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의 은퇴(隱退) 이야기
어제는 실로 오랜만에 우리 부부가 20여년 동안 가깝게 알고 지내는 미국 친구 부부를 반갑게 맞았다. 남편은 지역 방송국의 유명한 앵커였는데 3년 전 쯤 은퇴하였고, 부인은 무용을 전공하는 교수이다.
이런저런 안부인사를 나누다가 자연히 은퇴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은퇴 후 생활이 어떠냐고 물어 보았더니 두사람 다 지난 3년이 꽤 힘들었다고 하였다. 궁금하여 나는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그가 말하기를 은퇴 후 해야 할 일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직장을 그만 두었더니, 일상적인 생활의 리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매우 힘들어져서 정신 건강과 그리고 육체 건강의 유지에 많은 기복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자신의 주변에서도 특히 너무 분주히 생활하다가 별 대책없이 직장에서의 해방감 때문에 은퇴를 갑작스레 단행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은퇴 후 생활을 매우 힘들어 한다는 것이었다. 배행기로 말하면 연착륙(軟着陸: Soft Landing) 이 아닌 경착륙(硬着陸: Hard Landing)을 하는 경우라 하겠다.
그럼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개인적으로 요즘은 무엇을 하느냐고 내가 호기심에 물어 보았더니 그는 다행히 지역사회의 여러 교회가 모여 정기적으로 지역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함께 토론하고 협력하여 그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주는 일을 알게되어 하고 있다고 하였다.다행히 이러한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많은 보람을 느끼고 또 좋아하게 되어 전보다는 건강이 많이 좋아졌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더러 꼭 그냥 갑자기 은퇴하지 말고 내가 은퇴 후 즐기면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들을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차근차근하게 준비한다면 자기처럼 고생하지 않을 거라고 귀중한 체험담을 고맙게도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서로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주소를 교환하고 앞으로 더욱 자주 연락하고 만나 식사도 하기로 약속하며 두 부부가 헤어졌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은퇴(隱退)’에 대한 관념이나 적정 시기, 그리고 은퇴 후의 적절한 생활방법에 어느 정도는 세세한 차이가 있겠지만, 은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치게 되는 인생의 중요한 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생각해 볼 때 그것을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또 더불어 함께 유유히 흘러가는 부드러운 삶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24. 2. 19. 雨水
崇善齋에서
솔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