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시련
지금껏 살아오면서 주변의 많은 죽음을 보게 되었다. 한 번 오면 한 번 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자연의 순환과도 같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하고 허무함을 안긴다. 생에 처음으로 맞이한 죽음은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같이 살지도 않았고 몇 번 뵙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어슴프레 생각나는 것은 방학 때 외가에 며칠 놀러갔다 집에 돌아올 때는 어린 체격에 짊어지기도 어렵게 옥수수며 콩이며 쌀 등을 바리바리 싸서 어깨에 메어주고 두 손에 쥐어주던 보따리였다. 무책임한 서방만나 죽도록 고생하는 딸이 안스러웠던 외할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지만 그때는 감당 못할 짐을 안기는 할머니가 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엄마가 필자를 데리고 걷고 또 걸어 어느 산등성이에 들어섰다. 왜 엄마가 이 외진 산등성이에 오르는지 몰랐는데 어떤 산소 앞에 이르러서는 엎드려서 통곡을 하는 거였다. 어린나이에 무슨 일 인가싶어 깜짝 놀랐다. 통곡하는 엄마 옆에서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배를 내밀고 자꾸 엄마를 밀치니 엄마가 손을 훽 내저으며 밀어낸다. 가뜩이나 무섭고 엄마의 그런 모습이 싫은데 나를 밀쳐 넘어졌으니 심통이 나서 울음을 터트리며 “아이고 배야! 나 죽는다” 하며 발버둥을 쳐댔다. 이 모습에 깜짝 놀란 어머니는 당황하셔서 어쩔 줄을 모르며 달래셨는데 심통이 안 풀려 계속 그 짓(멋진? 할리우드액션!)을 계속했다. 나중에 커서 어머니께 이야기를 들으니 성묘 갔다가 애한테 무슨 잡귀가 들어 애 잡는지 알았다고 하시며 너무 놀라서 당황하셨던 이야기를 하셨다. 아마도 필자는 어려서 심통스럽고 사기꾼(?)기질을 지녔던 듯했다.
이후 외삼촌이 일찍 젊은 나이에 요절하셨고 그 장남인 외사촌 남동생도 20대 중반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하고 말았다. 영락하는 외가의 운세는 필자가 명리학이 심취한 이후 운세를 풀어보니 그제야 이해가되었다. 그 외에도 필자의 주변 많은 인물들이 저세상으로 가셨다. 연로하신 인척 어르신들의 죽음이야 지극히 당연히 받아들였지만 외사촌 형들의 젊은 시절 요절과 매형과 주변 젊은이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목격하면서 ‘인생의 한 순간에 떨어지는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은 공허한 존재이면서 짧기에 더욱 소중한 것!’ 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되었다.
몇 년 전 필자는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예전부터 예측하기를 그 시기가 필자의 운명에 있어 위험한 시기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다. 십 수년 간의 휴일도 없이 상담에 임하다보니 모든 氣(기)가 소진된듯했다.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잠깐의 휴식도 없이 계속 말을 하다보니 어쩌면 기의 소진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하루 종일 쉼 없이 말을 계속해야하는 직업을 지닌 이들이 기가 소진되어 일찍 요절할 가능성이 높은바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증세는 어지럼증으로 왔다. 어지러우면서 다리의 힘이 다 풀려 서있자면 다리가 덜덜 떨리고 걷자면 구름 위를 걷는 듯이 착지감이 없고 허정허정 걷게 되었다. 다행히도 양‧한방 치료를 겸하여 지극정성 살펴주는 주위분들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치병(治病)의 후유증으로 체중은 급격히 불어서 85kg을 넘는 뚱보가 되기도 했었지만 아무튼 그 고비는 넘겼다. 필자가 스스로의 사주팔자를 풀어보니 10년 후 쯤에 이런 고비가 다시 한 번 닥칠듯하나 이를 이번처럼 극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극복하면 좋고 그렇지 못하면 할 수 없고...)
아픈 중에도 상담업무는 조금도 소홀하지 않았다. 필자가 일을 해야 여러 가정이 먹고 살 수 있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 외에도 만약 잘못된다 하여도 최선을 다해 상담에 임하다 쓰러지고 싶은 욕구가 더 강했다. 2015년 을미년은 필자에게 시련의 해 였다. 15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유지해 온 사무실 건물에 불이나 건물전체가 셧다운 되면서 3주 동안이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발을 동동거려야 했다. 15년 동안의 업무와 관련된 모든 자료와 컴퓨터 등이 사무실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지만 건물출입을 할 수 없어 꺼내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천신만고 끝에 자료를 꺼내서 인근 빌딩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그때 보여주었던 고객들의 감동어린 성원은 필자의 가슴 속 깊이 감사함으로 남아있다.
그 후 이전한 뒤 얼마 안 되어 또 갑자기 죽을 위기를 맞게 된다. 내장의 모든 기능이 갑자기 정지된 것이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서 있지도 눕지도 못하겠고 고통을 잊기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해도 배가 너무 아파 잠이 들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창자가 찢어지는 듯 한 고통은 계속됐다. 25년 쯤 맹장이 터져서 배가 무척 아픈 적이 있었는데 고통이 그때의 열배쯤 되는듯했다.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필자의 담당내과 전문의 선생님은 필자의 상태를 살피더니 급히 이곳저곳 병원을 소개하며 CT촬영과 초음파검사 등을 시켰고 전신을 다 찍어봐도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자 위내시경과 대장 소장 내시경 하는 병원에까지 보내 정밀검사를 하게했다. 신장과 간에도 문제가 없고 심장 및 기타 장기에도 이상이 없었다. 내시경으로 들여다 본 위장과 대장 ‧소장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원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검사를 거치는 사이 고통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의사분들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튼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졌으니 정상업무에 복귀했다. 덕분에 팔자에 없는 정밀건강진단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받은 셈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갑자기 나쁜 탁기(탁한 기운)가 내장에 침입하여 순식간에 위장과 대장소장을 꽁꽁 얼게 하여 마비가 되었던 듯하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죽을 때가 안됐으니 회복된 것은 당연하다할 것이다. 이렇게 2차례 죽도록 아파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솔직히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남겨진 이들이 걱정이었다. 내가없으면 당장 아들 딸 자식들은 어떻게 생활을 해 나갈까? 연로하신 어머님의 생활비는 어쩌나? 필자의 도움 없이 생활 할 수 없는 여러 가정이 걱정되었다! 이래서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는듯하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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