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죽음을 앞 두고 올린 결혼식 이야기"

2025.04.11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April 11, 2025)


                                               "죽음을 앞 두고 올린 결혼식 이야기"


종합병원에서 채플린으로 일하다 보면, 병원이 꼭 인간생산처리 공장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가끔씩 복도에서 “딩동댕”하는 전자음이 울리는데 이 소리는 3층 산부인과실에서 신생아가 태어났음을 알리는 기쁜 소리이다. 신제품이 공장에서 생산되었음을 알리는 소리라고 할까?


때로는 “Stroke Alert!”이라거나 “Rapid response!”라는 구내방송이 울리는데, 이것은 “뇌졸중 환자 발생, 뇌졸중 환자 발생!” “긴급의료진 호출”과 같은 비상사태를 알리는 방송도 나온다. 이것은 제품에 문제가 생겼으니, 빨리 수리조치를 해달라는 소리로 들린다.


가끔씩 복도에 바퀴가 달린 테이블에 간단한 간식과 물, 그리고 밧데리식 촛불이 켜진 것이 병실 앞에 놓여진 것을 보는데, 이것은 곧 죽음을 맞을 환자와 가족들을 위로하는 병원측의 배려인데, 회생불능의 제품이 곧 폐기처분을 받게 되는 과정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환자가 죽으면, 시신을 하얀 시신 백에 넣은 후 기다리면 장의사가 와서 화장터나 장례식장으로 모셔 간다. 


간단히 말하면, 병원은 살아 나갈 사람과 죽어 나갈 사람 두 부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제품이 생산되고, 고장난 제품은 고치거나, 고칠 수 없으면 폐기 처분되는 공장처럼, 병원은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고쳐질 수 없는 환자는 죽음을 맞음으로, 자연의 순환과정은 계속 되는 것이다.


어제는 암병동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그간 15년간 동거해 온 여자친구와 죽기전에 병원 채플에서 간단한 결혼식을 올리는데 주례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50대 중반의 백인 남성인 환자는 전기 엔지니어였는데, 3주전에 암을 진단받은 후, 신장기능이 악화되어 신장투석을 받는 형편에 이르렀으며, 곧 호스피스로 옮겨 죽음을 맞게 된다는 말을 사회복지사가 말해 주었다.


예정된 시간에 채플에 갔더니, 휠체어에 신랑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 라오스 출신의 동양여성이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신랑의 아버지와 누이, 그리고 작업복 차림의 직장동료 몇 사람과 신부의 어머니인 동양 할머니가 츄리닝복에 운동화를 신은 채 슬픈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신부는 울고 있었고, 신랑은 굳은 표정으로 결혼식에 임하였는데, 간단한 결혼예식을 마친 후 나는 정식으로 결혼한 신랑과 신부임을 공포하고, 결혼 예식을 마쳤다는 결혼예식 공문서에 서명을 했다.


사회 복지사의 말에 의하면, 신부는 기계를 고치는 기계공이고, 신랑은 전기 엔지니어인데, 공장에서 같이 일하면서 사귀게 되어 15년간 동거를 했는데 남자가 갑자기 암으로 죽음을 기다리게 되자, 정식 결혼을 올림으로 신부가 신랑의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남편이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50대 중반의 전기 엔지니어가 갑자기 죽음을 맞아야 하는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까? 그리고 신랑이 곧 죽음을 맞아야 하는 이 현실을 신부는 어떻게 감당할까? 인생이 이렇게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것인가? 사랑은 죽음보다 더 영원할까?


“인생은 풀과 같고, 인생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성경말씀처럼, 하나님만 영원하시고, 우리 인생은 들판에 피었다가 지는 한송이 들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쟌챠키스는, 그의 묘비에 “나는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고, 더 이상 두려운 것도 없다. 나는 자유다”란 말을 남겼다.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 Nikos Kazantzakis) 나는 그의 말을 “나는 천당도 바라지 않고, 지옥도 무섭지 않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해석해 보았다.


수피 무슬림 신비주의자인 시인 Rumi는, “우리의 죽음은 우리와 영원이 결혼하는 날”이라 했다 한다. (Our death is our wedding with eternity. -Rumi)


성 프랜시스는, “내 자매, 죽음이여, 어서 와요. 환영해요.” (My sister, death. Come. I welcome you. -St. Francis)라고 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였다.







좋아요
태그
리뷰0
@와 아이디를 입력하시면 직접 메세지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 revjerry
0 /3000자
사진업로드
x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