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로 보는 터의 길흉
필자는 십 수 년 전부터 숫자학(Numerology)을 연구해왔다. 지금 시중에는 ‘숫자의 비밀’ ‘숫자와 운명의 관계’ 등등의 수많은 숫자와 운명에 대한 책들이 나와 있지만 체계적인 논리성을 세운 이론들은 보기 어려웠다. 예부터 숫자는 작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평생 사용해야 하는 이름이 어떤 이의 일생에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기에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귀한 자손의 이름을 함부로 짓지 않고 그이의 사주팔자에 맞추어 정성껏 이름을 지었는바 사주팔자 속 부족한 오행은 보충해 주고 지나치게 과다한 오행은 억제해 주어 오행의 균형을 맞추어 주고 한자의 획수(숫자)를 깊이 따져 이격(利格), 정격(貞格), 형격(亨格), 등을 두루 맞추어 그이에게 행운을 줄 수 있는 이름 짓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렇듯 성명학에서 숫자의 배합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서양에서도 예부터 숫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서양에서 오랫동안 전해져왔던 근거 없는 숫자에 대한 미신 중 ‘13일의 금요일’을 매우 불길한 날로 보는 사례가 있다. 금요일에는 결혼식이나 이사를 피하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거나, 장거리 여행을 떠나거나, 어린 아이를 부모로부터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알려져 왔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신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오랜 옛날부터 기독교 국가에서는 금요일은 이런 이유 때문에 제한과 단식 그리고 금육(禁肉)의 날로 지켜지기도 했다. 이에 반해 일요일은 행운의 날로 보았고 이날을 신성하게 여겨 예배에 참석하여 신을 숭배하고 휴식을 취했다. 따라서 일요일에 장사를 지내거나 묘를 파헤치는 것을 매우 흉하게 여기고 기피해왔다.
13일을 불행의 날로 여기는 것은 예수와 그의 열두제자들이 열세명이였고 열세번째 제자인 유다가 예수를 밀고하여 죽인 밀고자, 반역자였다는 점과 12라는 숫자가 완전하고 13은 12에서 1이 초과되었으므로 적당한 한계를 넘는다는 이유로 위험한 숫자로 보았다. 물건의 한 묶음, 즉 원다즌은 12개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계란도 12개가 한 묶음으로 되어있다. 숫자는 진동(Vibration)이다. 숫자학은 단순하게 이야기해보자면 진동성이 확장된 학문으로 1에서 9까지의 수는 완전한 주기를 이룬다. 진동하는 만물의 이론은 19세기 물리학, 특히나 빛의 파동이론에 힘입어 19세기 후반부터 신뢰성을 얻어왔다.
만물은 수많은 현실이 진동하고 각기 다른 소리를 내면서도 조화가 되는 거대한 하프나 피아노처럼 1에서 9까지의 숫자는 이런 진동의 가장 기본적인 부호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이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떤 주어진 순간에 진동하는 우주의 조화인 것이다. 역학에 있어 3과 8은 木(나무)를 뜻하며 색깔로는 청색을 뜻한다. 2와7은 火(불)를 뜻하며 적색을 나타낸다. 5와 10은 土(흙)을 뜻하며 황색을 뜻하며, 4와 9는 金(쇠)를 뜻하며 백색을 나타낸다. 끝으로 1과 6은 水(물)을 뜻하며 검은색을 나타낸다. 따라서 3과 8은 木生火(목생화)의 원리에 따라 2와 7을 生(생)하고 2와 7은 火生土(화생토)의 원리에 따라 5와 10이라는 숫자를 生(생)하며 5와 10은 土生金(토생금)의 원리에 따라 4와 9를 生(생)하며 4와 9라는 숫자는 金生水(금생수)의 원리에 따라 1과 6이라는 숫자를 生(생)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3과 8은 木剋土(목극토)의 원리에 따라 5와 10이라는 숫자를 剋(극)하고 5와 10은 土剋水(토극수)의 원리에 따라 1과 6이라는 숫자를 剋(극)하며 1과 6은 水剋火(수극화)의 원리에 따라 2와 7이라는 숫자를 剋(극)하게 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6세기 1,2,3,4라는 숫자가 더해져 10을 산출하고 이 네 개의 숫자는 10을 만들기에 필수적인 수라는 구조적 원리를 발견하고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를 증명했다. “1은 이론상으로 어떤 차원도 가지지 않은 점이며 2는 길이는 있지만 폭이 없는 선을, 3은 면적을, 4는 완전한 하나의 물체를 만든다. 이것은 모든 사물과 존재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바 1이라는 원천적인 단위에서 2가 만들어져서 이중성과 대립을 만들고 다음단계는 서로 대립하는 적과 화해하는 3이고 그다음 단계는 물건의 단단함과 형태 그리고 명백한 표현을 창조하는 4이다” 라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소에도 우연이든 필연이든 부여받은 숫자가 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연이든 필연이든 타고나는 사주팔자 속 숫자가 있듯이 주소도 역시 같다. 이 터의 숫자 속 암호를 풀어내어 내 사주팔자 속 숫자와 대조하여 그 숫자들의 상생, 상극의 관계를 풀어내면 그 터가 나의 운명(사주팔자)의 흐름에 도움이 되는 터인지 해가되는 터인지를 알 수 있다. 이 방법은 필자가 십 수 년 동안 연구를 거듭하여 밝혀낸 新理論(신이론)이다. 시중의 일부 인사들이 ‘나의 행운의 숫자’ ‘나에게 맞는 행운의 주소’ 등등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서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하나 이는 초등학생도 아닌 유치원적인 수준임을 교만(?)하게도 감히 말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필자의 오랜 고객이신 R선생께서 필자를 방문하셨다. 이분은 오래 전부터 필자의 충언을 잘 들으시고 믿고 따르시던 분인데 작년말경 새로 구입하여 이사 하시려던 터가 필자가 주소로 보기에 이분과 맞지 않는 흉터여서 입주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필자의 말을 무시하고 부득부득 우기고 이집에 입주한 이후 집안에 불행이 끊이지 않아 고생을 하신 뒤였다. 이분 왈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고집부려 이사한 것이 큰 화(禍)를 불렀습니다. 어느 다른 철학원에 가서 물어보니 ‘집에 직접 나가보지도 않고 앉아서 주소만 가지고 어떻게 터의 기운을 아느냐! 엉터리다!’ 라는 소리를 듣고 그냥 이사했다가 집안에 큰 불행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라고 고백하신다.
이에 대해 필자 왈 “의사가 환자를 진맥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직접 맥을 짚어보고 이런저런 증세에 대해 질문을 하고 만져보고 두드려 보고 하는 방법도 있지만 예부터 참 명의는 환자의 얼굴만 척보고도 관형찰색으로 정확히 그이의 병명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어떻게 환자 맥도 짚지 않고 병명을 알 수 있나? 엉터리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 수준이 그 정도이니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라고 하니 수긍이 가는 듯 깊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필자의 경우 다른 철학원이나 무속인에 대해 손님들에게 이렇고 저렇고를 결코 이야기 하지 않는다. 논쟁을 벌리려 시비를 걸어와도 일체 대응하지 않는다. 대학생과 유치원생이 싸우면 무조건 대학생이 불리하다. 이겨도 욕먹고 져도 욕먹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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