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 유학생 K군의 위기
K군은 가끔 필자를 찾아와 상담을 하고 가는 교포유학생이다. 180Cm 이 넘는 큰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허멀건 귀공자풍의 청년이었다. K군은 이른바 호화판 조기유학생이라 할 수 있는데 학생신분임에도 BMW745를 타고 온몸은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다니며 자신을 과시하곤 했다. K군의 아버지는 ‘OO스포츠’라고 하면 알 정도의 알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었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많은 땅 부자로 유명하기도 했다. K군은 3남 3녀 중 막내였는데 머리 좋고 명석하여 모두 명문대를 나온 누나‧형들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이러다보니 학교성적은 늘 저조했고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님들 성화에 고등학교도 마치기 전 미국에 ‘도피성유학’을 오게 되었다.
부모님이 사두신 LA요지의 초호화판 콘도에서 살며 학교는 취미삼아 가는 둥 마는 둥 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처럼 K군은 비슷한 처지의 부잣집 자식들과 어울리며 한인타운의 락카페에서 열리는 레이브파티장을 전전했다. 언젠가 필자를 찾았을 때 그해의 K군 운을 짚어보니 ‘풍지진’의 쾌가 짚혔다. ‘복어교하 음사수지’의 쾌다. 풀어보면 ‘고기가 물을 잃어버리는 운이니 만사가 불안하다. 근심과 함정에 빠지게 된다’로 설명할 수 있다. 필자 왈 “올해는 매사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운입니다. 경거망동하면 큰 화를 입을 수니 절대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나 여자를 가까이 하면 큰 함정에 빠지니 유념하고 또 유념해야 합니다.” 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자 K군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여자를 조심하라는 말이군요! 하기사 LA바닥에는 이상한(?) 기집애들 천지니까 조심 해야겠지요” 라고 하며 흘려듣는 모양새였다.
이러던 K군이 어느 날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필자를 찾았다.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어쩌면 좋지요?” 라고 하며 평소의 당당하고 자신 있으며 다소 건방진 태도는 어디가고 자신의 손을 맞잡고 부비면서 어쩔 줄 몰라한다. 아무래도 뭔 큰일을 당한듯했다. 사연은 이렇다. K군은 여느 때처럼 락카페의 레이브파티에 갔다가 한 여학생을 만났다. 첫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에다가 모델 같은 늘씬한 긴 생머리의 여성이었고, 같이 춤을 추고 놀다 늘 그렇듯이 자신의 호화콘도로 데려가 하룻밤을 지냈다. 바람둥이 K군은 이렇듯 하룻밤 지내고나면 여자를 차버리는게 평소의 습관이자 자신만의 규칙인데 이 여자는 그렇게 대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하루 이틀 같이 지내다보니 여자가 자신의 짐을 싸가지고 들어와 의도치 않게 동거생활이 시작됐다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집 앞에서 동거녀가 어떤 남자가 태워다 준 차에서 내려 둘이 포옹을 하고 키스를 나누는 것을 보고 눈이 확 돌아버렸다. 차에 실어두고 있던 골프채를 들고 뛰어나가 휘둘렀는데 상대남자는 등에 골프채를 맞더니 꽁지 빠지게 도망을 쳐버렸고, 여자는 K군 손에 잡혔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이야기해 보려 했는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야 이새끼야! 니가 뭔데 지랄이냐? 니가 내 남편이라도 돼?” 라고 하며 바락바락 대들자 그만 이성을 잃어버렸다. 방에다 가둬놓고 골프채로 사정없이 팔, 다리 등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팼다. 머리를 때리면 죽을것 같아 머리만은 피했으나 인정사정없이 두둘겨 패고 난 뒤 괘씸한 생각이 들어 여자가 발버둥치며 거부하는데도 억지로 성관계를 해버렸다 한다. 이성을 찾고나니 여자는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정신 줄을 놓은듯했다.
갑자기 덜컥 겁이나 약을 사와 발라주고 크리넥스 티슈로 눈물을 닦아주며 용서를 빌었다. “정말 미안하다. 용서해 줘!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니가 다른 남자와 그러는걸 보고 내가 잠시 훼까닥 했었나보다. 정말 미안해! 죽을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줘!” 라고 하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고 인근 한국 식당에 가서 설렁탕도 TO GO해와 달래서 먹이고 계란으로 멍든 자리도 밤새 맛사지 해 주었다 한다. 여자도 어느정도 화가 가신 듯해서 잠시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여자는 없어졌고 집에 돌아온지 5분도 안돼서 경찰이 들이닥쳤다. 살인 미수에 감금, 강간죄가 혐의였다. 살인 미수혐의야 어떡하든 단순 폭력으로 바꿔볼 수 있지만 감금죄나 강간죄는 엄청난 중범으로 다루는게 미국법이라는 변호사의 설명에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아득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까딱 잘못하면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할 판이었다. 순간의 실수가 이런 엄청난 결과를 낳고만 것이다. 필자가 K군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쾌를 짚어보니 다행스럽게도 ‘임지태’의 쾌가 짚혔다. K군의 관재구설에 대한 운이었다. ‘구추상강 낙엽귀근’의 운이니 ‘위기를 모면하고 새싹을 틔운다. 어려움을 이기고 드높은 창공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워지리라!’로 설명될 수 있어서였다. 필자 왈 “다행스럽게도 최악의 처벌은 피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으니 희망을 가져도 될것 같습니다. 허나 다시 한 번 경거망동하면 인생파멸의 길로 들어설테니 이번 일을 교훈삼아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해서는 안됩니다.” 라고 하며 K군을 위로‧질책하였었다.
K군은 불행 중 다행으로 운이 좋아 일단 보석으로 풀려났고 피해 여성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접근금지명령(Temporary Restriction Order)이 내려졌다. 이후 한국 집에서 부모님과 형제들이 득달같이 달려오고 어마어마하게 수임료가 비싼 유능한 형사법 변호사가 선임되어 손을 쓴 결과 피해여성도 진술을 바꿔 K군이 유리한 쪽으로 증언을 했고(아마도 K군 부모님이 피해 여성에게 무지무지 큰 뒷돈을 건냈을 것이다) 무지무지 비싼 변호사도 돈값을 하느라고 검찰 쪽 기소내용을 요리조리 트집 잡아 증거를 무력화시켜 이런 큰일을 저질렀음에도 K군은 벌금과 추징금 그리고 분노조절 프로그램이수라는 너무도 가벼운 처벌로 끝낼 수 있었다. 이곳 미국도 아마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원리가 적용되는 듯하여 다소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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