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나 새끼나 똑같은 꼴
‘그 아비에 그 아들’ 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조 임금 중에 패악질로 유명한 ‘연산군’이 있다면 왕족 중에는 태종의 장자인 양녕대군 이제(李褆)와 그의 셋째아들 서산윤 이혜(李譿)가 손꼽힐 수 있다. 양녕대군은 각종 사극드라마에서 동생인 충녕대군(세종)에게 자신의 부족함과 충녕의 영민함을 알고 스스로 세자자리를 물려준 의인(義人)으로 묘사되기도 하나 이는 크게 잘못된 이야기이다. 아버지인 태종은 양녕대군에 대한 기대가 무척이나 컸다. 양녕이 겨우 8세 때 세자로 책봉하고 최고의 학자들을 스승으로 붙였고 양녕의 공부를 위해 특별교재까지 만들라고 닦달했을 정도로 관심과 사랑을 쏟았다.
허나 양녕은 어린나이 때부터 싹수가 노랬다. 공부는 뒷전이요 매일같이 기생들과 오입질에 술에 젖어 살며 남의 첩을 빼앗는 등 끊임없이 난동과 패악질을 부렸다. 아버지 태종이 무섭게 꾸짖고 달래도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태종은 목이 다 쉬도록 통곡을 한 뒤 양평을 폐 세자하고 충녕을 세자에 책봉한다. 폐 세자되고 나서도 양녕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패악질을 그치지 않고 사고를 쳐댔다. 이제는 왕이된 동생 세종이 아버지 태종 대신 힘써 수습하기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런 동생에게 고마워하지도 않고 편지를 보내 의절하자고 강짜를 놓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 “너도 이담에 새끼 나서 키워보면 내 심정을 알 것이다” 라고 하는데 양녕대군의 셋째아들 서산윤(瑞山尹) 이혜가 양녕에게 아버지 태종의 심정을 알게 해주는 주인공이다. 대군의 아들이면 당연히 서산 군(君)이 되어야하나 너무 패악질을 부려 군(君)이 되지못하고 작위가 깎여 윤(尹)이 된 것이다. 원래가 천성이 못된 이혜이지만 본격적으로 삐뚤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양녕대군에게 사랑하는 첩을 빼앗기고부터다. 애비와 아들이 한 여자를 두고 싸움질을 벌여 애비가 아들의 첩을 빼앗은 것이다.
옛날 중국의 현종이 아들인 수왕의 아내인 양귀비를 빼앗은 예가 있고 조선말 매국노 이완용이 며느리와 정분이 나서 그 아들이 자살한 사건(경성일보보도)이 있는데 이들이 그랬다. 이때부터 울화병이 생겨 성질이 더 못되졌다. 술만 처먹으면 난동을 부렸고 결국에는 사람까지 죽였다. 왕족이 살인사건에 연류된 일은 조선조에 종종 있었지만 대개가 자기 수하나 하인들을 시켰지 이혜처럼 자신이 직접 몽둥이나 활을 쏘아죽인 예는 거의 없는데 이혜는 잔인하기 그지없어 직접 자기 손으로 죽였다. 이전에 갑자기 금강산에 들어가 스스로 중이 되겠다고 소동을 벌린 적도 있는데 유교국가로 불교를 억압하던 시기에 왕족이 중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행세로 왕실을 망신 주었고 머리도 남이 깎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밀었다.
실록에서는 ‘이혜가 미친병이 들었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이런저런 패악질은 형인 양녕의 사고를 수습해주었듯이 세종이 양녕의 아들인 조카까지 적극 보호하여 수습해 주었으나 아무리 왕족이라 해도 더 이상 수습이 어려워 결국 서산윤 이혜와 그 가족들은 모두 강화도에 귀양 보내져 위리안치(타인과의 접촉을 못하게 울타리 안에 가 둚)된다. 귀양 가서도 이혜는 정신 못 차리고 쇠못으로 여종을 찌르고 집에 불을 지른 뒤 도망친다. 세종이 승하한 뒤 등극한 문종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장인인 김개와 의원을 보내 다친 종을 치료하게하고 이혜를 잡아들이라 명한다. 다시 잡혀 온 이혜는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을 쇠못으로 찔러 다치게 하였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문종은 그의 아버지인 양녕대군을 보내 타이르게 하였으나 이른 바 ‘도찐개찐’이라고 서로 드잡이만 벌렸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이혜는 모두 잠든 새벽녘에 홑이불을 찢어 끈을 만들어 목을 매고 죽는다. 애비인 양녕대군이 이 사건으로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모르나 아들이 죽은 뒤에도 양녕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방수령들에게 대접을 받으며 풍류와 여색을 계속 즐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카(세조)를 충동질하여 손자뻘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되라고 권유하고 나중에는 죽이라고 충동질까지 한다. 참으로 대단한 부자(父子)이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부자의 사연이었다.
필자의 오랜 고객이신 오여사님 에게도 이런 남편과 아들이 있다. 30 여년 전 이민 오신 오여사님은 매우 부지런하고 성격이 깔끔하신 분이다. 음식솜씨가 좋고 정갈하여 오여사님의 식당은 항상 북적이는 손님으로 늘 매우 바빴다. 식당업으로 기반을 잡아 LA에 본점을 두고 오렌지카운티와 얼바인에도 분점을 열정도로 번성했다. 하지만 문제는 남편과 아들이었다. 고주망태인 남편은 일에는 통 관심이 없고 노상 음주가무를 즐기며 툭하면 여자문제를 일으켰다. 도와주기는커녕 가만히만 있어주면 고맙겠는데 술 먹고 가게에 나와 행패부리고 젊은 여자 건드려 임신까지 시켜 이일을 수습하느라 오여사님 가슴은 새까맣게 탔다.
그런데 설상가상이라고 아들놈 역시 지 애비를 꼭 빼닮았다. 어려서부터 공부에는 통 관심이 없고 못된 애들과 어울려 다니며 사고를 쳐대더니 결국 문제가 생겨 교도소까지 다녀왔다. 나이 서른이 다 된 놈이 일할 생각은 통 안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다가 저녁 무렵에야 슬슬 일어나 밖에 나가 음주가무를 즐긴다. 돈을 안주면 소리소리 지르며 행패다. 지 행실은 생각지 않고 애비랍시고 나서서 아들을 훈계하다가 부자간에 치고 박고 싸우기까지 한다. 이럴 때면 오여사님은 부자간에 무슨 사고라도 날까봐 심장이 오그라진다. 그 애비에 그자식인 것이다.
예전에 부부가 함께 필자에게 상담을 하러 와서는 남편이 필자의 면전에서 자식을 막 욕하자 그래도 모정이 발동하는지 아들의 편을 든다. 남편에게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아들을 욕해! 그래도 당신보다 백번 낫다. 애가 뭘 보고 배웠겠어? 이 웬수야! 그래도 우리 OO는 원래 심성이 착한 아이야. 당신 하는 꼴보고 애가 그렇게 된거야!” 부부의 싸움을 필자는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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