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동포 청년
필자가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부류의 특이한 이력을 지닌이들도 만나게 되는데 몇 년 전에 상담했던 박씨성을 가진 청년이 여기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박군은 탈북자였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그는 고향에서 친구들과 함께 호기심에 남한의 포르노 테입을 구해 몇 차례 보다가 동네의 악질 내무서원(경찰)에게 걸려 몇 차례나 불려 다니며 심한 구타와 욕설을 듣게 되었다한다.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뇌물을 바치고 이 곤경에서 벗어났지만 뇌물은커녕 당장 먹을 양식도 부족한 박군 집안 형편으로는 속수무책 불려 다니며 곤혹을 치룰 수밖에 없었다. 한창 성적호기심이 강한 청소년이 음란비디오를 본 것이 무슨 큰 죄가 되랴 싶었지만 문제는 남한산 에로비디오였던 것이 꼬투리를 잡힌 것이다.
악질 내무서원의 등쌀에 더 이상 머물다간 필경 골병들어 죽을 것 같자 박군은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마을을 벗어나 타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당국에서 발행한 여행증명서가 필요했지만 박군 형편에 이것저것 따질 게제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죽을 고생을 하며 겨우 국경 강변에 도착하여 이른 새벽까지 인근 산속에 숨어있다 헤엄쳐 강을 건너는데 성공했다. 국경근처 중국인의 돼지농장에서 일꾼으로 일하며 몇 달을 숨어 지내다 박군의 처지를 동정한 조선족의 도움으로 북경을 거쳐 상하이까지 갈 수 있었다. 중국인 식당에서 말도 안되는 저임금으로 몇 년 일을 해서 돈을 모았고 밀입국조직과 어찌하여 선이 닿아 위조여권으로 유럽을 거쳐 멕 시코까지 올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 이른 새벽 자동차편으로 국경을 넘어 아리조나 시골 마을에 도착하였으나 미국에 도착한 지 몇 시간 만에 국경수비대에 즉시 체포되고 만다.
같이 미국에 밀입국한 조선족 여인들은 이민국 수사관들에게 자진해서 본국으로 송환되기를 원한다는 서류에 서명을 했으나 박군은 그럴 수가 없었다. 북한으로 송환되면 즉시 처형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민국 수사관 중에 한인수사관이 있어 자신의 처지를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고 탈북자라는 특별한 이력 때문에 즉시추방은 면할 수 있었다. 결국 자진출국각서 대신에 망명신청탄원서를 제출 할 수 있었고 이에대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임시로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워킹퍼밋이 나왔고 쇼셜번호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완전한 신분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일하고 머무는데는 불편이 없어진 것이다.
처음 필자가 박군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말씨로 보아 연변출신 동포인가 했는데 말씨가 그들과는 어딘지 달랐다. 사주풀이를 해준 뒤 나중에 들어보니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고 하며 사연을 이야기했다. 박군은 북한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란 탓인지 매우 마른체격에 키도 160cm를 넘지 못한 아주 왜소한 체구였는데 얼굴은 하관이 빠르고 눈은 가늘고 옆으로 찢겨있어 매우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특히나 눈빛이 지나치게 짐승의 눈빛처럼 반짝였다. 아마도 오랜 세월 극한의 불안한 시간을 보내 이리된듯했다. 이후 박군은 기술을 배워 스시맨으로 일식집에서 일하게 되었고 어떤 방법인지 모르나 북한의 가족들에게 매달 생활비까지 보내고 있다하여 매우 기특하게 여겼다.
헌데 아이러니한 일은 이렇듯 생명이 위협받는 위태로움 속에서 기회의 땅 미국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박군이 카지노 노름에 빠지는 듯 하여 안타까웠다. 어느 누구하나 마음 터놓고 지낼 이 없어 외로움 때문이려니 했지만 박군의 일탈은 점점 그 도가 넘쳐가는 듯했다. 언젠가 필자에게 찾아와 노름으로 큰돈을 날렸다 실토하는 박군에게 필자가 싫은 소리를 했다. “목숨 걸고 어렵고도 어렵게 미국 땅까지 오게 됐으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 이게 무슨 짓이냐? 북한에서 배곯고 있는 식구들 생각한다면 정말 이래서는 안 되는것 아니냐?” 필자의 질책이 싫었는지 필자를 매섭게 쏘아보는 눈빛이 섬뜩했다. 이후 박군은 필자를 지금까지 다시는 찾지 않았다. 바른 소리하는 필자의 잔소리가 매우 싫었던듯하다.
이후에도 몇 명의 탈북자들을 상담했던바 대체적으로 이들의 특징은 성질이 매우 급했으며 기분이 나쁘면 면전에서 즉각 반응이 나타나고 어떤 때는 지나칠 정도로 굽신거리며 또 어느 때는 반대로 지나치게 거만을 떠는 특징이 있었다. 자기보다 힘쎈 당원이나 보위부직원, 내무서원 등에게는 납작 엎드려 비굴할 정도로 아부해야 하고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한 이에게는 심할 정도로 유세를 떨어야 생존이 가능한 북한의 사회분위기 탓 인것 같았다. 예전에는 남한으로 북한 주민이 넘어오기라도 하면 신문에 떠들썩하게 보도가 되곤 했다. 북한군 비행사인 이웅평씨의 귀순, 북한의사인 김만철씨 일가귀순 등이 큰 화제였으나 이제는 탈북자 수가 수 만명이 이르고 매일매일 일상이 되다시피 귀순탈북자가 많은 세상이다.
국정원은 이런 귀순자들을 일정기간 교육시켜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하나원’이라는 공동체를 운영해오고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많아졌다. 탈북자라는 말이 거슬린다고 ‘새터민’이라는 새로운 명칭이 등장할 정도다. 하지만 많은 새터민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기를 당하거나 방탕한 생활로 파산하거나 각종 범죄에 물들기도 한다. 이제는 새터민 문제가 사회이슈화 될 정도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새터민이 당국의 눈을 피해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일까지도 심심치 않게 생긴다 한다.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부작용에 시달리다 생겨난 결과여서 씁쓸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에서도 예상외로 탈북동포를 간간히 볼 수 있다. 이들을 따뜻한 동포애로 감싸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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