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석은 세면장에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수건을 두른채 자신의 책상이 있는 곳으로 온다. 그앞에 다다랐는데 어느 여학생이 서 있는 것을 보고 휙 자기 책상을 잡는다.
범석: 이보시오. 이건 나의 책상인데. 왜 ...(여학생의 얼굴을 본다. 그러고는 피식 웃는다.)
희주: 어머 깜짝이야. 애 떨어지겠어요. 그쪽이야 말로 왜 내 책상에서 그래요?
범석: (가방을 들어 주면서) 이것 봐요. 내 책이잖아요. 내 이름이 적혀 있는 이 책 말이요.(수학책을 들어 자기 이름을 보인다.)
희주: (생긋 웃으며) 저어 화내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요. 어제까지는 그쪽 자리였는지 몰라도 오늘은 내 책상 이에요. 엄연히 돈 내고 이 자리를 받은 것 이라고요. 앞으로 한달간은 내 자리가 될 것이라고요.
범석: 그게 무슨 논리입니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 자리는 나의 자리입니다. 나도 한달은 족히 남았다고요.
희주:어머 그러세요? 그럼 사무실에 가서 확인해 보시고 따져 보아요. 사무실에서 왜 나에게 이 자리를 주었을까요? 어제로 다 끝났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범석: 그렇게 합시다. 같이 가서 따져 보자구요.
(범석은 몇일전에 버스 안에서의 일-종로 도서관에서부터-이 생각나 희주의 새침한 말에 대응한다.)
사무실 직원:왜요 자리가 맘에 안 드나요? 자리가 거기 밖에 비워있는게 없는데.
희주: 저기 있잖아요 글세. 이 사람이 나한테 화를 내면서 자기 자리라고 큰 소리를 치네요.
범석: 나는 아직 한달이나 남았는데 이 자리를 다른사람에게 주면 어떡합니까?
직원: 그럴 리가 있나요. 오늘 오셨죠? 조금 전에 왔던...(장부를 확인하면서) 송 희주 씨?
희주: 네 맞는데요. (번호표를 건넨다.)
직원: 네 맞아요. 이 번호에요.
희주: 거봐요 맞다고 하잖아요.
범석: 그럼 내것은 (번호표를 보이며) 이 번호인데.
직원: 그러네요. 네 맞아요. 범석 학생은 00이고 희주 학생은 00 맞습니다.
둘이 번호를 확인한다.
범석: 번호가 다르잖습니까 내 번호는 98번이고 당신 번호는 99번 내 옆자리 번호 같은데요
희주:이 번호가 그 책상 번호 맞는데. 분명 내 책상에 이 번호가 붙어있었다구요.
직원: 그럼 내가 확인해 드릴게요. 두 학생은 나를 따라 오세요.
그 자리로 와서 희주에게
직원: 희주 학생 번호인 책상이 여기입니다. 희주 학생 책상이요.
그리고 여기가 범석 학생 책상입니다. 이제 다 됐죠. 두 학생 확실하게 자리 결정이 되었으니 확실하게 된 거죠?
희주: 그럼 진작부터 이렇게 알려 주지 그랬어요. 나는 이 번호가 여기인줄 알고.
범석: 아 저기 위에 번호가 적혀 있네요. 위쪽을 확인 했어야 하는데. 좀 덤벙대는 경향이있어요.
희주: 아 여보세요. 말이 좀 심하네요. 처음이니까 ~ 처음이라서 그러죠.
범석: 그럴수도 있겠네. 처음이라는 것이 조금 어설프기도 하니.
희주: 하여간 내가 확인 못한 건 인정! 내 실수. (손을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인정하는 표시를 한다.)
범석: (희주 소지품 옮기는 것을 도우며) 아까 큰 소리로 화 낸거 미안했습니다.
희주: 뭘요. 내 실수로 인해 그런 것으로 마무리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사과한다고 하니 더 미안하네요. 내가.
범석: 이렇게 다 정리됐으니 이제 우리 열심히 공부합시다. 거기는 그쪽. 나는 이쪽에서.
희주: 그런데 자꾸 이쪽 저쪽 하니 듣기에 좀 ~ 그렇죠? 나는 송 희주라고 해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범석: 참 거침없는 여성이네. 한국식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강 범석입니다. (악수를 한다.)
희주: 어떻게 아셨어요? 나 미국에서 살다 여기온지 얼마 안되어요.
범석: 아 그래서. 그런데 미국에서 대학교 안가고 어떻게 한국에서 대학가려고 왔어요?(희주를 살피며) 뭐 누구나 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지만. 아마 나랑 같은 학년 인 것 같은데. 주로 이렇게 사설 도서관을 이용하는 건 대입고사 준비하느라 그럴 것 같으니.
희주: 뭐 대입고사 준비하는 사람만 도서실 이용하라는 의무 있나요? 3학년 이세요?
범석: 그렇긴한데.
희주: 나는 00여고 2학년이에요. 내 친구가 여기가 공부하기에 좋다고 하면서 오늘 예약을 해 주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해서 마음이 들떠서 내가 자리를 잘못 알았네요.
범석: 또 그 얘기네. 나는 00고등학교 3학년. 내일 모레가 입시라. 지금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닌데.
희주: 어머 미안합니다. 오라버니. 열심히 공부할 시간인데 내가 시간을 뺏었네요.
나도 학교 수업이 많이 딸리긴 하죠. 밤새 외워야 할 것도 많고 하고요.
범석: 어찌 그리 쉽게 오라버니라는 말이 나올까? 내 동생도 그렇게 불러 본 적이 없는데.
희주: 내가 미국에 살면서 엄마가 아빠에게 오라버니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거든요. 자주 듣는 말이라서. 그 단어가 편하고 좋아요.
범석: 어머니 아버지께서 참 다정하신 것 같군요.
희주: 아주 한국적으로 살려고 하시는 분들이시죠. 그런데 요즘은 조금 바뀐 것 같지만요.
그럼 잠깐, 나는 밖에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오라버니는 공부하세요.
(뒷짐을 지고 그 자리에서 나온다.)
범석: 나도 열을 냈더니 씻고 왔는데도 덥고 답답한 것 같군. 잠시 나도 차가운 공기라도 쐬야 정신이 맑아질 것 같아서.
희주: 내가 한 학년 어린 것 같은데요. 말 놓으세요. 여기 한국은 나이 차이가 심하다면서요.
범석: 그럼 말을 놓아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초면인데.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에서는 초면에 말을 놓지 않아서...
희주: (밖으로 나간다) 차가운 밤 공기가 참 좋아요.
범석: 아 이제야 정신이 바짝 든다.
희주: 가을이라는 계절이 참 좋아요. 아 참 그 책. 나의 라임책. 그 책이 왜 갑자기 생각나지?
범석: 으 ~ 흠. 그 책 나도
희주: 저어 오라버니 오늘 열심히 공부하세요. 나는 갈 곳이 있네요.
오라버니 파이팅!!! (희주는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며 재빨리 학습실 안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기고 나온다.)
후다닥 가방을 들고 나오는 희주를 범석은 물끄러미 쳐다보다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한다.
내가 오늘 무엇엔가 홀린 것 같아. 정신이 왔다갔다 하네. 참 재미있는 학생이야. 나 공부하는데 정신 뺏기면 안되지. 그래 나도 파이팅! 이다.
범석이 학습실로 들어가 자기 책상에 반듯이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