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예언하는 재미있는 마을이름
예부터 어떤 고장의 이름을 지을 때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 고장의 선비들이 그 지역의 풍수지리를 살피고 앞으로 이 마을에 일어날 운세를 역술로 풀이하여 짓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이름 중에는 신기하게도 후에 일어날 마을의 운명을 너무도 정확히 예측하여 후손들이 신기함을 느끼게 하는 지명이 여럿 있었는바, 예를 들어 날 비(飛)자가 들어간 마을에는 비행장이 들어서고 물 수(水)자가 들어간 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산골마을에 댐이 생기는가하면 벼슬 관(官)자가 들어간 마을에는 국가기관이 들어서기도 했다. 예를 들어보면 충북 중원군 엄정면 추평리에는 인근에 물이 없는데 마을 이름 중 ‘배터마을’과 ‘달랑고개’그리고 ‘물여울’이라는 산골에는 어울리지 않는 마을이름이 있었는바 후에 이것에 추평 저수지가 생기면서 배터마을엔 배를 띄울 수 있는 선착장이 생겼고 달랑 고개까지 물이 ‘달랑달랑 찰랑찰랑’차게 되었으며 물여울 마을로는 수로가 지나가게 되었다.
강원도 춘천시 소양강댐의 수문자리는 옛날부터 수구동(水口洞)이라 불려 왔는데 ‘물이 나오는 입’이라는 마을 이름은 댐이 생기면서 현실이 됐다. 온천지역의 경우 예부터 불려오던 마을이름과 특히나 잘 맞아 떨어졌는데 부곡(釜谷)온천만 해도 예부터 마을이름이 ‘가마솥 골’이였고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풍산2리에서 온천이 발견 됐는데 이 마을 이름이 예부터 ‘더운 샘 골’ 또는 온정리(溫井里)로 불렸다. 서울의 대표적인 외국인 문화지역인 이태원도 과거부터 이태(異胎)로 표기하여 외국인이 많은 국제적인 지역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이렇듯 어떤 고장의 마을 이름은 당시에는 엉뚱한 지명 이였으나 후에 이름과 일치하는 개발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선조들의 지혜가 새삼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몇 개의 구체적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충북 청원군 북일면 비상리(飛上里)와 비중리(飛中里)일대는 중부권 국제공항의 중심지가 되었는데(청주국제공항) 비상리와 비중리는 항공기가 바람을 안고 이착륙해야하는 방향까지도 정확히 예측한듯한 위치로 옛날에는 비하리(飛下里)도 있었다. 옛날부터 ‘쇠섬’으로 불리던 곳에는 1982년 광양제철이 들어서 말 그대로 쇠 섬이 되었다. 충남 대덕군 신년진읍 미호리(渼湖里)는 옛날에 7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금강변의 작은 마을 이였다. 이 마을은 옛날부터 나루터여서 금강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지만 호수와는 전혀 관계없는 곳인데 이런 엉뚱한 이름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1978년 대청댐이 완공 되면서 마을 앞에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졌다. 말 그대도 ‘아름다운 호수마을’이 된 것이다.
아름다운 호수를 관광하러 관광객들이 분비게 된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이 지명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어느 누가 이곳이 아름다운 호숫가로 변할 줄 알았겠는가? 전북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水滿里)는 말 그대로 물이 꽉 차 있는 마을 이라는 뜻인데 이곳은 군내에서도 대표적인 깊은 산골마을이다. 물과는 전혀 관계없는 깊은 산골이여서 이 지명에 의아하게 느끼는 이가 많았는데 1959년부터 1964년 사이에 완주군 동상면 음수리가 동상 댐을 막자 건너편에 있던 수만리는 삼면에 물이 가득 차 육지속의 섬이 되었다. 전남 해남군 화산면 만석동 고천암(庫千岩) 마을은 ‘창고가 일천개’라는 마을이름과는 달리 바닷가에 위치한 작고 가난한 마을에 불과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창고가 천개’라는 지명이 자신들의 옹색한 처지를 비웃는듯하여 유쾌하지 못한 지명으로 여겼는데 이후 간척사업이 진행되어 바다를 막고 어마어마하게 넓은 간척지가 생겨서 지금은 창고 1천개로도 곡식을 다담을 수없는 번창된 부자 마을이 되었다. 충남 공주시 신관리(新官里)는 금강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야트막한 구릉지이다.
공주와는 금강을 끼고 반대편에 있어 공주가 도청소재지였을 때도 교통이 불편한 오지마을 이였다. 그러다 1975년 이곳에 공주사범대학이 옮겨오면서 이곳 지명이 갑자기 화제 거리가 되었다. 원래 이곳은 옛날부터 ‘관골’로 불려 오다가 조선조 때 신관리(新官里)로 바뀌었는데 예부터 이곳사람들은 옹색한 오지의 살림이여서 관청이나 관리하고는 아예 인연이 없는데 공주사대가 매년 1천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여 국가기관(교육계)에 임명시키므로 옛날로 치면 새로운 관리를 임명하는 셈 이여서 이제야 이름값을 하는 고장이 되었다. 이렇듯 옛 선조들은 지역마을 이름을 지을 때도 풍수지리를 면밀히 검토하고 이를 역술과 연결시켜 마을의 미래운명을 예견하여 이름을 지었고 후에 이 지명과 마을 운명이 정확히 일치하여 후세인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예전에 필자가 직접 경험한 이런 일도 있다. 경상북도 산골오지를 어떤 사업상일과 관련하여 방문한 일이 있다. 깊은 산골짜기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지역의 명칭이 늙은이 옹(翁)자를 쓰는 ‘옹골’이였다. 예부터 이곳은 교통이 불편하고 골자기가 깊어 어느 누구도 살지 않았던 장소였는데 이런 지명이 붙어있어 필자는 추측키를 ‘아마도 아주 오랜 옛날에 어떤 쓸쓸한 노인이 이곳에 머문적이 있었나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이곳을 재차 방문할 기회가 있어 가보니 놀랍게도 옛날과는 달리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그 골짜기에는 초현대식으로 잘 지어놓은 건물이 있었는바 공기가 좋고 물 좋은 곳에 돈 많은 노인들을 모시는 고급유료 양로시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옛 선조들은 수 백 년 전에 벌써 이곳에 노인을 돌보는 양로시설이 들어 설 것을 예측하고 이런 지명을 붙인 듯해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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