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세상
정선생님은 평생을 오직 부인과 자식을 위해 살아 온 사람 이였다. 한국에서 모 제약회사에 근무하였고 성실함을 인정받아 장래가 촉망되던 사람이다. 아내는 30대 초반에 만나 결혼 하였고 남매를 슬하에 두었다. 아내는 전업주부였지만 정선생님은 워낙 부지런하여 퇴근 후에도 중학생 몇 명을 모아 가정교사를 쎄컨짭으로 뛰어 가정경제는 넉넉한 편이였다. 이런 정선생과는 대조적으로 부인은 성격이 게으르고 다소 사치심이 있는 여자였다. 평온한 가정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부터인가 부인 입에서 이민타령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고동창이던 친한 친구가 이민을 가게 되었고 친구와 가끔 통화를 하며 미국생활이 너무도 좋고 아이들 교육 시스템이 우수하다고 자랑을 늘어놓은 것이 계기였다. 연고라고는 아무도 없는 미국에 뜬끔 없이 이민가자고 졸라대는 아내 성화에 정선생은 한동안 시달리다가 ‘그렇게 생활환경과 교육환경이 좋다니 이참에 한번 결심을 해볼까?’하는 생각이 정선생에게도 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여 자리가 불안해지기도 시작한 시점이여서 정선생은 긴 장고 끝에 드디어 이민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부인 여고동창인 예의 그 이민선배 부부가 공항에 픽업을 왔다. 보통 그렇듯이 정생님도 아내의 동창남편이 하고 있던 페인트 일을 따라 다니며 일을 배웠고 몇 년 후 독립을 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육체노동 이여서 힘은 많이 들었지만 멕시칸 헬퍼 몇 명을 데리고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노력을 하자 거래처도 많이 늘었고 수입도 한국에서 직장생활 하던 때에 비하여 월등히 높았다. 부인은 미국에 와서도 게으른 성격대로 애들 밥이나 겨우 지어 먹이면서 비디오테이프를 잔뜩 빌려다 놓고 드라마에 빠져있었다. 다행이 남매는 미국생활에 잘 적응하여 이민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흐믓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었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이자 정선생님은 멕시칸 동네에 있는 리커스토아를 인수하여 직업을 바꿨다. 새벽 일찍 도시락 2개를 싸들고 가게로 출근하여 자정 무렵까지 장사에 열중했다. 성격이 워낙 꼼꼼해서 직원들에게만 가게를 맡기지 못하는 스타일 이여서 365일 가게에 목숨 걸고 살다시피 했다.
언젠가 찾았을 때 필자 왈 “어떻게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에만 매달려 있을 수 있습니까? 좀 쉬어가며 쉬엄쉬엄 하세요! 특히나 내년에 들어오는 삼재는 아주 조심해야 하는 삼재이니 꼭 명심 하십시요!”라고 하니 씩 웃으며 “저는 일하고 있을 때가 마음이 편합니다. 나 하나 고생해서 우리 식구들 모두 풍족하게 지낼 수 있으니 그 보람으로 사는 거지요!”라고 했었다. 그러다가 이듬해 안타깝게도 가게에서 쓰러졌다. 중풍을 맞은 거였다. 지팡이에 의지해서 겨우 걸을 수 있을 지경이 되자 일을 할 수 없었다. 이 지경이 되자 아내와 남매는 정선생을 무시하고 괄시하기 시작했다. 정선생이 집에만 있게 되자 아내는 매일같이 핑계거리를 만들어 밖으로 싸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아들,딸은 정선생과 말도 섞으려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정선생이 옆에 앉아있던 아들에게 물을 한잔 떠 오라고하자 아들은 건성으로 “응! 알았어.”라고 답한 뒤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아들에게 물심부름을 시켰는데 똑같은 대답만하고 계속 그러고 있자 정선생은 급기야 화가 치밀었다. 짚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아들을 때리려고 하자 아들놈은 쌍욕을 하며 지팡이를 뺏어 내던지더니 아버지를 떠밀어 바닥에 냉동댕이 치는게 아닌가? 얼굴이 다 까지고 앞니가 두 대나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정선생은 드디어 이성을 잃고 지팡이를 집어 아들놈 머리통을 몇 대 때려 주었다. 이때 외출했던 아내가 귀가하다 이 모습을 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아들과 합세하여 정선생에게 달려들었다.
아들놈은 머리가 터져 피가 조금 흐르고 있었는데 이걸 보고 흥분했던 거였다. 요즈음 들어 아내는 정선생 대하기를 길거리 홈리스 보듯이 하며 몸에서 냄새난다고 옆에 잘 오지도 않았었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소리 지르며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와서 정선생만 체포해 갔다. 일단 풀려나긴 했지만 재판을 받아야 했다. 차마 쌍방폭행으로 아들을 맞고소할 수는 없었다. 심리를 맡은 판사는 풍을 맞아 걸음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정선생이 아들을 헤칠 의도로 폭행을 했다고 믿기 어렵고 정황을 듣고는 신체장애자인 정선생을 이정도일로 처벌하기도 석연치 않자 기소유예 판결을 내려 주었다. 후에 필자를 찾아 온 정선생은 하소연하기를 아내는 불구가 된 자신을 차버릴 목적으로 자신에게 미국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돌아가라고 계속 설득을 하고 이를 듣지 않는 자신에게 기회만 생기면 골탕을 먹이고 학대를 한다는 것 이였다.
물론 아들.딸도 애미와 합세해서 지애비를 발에 묻은 똥 취급을 한다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정선생은 부인에게 이혼 당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홀로 귀국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가족 간의 관계도 각박해지는 삭막한 세상이 되고 만듯했다. 후에 이 소식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필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는 “에이 더러운 세상 말세다! 말세이다!”이다. 가족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죽을힘을 다해 용을 써가며 자신을 희생했건만 결국 정선생에게 돌아 온 결과는 이런 참혹한 현실 이였다. 이래서 ‘지나침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희생으로 부인과 자식들이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내는 것을 보며 정선생은 자신의 고생에 대한 보답으로 느끼며 흐믓해 했으나 자기 자신을 돌보는 데는 너무도 소홀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낳게 하고만 것이다.
희생을 해도 적당히 하자.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이 세상 모든 게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선생의 쾌유를 빌어본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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