발행한 죄로 감옥까지 갔다한다. 이후 소식이 궁금하여 여기저기 알아보려 했으나 끝내 그 후의 행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자기 분수를 지키지 못한 한 사내의 몰락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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