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술에 배부르지 않으나 점 점 좋아질 운세
- 점괘(漸卦) -
필자와 가끔 상담을 하시곤 하는 40대 후반의 이선생께서 필자를 찾았다. 우체국에서 25년 정도를 근무하신분인데 요즈음 추세가 우체국인원을 많이 감원하고 있어 항시 많이 불안해하고 있었고 인원이 감소함에 따라 일은 점차 힘들어져서 차라리 이참에 사직하고 개인 사업을 하면 어떻겠냐? 는 문제로 오랜 시간 고민하다 필자를 찾았다 하신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무엇을 하실 예정인지 물으니 모 대학교 앞에 장소를 하나 보아둔 것이 있는데 이곳에 과일 쥬스 가게를 하면 어떠하겠는가를 묻는다.
우선 주소를 물어 그 터의 기운과 이선생의 사주팔자를 대조해보니 터의 기운이 ‘初失後得(초실후득)’의 터로 진단되었다. ‘처음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으나 나중에는 점점 좋아지는 터’라 할 수 있었다. 터의 기운을 살펴본 뒤 이선생의 운을 짚어보니 주역상 점쾌(漸卦)가 짚힌다. 점쾌는 점진적 기상을 상징한다. 점(漸)은 나아간다는 뜻이다. ‘나아가서 지위를 얻고 일을 수행하여 공을 세우리니 바른 도리를 지켜나간다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강효(剛爻)가 중정의 자리를 얻었고 머물러야 할때엔 머무를 시의를 얻으니 그 작용은 무중하여 막히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점쾌는 바람 또는 나무를 의미하는 손쾌(巽卦)와 산을 의미하는 간쾌(艮卦)로 구성되어 있어 풍산점괘(風山漸卦)라고도 한다. 산에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상징하는 쾌이다.
점(漸)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기상을 말한다. 나무가 쉬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서 거목이 될 수 있지만 하루아침에 거목이 되는 것은 아니듯 눈에 띄게 보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성장하여 거목이 된다는 상(象)이다. 한걸음한걸음 신중하게 내딛는 발에는 실수가 있을리없듯 실수가 없는 전진이 계속될 때 비로소 앞길이 틔이고 지위를 얻고 공을 이루어 번영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첫술에 배부르지 않으나 꾸준히 점차 좋아질 운’인 것이다. 필자 왈 “터의 기운이나 이선생의 운세로 보아 직장을 그만두고 이곳에 가게를 오픈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을 것이니 뒷돈은 여유있게 준비하여 처음부터 초조함에 빠지지 않는게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성장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더디게 느껴지지만 눈에 띄지 않게 꾸준히 좋아져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크게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라고 하자 “첫술에 배부르지 않을거라 하셨는데 그러면 얼마나 지나야 배부를 수가 있나요? 3개월? 6개월? 1년?” 즉시 묻는다. 대개가 거의 이렇다. 그 기간을 수치로 꼭 집어서 이야기 해주기를 바란다. 허나 이를 수치로 꼭 집어서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차피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듯 6개월 정도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고 그 이후에 꾸준히 이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하시라는 뜻입니다. 시작하자마자 대박이 터지는 터도 아니고 이선생의 운도 역시 점진적인 발전을 의미하는 점괘(漸卦)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해주자 뭔가 시원찮은 표정으로 갸웃거린다.
아무튼 이선생은 25년이나 일했던 우체국을 그만두고 과일 쥬스 가게를 오픈했다. 원체 이선생 성격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성격인데 이런 결단을 내렸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였다. 평생에 이선생은 모험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여윳돈이 생기면 은행에 저금이나 했지 그 돈을 이용하여 어느 곳에 투자한다거나 하는 모험은 평생 한 차례도 해보지 못했다. 여윳돈 있음을 알고 주변 인척이나 지인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할때도 욕을 먹을지언정 한 번도 꿔주지 않았다. 여동생이 위급한 사고를 당하여 목돈이 꼭 필요할 때에 간절히 돈을 빌려줄 것을 오빠인 이선생에게 청했지만 그것마저도 단칼에 거절하여 ‘부모형제도 모르고 돈만 아는 놈’으로 가족 사이에 낙인찍혀 돌림뱅이 당하고 말 정도였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돈이 아까워 결혼도 안했다’고 본인 입으로 필자에게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이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르겠으나 이선생의 평소 행동으로 보아 진실일 가능성이 없다고만 할 수도 없다. 이런 이선생이 직장을 때려치우고 개업을 했으니 이는 대단한 결단이요 사건이다. 이선생은 이 결단을 내리기 1년 전부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그 주변 일대를 매우 세심하게 탐색했는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 연령대, 반경 몇 km이내에 있는 가게의 종류와 숫자 등등 남들이 보면 놀라자빠질 정도로 세밀하게 주위상황을 점검하였다. 직장을 나가면서 언제 시간을 내서 이렇듯 치밀한 조사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세밀한 부분까지 빼놓지 않고 체크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리기 직전 필자를 찾아 상담한 것이다. 자신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거였다.
개업하고 일주일 만에 우려했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선생의 예의 그 조급증 때문이었다. 잠시라도 가게가 한가하면 조바심을 내며 가슴을 조였다. 가게 안을 초조하게 왔다갔다 수 백 번을 반복하니 종업원들이 사장눈치가 보여 서로 대화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바짝 긴장한 채 같이 가슴을 조여야 했다. 툭하면 필자를 찾아 조바심을 쳤다. “초실후득의 터라고 하셨는데 도대체 초실이 얼마나 갈까요? 이제쯤이면 후득이 와야 할 때 아닌가요? 선생님이 제 운이 첫술에 배부르지 않으나 차츰 좋아지는 운이라 했는데 차츰 좋아지고는 있는 건가요? 언제 배가 부를 수 있을까요?” 수도 없이 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용해졌다. 아마도 이제는 가게가 안정을 찾은듯했다. 아마도 이제는 배가 부르니 잠잠해졌으리라 짐작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지인들에게 들으니 이선생의 가게가 엄청 바빠졌다 한다. 계속적인 발전을 멀리서나마 기원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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