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애를 태우는 자식들
필자가 상담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자식 때문에 애를 태우는 부모님들의 사연이다. 필자 또한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자식 때문에 애를 태우며 살고 있는 부모의 한 사람이기에 이런 사연을 접하면 남의 일처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식문제로 애를 태우는 것은 그 애절함이 다른 어떤 문제로 애를 태우는 것 보다 더 애절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자기 자신보다도 더 소중하고 이 세상 어떤 귀한 것과도 바꿀 수없는 대단한 존재이다.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파 줄 수 있다면 대신 아파주고 싶고 심지어 대신 죽어줄 수 있다면 이도 마다하지 않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키운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고 배척할 때의 슬픔은 이 세상 어떤 슬픔보다도 클 수밖에 없다.
곽 사장님은 그로서리 마켓으로 크게 성공하신 분이다. 40여 년 전 이민 오셔서 불철주야 침식을 잊고 노력한 끝에 성공하셨다. 처음 마켓 케시어에서 부터 시작하여 오직 한 길 이 분야에서만 노력하여 이뤄낸 성공이다. 시내 요지 곳곳에 대형마켓을 운영하게 되었고 이중 몇 곳은 땅까지 사들였다.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딸 셋은 모두 전문직으로 키워냈고 사위들도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 있었다. 다만 외아들인 막내 하나가 문제였다. 누이들에 비해 자라면서 학교 성적도 시원치 못했고 성격이 소극적 이여서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워낙 잘난 누이들에게 치여서인지 비루먹은 강아지 마냥 슬슬 눈치만보고 우울한 성격이 이와 대조적인, 불같은 곽 사장님에게는 눈에 가시마냥 못마땅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이 지 누이들 반만이라도 따라가 주었으면 하는 게 바람 이였는데 이런 형편이다 보니 곽 사장님은 늘 아들을 야단치며 키웠다. 다행히도 고교 졸업 후 누이들이 다녔던 명문대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남들에게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대학에 진학해주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곽 사장님은 안도 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한 학기를 남겨놓고 갑자기 아들이 실종 됐다. 학교 앞 자취집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디 온다간다 아무 말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전화 한통 없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기가 막힐 노릇 이였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어디 여행이라도 떠났나 보다하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다려 보았으나 몇 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자 애가타기 시작했다. 대학 들어가서는 학교 성적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무슨 큰 고민거리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었다. 요즈음 흔히 보이는 마약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소심한 아들은 고등학교 때도 마리화나는커녕 담배 한 대 못 피울 정도의 꽁생원 이였다. 겁이 많아 그런 것에 손 댈 아이도 아니였다. 뭐가 문제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에 곽 사장님 생신 때 식구들이 모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고 떠들고 하였는데 식구들 중 오직 유일하게 입 꽉 다물고 우울하게 앉아 있는 아들 놈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야! 이놈아! 오랜만에 식구들끼리 모였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야지 뭐가 불만이여서 입 꽉 다물고 얼굴이 우거지상이야! 아휴 못난 놈 같으니라고! 그러고 계속 앉아있으려면 다른 사람 기분까지 망치지 말고 썩 없어져!”라고 야단을 친 게 마음에 걸린다면 걸렸다. 아버지의 야단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아들은 돌아갔었다. 그게 끝 이였다.
학교 친구들도 하나하나 만나 아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탐정까지 비싼 돈 들여 고용하여 찾아 나섰다. 어느 곳에선가 아들을 목격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갔다. 애를 태우며 이근지역을 무작정 헤메며 찾아다니다 지쳐 돌아오기를 수백번이였다. 이러다가 언제인가 드디어 아들 행적의 꼬투리를 잡았다. 고등학교 동창이던 어떤 아이와 모 도시 APT에서 거주하며 인근 미국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제보였다. 가슴이 벌렁거리는 흥분을 억제하며 그곳을 찾아갔다.
APT현관문을 두드리며 아들 이름을 계속 불렀는데 분명 안에 사람이 있는듯 한 데도 결국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할 수없이 APT 앞 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놓고 곽 사장님 내외분은 밤을 꼬박 새웠다. 혹시라도 잠깐 자리를 비운사이 내뺄까봐 APT출입문을 주시하면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아들 찾아 헤메인지 4년 만에 만난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틀 밤을 꼬박 지새우며 기다렸지만 결국 APT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포기하고 아들이 일하고 있다는 식당으로 찾아갔다. 거기서 드디어 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4년 만에 만난 부모이건만 아들은 부모를 외면하고 아무 말도 안했다. 곽 사장님이 “이놈의 자식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 불효막심한 놈아!” 라고 소리치는 것을 부인께서 겨우 말리고 이런저런 말로 달래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일에 방해된다며 식당에서 나가 달라고 하더니 계속 머물러 있자 경찰까지 불렀다. 기가 막힐 노릇 이였다. 결국 경찰에 의해 식당에서 쫒겨나고 말았다. 그러고는 아들은 또 사라졌다.
직장도 그만두고 집도 옮겨 버렸다. 이런 괴씸한 아들이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이게 부모의 심정이다. 계속 행방을 쫒아 찾아가고 또 없어지고 하는 ‘아들찾아 삼만리’의 여정을 결국 8년 만에 끝이 났다. 아들이 크게 뉘우치고 돌아온 것이다. 매년 찾아오셔서 아들이 언제나 돌아올지를 묻는 곽 사장님의 방문도 이제 끝이 난 것이다. 필자를 찾아 오셔서 아들의 귀가 소식을 전하는 곽 사장님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렸다. 늦었지만 정말 다행한 일이였다.
비슷한 사연을 지닌 오 여사님도 비슷한 시기에 필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살면서 엄마가 찾아가도 문도 안 열어 주던 자식이 있었는데 6년 만에 마음을 바꿔 엄마를 만나준 것이다. 며칠 전에 오셔서는 하시는 말이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가나서 많이 다치는 바람에 제가 몇 달 동안이나 아들 집에가서 병간호를 해주고 왔어요. 어릴 때 이후 아들과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보기는 처음 이예요!” 하시는데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셨다. 자식이 뭔지! 눈물이 날 뻔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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