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쾌 중 흉쾌
오래전 이야기다. 별명이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인 털복숭이 장사장님은 세리토스에 거주하시며 LA에 삼겹살 구이집을 운영하셨던 분이다. 별명처럼 외모도 부리부리한 큰 눈에 큰 주먹코, 두터운 입술을 지녔고 무엇보다도 짙고 무성한 수염을 길러 장비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이였다. 성격도 단순하고 호탕하여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데 다소 자기과시가 강하고 허풍이 쎄서 ‘장풍’이라는 또 다른 별명도 지니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K고교출신이었고 자신의 모교에 긍지가 강해 K고교출신이라면 처음 보는 이에게도 음식 값은 물론 받지 않고 비싼 술까지도 공짜로 내줘 부인과 다툼을 종종 벌이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실속은 없지만 주위의 인기를 얻어 여러 동기, 선후배의 추천으로 재미 K고 총동창회 회장을 몇 번이나 연임하고 있었다.
사업은 뒷전이고 동창회 활동에만 전념인데다가 K고교출신 동료나 선후배가 LA에 방문한다고 하면 열일 다 제쳐놓고 공항 Pick-up에서부터 관광일정과 저녁 유흥가 대접까지 챙기려 들었다. 대단한 열성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K고 야간학부 출신이고 졸업도 제대로 못했다는 뒷공론이 있기도 하였지만 모두가 이에 대해서는 함구하여 유야무야된 일도 있었다. 장비氏의 부인은 이런 장비氏 때문에 노상 속이 까맣게 탔다. 자기가 무슨 재벌이나 된다고 매양 이 모양이니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고 달래도 보았지만 ‘소귀에 경읽기’였다. 다행히도 음식점은 맛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서 늘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이러던 어느 날인가 장비氏 내외분이 필자를 찾았다. 미국온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부부 동반하여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거였다. 그동안 못 찾아본 가족친지와 지인들도 만나보고 나간 김에 건강진단도 하고서 들어올 예정이라고 하며 가게를 비워두고 다녀와도 좋은가를 묻는다.
메니저가 있으니 메니저가 종업원 관리하며 영업은 해 나가겠지만 부부 모두가 함께 자리를 비워 둔 적이 없어 내심 불안하여 운을 묻기 위해 필자를 찾은 것이다. 장비 내외분의 사주팔자를 적어놓고 운의 흐름을 읽은 뒤 주역상 쾌(卦)를 짚어보았다. 택수곤(澤水困)쾌 육삼효가 동하였다. 육산 음이 양으로 변하여 택풍대과(澤風大過)가 되어 곤에서 대과로 변해가는 쾌이다. 아주 불길한 쾌다. ‘돌에 부딪히고 가시덤불에 찔리는 고통을 겪으며 집에 돌아간다 해도 아내를 보지못하여 대단히 흉(凶)하다’ 라고 해석될 수 있어서이다. 공자께서 계사 전에 이 말을 인용하여 부연설명하시기를 “곤경을 당할 일이 아닌데 곤경에 빠지니 큰 봉변을 당하고 거처할 곳이 아닌 가시덤불 속에 몸을 두게 되었으니 위태롭다. 욕을 당하고 위태로움이 이쯤되니 죽음에 이를 것이니 아내 볼 겨를이 있겠는가?” 하셨다.
큰 고초를 겪고 몸을 다치어 죽을 수도 있는 흉쾌 중 흉쾌(凶卦 中 凶卦)인 것이다. 필자 왈 “이번 출행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입니다. 가만히 은신하고 있어야지 함부로 길 나섰다가는 큰 화를 당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절대 움직이지 마시고 내년지나 후년에나 다녀 오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라고 하니 장사장님 아주 낭패한 표정을 지으신다. 장사장님 사모님께서 옆에서 “그것봐요! 이상하게 나는 무언가 계속 찜찜 하더라구요! 그래서 당신한테 자꾸 나중에 나가자고 했던 거예요! 계속 꿈자리도 안좋고...” 라고 하시자 장사장님 꽥 소리를 지른다. “시끄러워! 이 여편네야! 한국 나간다고 여기저기 한국에다 다 전화해놓고 같이 이곳저곳 놀러가기로 이사람 저 사람과 일정 다 짜놓았는데 이제와서 어떻게 갑자기 못나간다고 한단 말이야?
거기 있는 사람들도 다 우리일정에 맞춰서 휴가도 내고 일정을 빼 놓았을텐데, 이제 와서 못 간다고 하면 무슨 소릴 듣겠어? 당신이 며칠 동안 하두 찡찡대서 좋은 소리라도 들으려고 왔건만 괜히 더 마음만 찜찜해졌잖아? 마음대로 해! 나 혼자라도 다녀 올 테니까 따라오든지 말든지!” 소리치고 휑하니 나서는 남편을 따라가지도 계속 앉아있지도 못하고 쩔쩔매다 부인도 마지못해 장비氏를 따라나서셨다. 그리고는 오후에 부인이 전화를 했다. “선생님! 어떡해요? 그렇게 안좋다는데... 어떻게 말려볼 방법이 없을까요? 아니면 무사히 다녀올 수 있는 무슨 부적 같은 거라도 없나요?” 하신다. 이에 대해 필자 왈 “제가 십 수년을 같은 자리에 앉아 수없이 많은분들과 만나 영업을 해왔지만 저에게 부적 쓰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부적이나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쁜 것은 미리 알려서 스스로가 알아서 예방을 해야지 부적 같은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안좋다하면 안가는게 상책이지 무슨 다른 길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함부로 움직이면 큰 화(禍)를 당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드렸는데 어떻게 더 강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남편분을 설득해서 이번 여행은 취소하도록 하십시오. 좋다는 것은 맞기도 하고 안맞기도 하지만 나쁘다는 것은 꼭 맞는다는 말을 명심하세요!“ 라고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20년 만에 나름 열심히 노력하여 큰 성공은 아니지만 이제 먹고 살만한 여유가 생겨 이른바 ‘금의환양’하는 장도 길에 필자가 재를 뿌린것 같아 필자역시 찜찜했지만 필자가 짚은 택수곤(澤水困)의 쾌는 주역상 나올 수 있는 쾌상 중 제일 나쁜 쾌상중 하나여서 아주 강하게 이야기 안 해 줄 수가 없었던 거였다.
필자가 칼럼을 쓰면서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운 것은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필자의 영업을 광고하는데 쓰는 기본이 안된 인간으로 오해받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따라서 극단적인 불행한 결과는 글에서 소개하지 않는 것은 원칙으로 해왔다. 또 그런 것을 내세워 필자 자신을 선전해야 할 정도로 한가한 사람도 아니다. 이런 극단적인 불행한 케이스는 주변에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아왔다. 하지만 이제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소개해도 괜찮을듯하여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장사장님은 그 해 기어코 부인과 함께 한국에 나갔고 지인을 만나 밤늦게까지 술을 드시고 숙소로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안타깝게도 명을 달리하시고 말았다. 생전에 인심좋고 많은 이에게 베풀고 사셨던 고인의 명복을 늦게나마 다시 한 번 빌어본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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