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느 은퇴 목사님의 인생 이야기

2025.04.16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April 16, 2025)


                                               "어느 은퇴 목사님의 인생 이야기"


며칠전에 어느 은퇴 목사님이 집에서 바인더로 손수 묶은 칼럼집 세권을 우편으로 보내어 주신 것을 받게 되었다.휴스턴에서 은퇴목사로 계시면서 그 지역의 한인신문에 삼년간 매주 기고하신 칼럼을 묶어서 낸 것인데,목사님이 인생 살아 나오신 인생체험 이야기,산전수전 다 겪어 본,이민 교회 목회이야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목사님은 경남 밀양에서625전쟁후 남편으로 부터 버림받은 여인의 네 아이중 막내아들이었다고 한다.가난했던 시절,남편으로 부터 버림받고 어린 자녀들을 홀로 키워야 했던 그 어머니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군용트럭이 도로를 지나갈 때,몸을 던져 트럭 밑으로 뛰어들어 죽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당시의 형편이었지만,등에 업힌 막내 아들이 생각나,그 아들을 키워야 하는 책임감에서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그 아이가 엄마의 목숨을 살려 주었고,다시 그 엄마가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는,눈물겨운 인생이야기 였다.


그 엄마가 밀양에 있는 교회에 다닐 때,허름한 집에 살았는데,그 교회의 목사가 교회건물을 짓고자 성전건축 헌금을 모금할 때,그 엄마는 교회에 드릴 게 없어,자신의 집을 팔아서 성전건축 헌금으로 바치고,본인과 아이들은 다리 밑에서 가마니 떼기를 걸치고 살기로 했다 한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어려운 형편에 집을 팔아 교회 건축 헌금을 내고 다리 밑 움막으로 거처를 옮기려던 찰나,교회에 나오던 고아원 원장이 이 엄마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고아원에 침모로 들어와 고아원 아이들 옷을 수선해 주며 살라는,입주와 취업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목사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아원에서 생활했다고 한다.그때 고아원 원장님이 고아들의 정서함양을 위해 텃밭에 장미꽃을 키웠고,스피커를 통해 동요와 가곡,세계 명곡까지 들려 주었던 것이 목사님의 정서를 풍부하게 해 주었고,음악에 친숙해 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번은 엄마가 재봉틀 일을 하다가 손가락이 재봉틀에 끌려가 바늘에 찔려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던 순간,엄마는 욕을 하지 않고 대신에 벽에 걸린 예수님 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신앙으로 승화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어린 아들이 목격했다고 한다.그 어머니의 신앙심 덕분에 네 아이 중 두 아들은 한국과 미국에서 감리교 은퇴 목사가 되었고,손자도 지금 미국인 교회의 목사로 일하고 있다.


목사님이 고아원 시절,고아원 아이들과 배가 고파 동네 땅콩 밭에 서리를 갔다가 주인한테 잡혔을 때,주인이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대신, “땅콩 서리를 하면,땅꽁 밭이 망가져 피해가 심하니,땅콩이 먹고 싶으면 말을 하라.먹고 싶은 만큼 주겠다.”고 하던 인심 좋은,밭 주인은 한국의 이름없는 성인군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목사님이 국민학교 시절,그 학교의 육성회장의 아들과 운동장에서 다른 아이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목사님이 육성회장 아들을 때려 눕혀 열나게 패 주었는데,그 다음날 목사님은 교장실에 불려갔다 한다.


교장실에서 교장 선생님이 젊쟎게“앞으로 싸우지 마라”한마디만 했어도 충분했을텐데,마을 유지인 육성회장이 어린이이던 목사님에게 욕을 하며 주먹과 발로 무지막지하게 패는데도,교장선생과 다른 선생들은 말릴 생각도 않고 구경만 하더라는 글을 읽고,교육자라는 사람들이 양심도 없는,비겁한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이 포병부대에서 군대 생활할 때 육사출신인 소위가 삼사출신인 대위에게 전화로 쌍욕을 하는 하극상을 옆에서 지켜보았다는 글을 읽고,그 육사 나온 소위가 육사의 명예에 똥칠을 제대로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에는 이런 실화 이야기도 있었다.경북 울진지방의 어느 교회에 부임한 선배 목사님이 재정부장을 새로 세웠는데,재정부장이 돈만 있고,인품이 없었던지,재정부장이 된 후,삼개월 동안 목사의 봉급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목사님은 자존심 때문에“봉급을 달라”는 말을 못하고 있었는데,교회 월례회때 교인들이 재정부장에게, “예산에 책정된 목사님 봉급을 왜 안 주고 있느냐?”고 물었더니,재정부장이, “목사 하는 것 봐서…”라고 했다는 것이다.그렇게 시달리던 목사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지 한달 후에 주무시던 중 심장마비로 돌아 가셨다고 한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목사가 교인들이 주는 봉급에 너무 의존하면,실망할 수도 있으니,부업을 해서라도 목사는 경제자립을 이루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큰 교회 목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목사들은 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안고 목회생활을 하는 것 같다.자발적 가난을 종교인의 자부심으로 알고,물질적으로 궁핍한 중에도 정신적인 고상함을 즐기는, “안빈낙도”의 선비정신을 추구하는 것은 멋진 일일 것이나,그렇지 않다면,가난을 미덕으로 삼는 것은 자신과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목사가 교인들이 내는 헌금으로 생활하는 호시절은 지나 갔다”고 본다.목사의 생활비가 교인들이 내는 헌금에 의존하여 생활하면,목사는 교인들의 노예가 되기 싶다고 본다. “목사는 양을 먹여 양의 젖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나는 별로 좋아 하지 않는다.시대가 변하여,교회가 일반시민들에게서 존경과 신뢰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고,교세가 줄어 들고 있는 마당에,교인들이 내는 헌금으로만 생활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어리석은 생각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하나님이“목사는 목회만 해야지,목회 다른 것은 하면 벌받는다”고 생각한다면,나는 그런 하나님은 하나님 자격이 미달된,미신적인 우상신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모든 새에게 먹을 벌레를 주시지만,벌레를 둥지 안에 던져 넣어 주지는 않는다”는 스웨덴 속담이 있다고 한다.


목사도 사회생활을 하며,일을 하고,돈을 벌어 봐야,교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며 헌금하는 지도 알게 되고,일을 해서 봉사의 댓가로 돈을 벌어 국가에 세금을 내고,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는 숭고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작은 교회에서 나오는 적은 헌금을 받고 가난의 노예가 되어 가족과 친지들에게 민폐를 끼치며,목회자라고 일도 하지 않고 교인들에게 십일조를 비롯하여 헌금만 강요한다면,목사들이“먹고 살기 위해 목회한다는 먹사”라는 욕을 먹기 쉬울 것이다.


이 은퇴 목사님은 미국에서 여러 한인교회들에 섬기면서, “목사는 굶으면 굶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교회도 교인도 없을 때, LA한인 기도원에서40일 기도를 시작한 것으로 시작해서, South Carolina, Santa Barbara, LA, Hawaii, Houston에서 목회할 때, 40일 금식을 네번, 20일 금식을23번 하며,최소한660일의 장기금식을 하셨다고 한다.이 분의 장인 어른이신 목사님은40일 금식을6번 하시고,돌아가시기전에7번째40일 금식기도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다고 한다.


힘든 이민 목회를 하시면서도 목사님과 사모님은 늘 명랑하고 행복하게 사시면서,결혼한 아들들과,입양한 손주에게 사랑을 쏟아 부으며,은퇴후에도“과로사할만큼”바쁘고 즐겁게 지내신다고 하니,아직 뵙지는 못했지만,글과 전화로 알게 된 선배 목사님,유양진 목사님의 여생에 건강과 평안과 즐거움이 늘 함께 하시길 빈다.



                                                     








좋아요
태그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