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날벼락
LA 인근 작은 도시에서 마켙을 운영하는 공선생은 50대 초반의 아주 근면한 분이다. 아들, 딸 남매를 두었는데 아들은 대학에 진학하여 집을 떠났고 늦둥이 딸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공선생은 그야말로 자수성가한 분이다. 한국에서 무작정 미국에 건너온 후 갖은 고생 끝에 이루어놓은 가게여서 가게에 대한 애착이 어느 누구보다도 컸다. 부인 역시 공선생의 뜻에 잘 따라주어 가정은 늘 행복했다. 다만 마켙이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게 오픈시간이 길어 공선생은 늘 잠이 부족한게 문제였다. 어찌나 바쁜지 공선생은 예전에 부인과 함께 가게 오픈문제로 필자와 한 번 상담한 후로는 시간이 없어 늘 부인에게 필자를 찾아 의논하라고 한 뒤 부인으로부터 필자의 말을 전해 듣는 식이였다.
공선생이 늘 신경을 쓰는 것은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물건을 고르는 척 서성대기만 하는 검은 중년부인들이였다. 이런 사람들 중에 바빠서 정신없는 틈을 이용하여 물건을 훔쳐가는 일이 많아 매상에 큰 지장을 주기에 늘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이러던 어느 날 늦은 밤 시간 몸집이 하마 같은 중년 흑인부인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수상한 행동을 하는게 보였다. 그러다 슬쩍 가게를 빠져 나가길래 수상한 생각이 들어 쫓아가 그 흑인여자를 붙들어 세우고 들고 있는 주머니를 보자고했다. 그러자 그 여자가 갑자기 큰소리를 질러대며 쌍욕을 한참이나 퍼붓더니 바쁘게 뒤뚱거리며 도망을 쳤다. 도망가는 여인을 쫓아가 쉽게 붙잡았다.
엉덩이가 하마엉덩이처럼 엄청나게 커서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도망갔지만 느려 터져 날씬한 공선생의 발걸음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들고 있는 가방주머니를 열어보니 과일과 채소 등이 들어 있었다. 가방을 뺏고 나서 욕에 욕을 해대는 흑인여자를 놓아 주었는데 이튿날 저녁 관할 경찰서에서 한 형사가 찾아와 어제 그 흑인여자가 공선생을 성추행 및 강도혐의로 고소를 했다고 하며 불문곡직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끌고 갔다. 이런저런 질문을 해대는데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나 대강 짐작해보니 공선생이 그 여인의 유방과 은밀한 부위 등을 주물러 대며 몸수색을 했고 돈이 들어있는 가방까지 강탈했다고 말하는듯했다. 그냥 버려도 누구하나 가져가지 않을 비닐로 된 가방 옆 주머니에서는 쪼글쪼글 구겨지게 접혀있는 1불짜리 3장이 들어 있길래 그 여자가 오면 돌려주려고 가게 구석에 던져 놓았는데 이것을 가지고 돈을 강탈당하기까지 했다며 고발을 한 것이었다.
이런저런 해명을 하고 싶어도 영어가 짧아 제대로 할 수 없어 한인경찰을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하자 한인경관이 순찰을 나갔다며 몇 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다. 이윽고 한인경관이 나타났는데 한국말이 영~ 서툰 사람이었다. 유치원생 수준의 한국어를 할 정도이니 공선생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저씨 맴(흑인 여자 지칭)만져? 안 만져?” “아저씨 맴 마니 뺏어? 안 뺏어?” 이런 수준이니 대화가 될 일이 없었다. 결국 집에 연락을 해서 가족들과 변호사가 달려오고 난 뒤 하룻밤을 유치장에서 보낸 뒤 겨우 풀려날 수 있었는데 강도혐의는 벗었지만 성추행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물론 공선생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성추행범죄는 중범죄여서 일단 입건되어 유죄판결을 받게되면 최소 1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된다는 변호사의 설명에 공선생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미국 감옥에 가게 되면 덩치가 산더미 같은 흉악범들의 성노리개가 되고 결국 에이즈에 걸려 죽게 된다는 소리도 들은 터라 공포심에 벌벌 떨었다. 공선생과 부인이 필자를 찾아와 이런 사연을 이야기하며 앞날에 대해 물었을 때 필자가 이분들의 운을 짚어보니 승지사의 쾌가 짚혔다. ‘입산금호 생사난변’의 운으로 좋지 못한 쾌였다. ‘어렵게 구한 일이나 자리가 자신을 퇴짜 놓는다. 관과 관련된 일은 성과가 없다’로 해석될 수 있는 쾌였기 때문이다. 필자 왈 “좋지 못한 운입니다. 일이 커질 것 같습니다. 불리한 재판결과가 될 수 있고 터의 좋지 못한 변동수도 보입니다. 난감하군요.” 라고 하자 공선생 내외는 울상이 되어 “어쩌면 좋지요? 선생님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라고 울부짖듯이 묻는다.
“그래도 전혀 희망이 안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차선의 해결책은 나올 수 있으니 너무 절망하지 마시고 기다려 보시지요!” 필자의 위로의 말에도 아무 반응이 없이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가 돌아갔다. 재판이 열리고 무려 5번이나 법정에 불려 다니며 시달리던 어느 날 변호사가 이런 제안을 했다. “담당 검사와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해 봤는데 검사가 여자 몸에 손을 댔다고만 인정하면 실형 없이 5년의 보호관찰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다고 제안 하더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재판결과가 좋게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변호사의 제안에 공 선생은 반색을 했다. 감옥에 만 가지 않는다면 억울하지만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큰문제가 있음을 재판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공선생은 처음 미국에 대책 없이 온 관계로 그동안 학생신분으로 학교에 등록만 해놓고 수년을 지내왔으며 가게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E2 비자로 미국생활을 해왔는데 사건이 날 당시에는 취업이민으로 영주권신청이 수속중이였다. 헌데 중범에 해당되는 성범죄자는 앞으로 영원히 영주권을 받을 수 없고 심지어 이민국에 이 유죄사실이 밝혀지면 추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설명도 안해준 변호사가 죽이고 싶도록 원망 스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E2비자 연장일도 눈앞에 닥쳤는데 눈앞이 또다시 깜깜해지는 상황이 되고만 것이다. ‘어렵게 구한 일이나 자리가 자신을 퇴짜 놓는다. 관과 관련된 일은 성과가 없다’고 필자가 짚은 쾌대로 되고 만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럴 때는 필자의 예측이 빗나갔으면 좋았으련만 적중되고 만 것이다. 결국 공 선생은 미국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부인은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없이 미국에 머물고 공선생 혼자 한국에 나가서 돈을 벌어 부쳐주는 ‘기러기 아빠’가 된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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