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의 정부(情夫)를 둔 여인
조선왕조 9대 임금이신 성종 (成宗) 은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날인가 최 측근인 한 신하를 은밀히불러 놓고 좋은날 인 吉日 (길일) 을 골라 성종 자신과 같은 생년 생월 생일 생시 에, 출생한 사람을 찾아오라어명을 내렸다. 명을 받고 길일 (吉日) 에 길을 떠난 신하는 온 나라를 샅샅이 뒤져본 결과 성종과 사주팔자가 같은 한 여인을 찾아 데리고 왔다.여인은 뛰어난 미모를 지녔고 시냇물이 흐르는 듯한 청산유수의 막힘없는 언변은 보통 여인과는 사뭇 달랐다. 즉, 여걸중 여걸이라 할수 있었다.
서울에 거주 한다는 이 여인은 자신의 지금까지 살아온 파란 만장한 삶을 장황히 늘어 놓았다. 여인 왈 “조상 대대로 풍요로움을 누려온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때 부터 총명하고 지혜가 많아 어떤사물을 보면 예리한 판단을 하는 아이라는 소리를 늘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버님 께서는 소인을 유난히 유별나게 사랑해 주시었 사옵니다. 나이가 들자 아버님의 권유에 따라 인품이 고결 하기로 유명한 선비와 결혼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뜻하지 않게 남편이 급사하는 바람에 졸지에 청상과부가 되고마는 지경에 이르렀 사옵니다. 남정네의 정을 모르는채 밤이면 밤마다 외로움에 몸을 떨며 슬픔과 번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독수 공방을 하면서 낮이 되면 양반체면을 도외시 하지 못하는지라 주로 역사책을 탐독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사옵니다.”
이 말을 들은 성종은 고개를 꺄우뚱 했다. 성종 자신과 사주팔자가 같다면 뭣인가 일치 하는 점이 있어야 할텐데 자신과 는 일치하는 점이 하나도 없으니 그점이 이상했던 것이다. 남.녀 의 운명의 흐름이 다르니 이를 감안 하더라도 이상하다 생각한 성종은 여인을 향하여 엄중한 어명을 내렸다.“그대가 지금 이라도 모든것을 솔직히 털어 놓는다면 지금까지 한 말에 거짓이 있을 망정 모두 용서 하겠으나 계속 엉뚱한 거짓말로 짐을 희롱 한다면 살아 남지못할 것이니라!” 성종의 추상같은 추궁에 성종의 환심을 사서 어떻하든 출세해 보려던 여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납작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고백 한다. “상감마마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소인을 죽여 주시옵소서! 어릴적 부자 집에서 태어 났다는 것은 거짓말 이었습니다. 사실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몹시도 궁핍하게 살다, 허기라도 면해볼 요량으로 부자집 종살이 를 하다가 주인집 에서 노비첩을 면제시켜 주고 중매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사옵니다.”
성종은 여인이 종살이 에서 면제되어 결혼하고 남편이 죽은 시기 등을 물어 세밀히 대조해 보니 여인이 종살이 인명부 에서 면제되어 면천된 날 성종은 정식으로 임금이 된 날 이였고 여인의 남편이 죽던날 성종임금은 그날 왕비를 잃게 된 날이였다. ‘그럼 그렇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던 성종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점은 여인의 독수공방 이였다. 성종 임금은 상처 후에도 13명이나되는 후궁을 거느리고 있었던 터라 이에 상응한 운명을 찾아 보고자 더욱 자세히 남자 관계를 엄히 물었다. 성종의 추궁에 얼굴이 붉어진 여인은 어쩔줄 몰라 했다. 성종이 “모든것을 알아 보고자 모처럼 어려운 지기를 마련 했으니 티끌 만끔도 거짓없이 털어 놓아라! 제대로 털어 놓는다면 후히 상을 내릴 것이나 만약 조금 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너는 죽은 목숨이다” 성종의 엄한 추궁에 여인은 그제야 베시시 웃으며 털어 놓는다. “사실 제가 독수공방 하고 있다고 한것은 거짓이 옵니다. 소인은 옛날 중국 어느 왕비가 정부를 십여명 두었듯이 소인 또한 공교롭게도 열세명의 정부를 두고 밤마다 번갈아 가며 즐기고 있사 옵니다.”
성종 임금은 그제서야 납득이 갔다. 비록 여인과 신분은 다르지만 한 나라의 군왕계 에서임금으로 즉위하고 왕비가 일찍 죽은것과 후궁을 열세명이나 둔것등 의운명이 여인이 종살이 에서 면제는 되었으나 남편이 일찍 죽은것 이며 남자 정부를 열세명 이나 둔것이 운명적 으로 서로 환경만 다를뿐 운명의 흐름은 유사하게 나타 난다는 것을 확인 할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살펴 보면 조선 9대왕 성종의 성명은 이혈 (李娎) 이다. 재위 기간은 1469년~1494년 이다. 출생지는 조선 한성부 세자궁 이며 생일은 1457년 7월 30일 이며 사망일은 1494년 12월 24일 이다.조선 9대왕 으로서 세조의 큰아들 덕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7년간 정희대비의 수렴청정을 받았는데 친청을 시작 하면서 훈신 세력을 견제 하고자 신진 사림 세력을 등용하고 왕건 강화를 위해 노력 했다. <경국대전> 의 편차 사업을 이어 받아 1485년에 반포 했으며 1492에는 <대전속록> 을 편찬했다.재위시 억불숭유 정책을 철저히 시행 했으며 국방대책에도 심혈을 기울여 압록강 이북의 건주야인 의 본거지를 정벌하고 두만강 이북의 우디거부락을 소탕 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최고의 폭군인 연산군 (본명,이융) 을 맏아들 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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