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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웬수에게 친절을 베풀다?

2022.07.22

 




          웬수에게 친절을 베풀다? 

  

 소리장도(笑裏藏刀)란 말이 있다. 이는 ‘웃음 속에 칼날을 품다’라는 말이다. 겉으로 웃으며 상대에게 접근하여 믿게 한 뒤 상대가 눈치 못 채게 은밀히 준비하여 일거에 칼로 베는 전략이라 할 수 있는바 필자의 고객이신 채선생이 이런 책동에 당해 큰 피해를 본 분이다. 채선생님은 50대 초반의 남성분으로 한국에서 집장사로 꽤나 큰돈을 벌었다. 적당한 땅을 구입하여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을 지어서 팔아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채선생은 학교는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일찍이 목수 일을 배워 그 분야에서 알아주는 솜씨 좋은 목수로 소문이 났고, 이천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겨준 땅이 천정부지로 올라 사업밑천이 되어 주었다. 


노가다 공사판 바닥에서부터 두루두루 경험을 한 채선생은 남들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노하우가 있었기에 사업은 날로 번성할 수 있었다. 채선생이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한 계기는 아들놈 때문이었다. 외동아들이 불행히도 뇌성마비 장애인이여서 아무래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적고 배려가 많은 미국에 사는 것이 아들의 장래를 위해 좋다고 판단한 아내의 꾸준한 설득에 몇 년을 거부하다 동의하고 말았다. LA에 와서 보니 모든 것이 답답했다. 한인 타운이라는 곳도 꼭 60~70년대 한국의 변두리 모습처럼 세련되지 못했고 이곳에 사는 한인들의 차림새도 촌 스럽기 그지없었다. 한인 TV방송 광고를 보니 그 수준이 너무도 유치해 헛웃음만 나왔다한다. 


그런데 이런 촌스런 외양과는 달리 막노동하는 사람이나 구멍가게 하는 사람들 모두 ‘개나 소나’ 죄다 골프는 열심히들 치러 다니는 게 생소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고급운동인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골프나 치면서 하는 일 없이 답답하게 몇 달을 보내다보니 미칠 지경이었는데 어느 날인가 한인 싸우나 에서 우연히 한국에서 알았던 지인(知人)을 만나게 된다. 순간 반가운 게 아니라 곤혹스러웠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예전에 사업관계로 경쟁관계에 있던 사람이었다. 같은 동네에 거의 같은 시기에 집을 지어 분양하던 경쟁업체 사장이었는데 채선생이 이런저런 몹쓸 짓을 해서 망하게 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주변 주민들을 동원하여 민원을 넣고 깡패들까지 동원해서 공사와 분양을 방해하고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괴롭혀 결국 손을 들게 하고 말았다. 


이런 사람이니 이곳 천리타향 이국에서 만난 게 반갑기는 커녕 쥐구멍이라도 찾아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씨성을 가진 이분의 태도가 예상 밖이었다. “아이고! 채사장님 아니십니까? 어떻게 이곳에서 다 만나게 되다니 반갑습니다! 언제 미국에 오셨어요?” 채선생이 자신이 지은 죄가 있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김사장님! 옛날 일은 미안하게 됐습니다.” 라고 하자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게 언제적 이야기라고 옛날 고리짝 지나간 일을 거론하십니까? 아무튼 너무도 반갑습니다.” 라고 하며 채선생을 살갑게 대했다. 김사장 자신은 예전에 미국에 건너와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또 건축 일을 하며 이곳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하며 오랜만에 만났는데 식사라도 대접하겠다고 하며 채선생을 끌었다. 


중학교 중퇴인 채선생에 비해 김사장은 대학까지 나왔고 이곳생활이 오래돼서인지 영어와 스페니쉬도 술술 막힘이 없었다. 이곳이 미국이니 영어야 당연히 필수이지만 일꾼들이 남미계통 사람들이 대부분이여서 스페니쉬를 익힐 수밖에 없었다고 하며 이곳 건축시장의 상황에 대해 술 한 잔하며 상세히 채선생에게 설명을 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이것도 큰 인연인데 언제라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하며 명함을 건네주었고 이후 둘은 자주 만나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일과 이곳 LA실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옛날 그렇게 큰 피해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전일은 씻은 듯이 잊고 싹싹하게 대해주는 김사장에게 더 큰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둘은 이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2~3년이 흐른 뒤 채선생은 일감이 많아 매일매일 뛰어다니는 김사장이 부러워 미칠지경이었다. 미국에 온지 몇 년이 지났어도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해 백수마냥 빈둥거리니 무료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입을 벌려 “김사장님 일감이 무척 많으신 것 같은데 저에게도 할 만한 일감을 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염치없지만 매일매일 이렇게 놀고 있자니 답답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라고 하자 “그렇다면 진작 에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저는 채사장님이 그렇게 무료하게 지내시는지 몰랐습니다.” 라고 하며 조만간 일감을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실망하고 있던 차에 연락이 왔다. 


아주 수익성이 좋은 껀수가 하나 나왔는데 자신의 자금만으로는 이 공사를 진행하기가 어려우니 이 작업을 공동으로 한 번 진행해 보면 어떻겠냐? 는 제의였다. 처음 미국에서 시작하는 사업으로서는 그 투자규모가 너무 커서 많이 망설여졌지만 “부담스러우시면 안하셔도 괜찮습니다. 수익성이 좋은 껀수라서 투자에 나설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만 채사장님이 저에게 처음으로 특별히 부탁하신 터라 배려해 드린 것이니 투자 안하신다고 저에게 미안하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부담 갖지 마세요!” 라고 하며 껄껄 웃는 김사장. 결국 채선생은 필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의 재산 전부를 동원하다시피 하여 김사장과 동업에 나섰다. 하지만 공사가 진행될수록 채사장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추가공사비용이 들어가게 되었다며 더 큰 추가투자를 요구해왔다. 


이런 요구에 돈이 없어 응하지 못할 때마다 투자 못한 금액만큼 지분을 포기한다는 서류에 싸인 을 하게 되었다. 무슨 농간을 부렸는지 나중에 보니 채선생의 몫은 거의 없게 되었다. 하도 치밀하게 재주를 부려놓아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이런 경우 법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결국 채선생은 쫄딱 망하고 말았다. 이것이 인과응보인 것이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나중에 내 눈에 피눈물 흘리게 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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