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각정(火脚亭)
율곡(栗谷)이이는 복서와 사주‧주역‧천문에 이르기까지 깊이 통달한 선각자였다. 이이는 병조판서시절 북변 이탕개의 난을 평정하고 난 후 국방의 허술함을 절실히 느껴 선조에게 10만 양병설을 건의하였다. “전하 미리 10만의 군병을 양성하여 완급에 대비하여야 하나이다. 그렇지 못하면 10년을 넘기지 못하여 장차 국토가 무너지게 되는 큰 난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이는 역학적으로 쾌를 짚어보고 장차 큰 난이 닥칠 것을 예견하여 이렇게 건의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참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딴지 거는 사람은 꼭 있다. 유성룡이 반대하고 나섰다. “전하 태평무사할 때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큰 화를 기르는 것이 되옵나이다.” 10만이나 되는 군사를 양병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신경 쓸 일이 많은 일이니 선조는 편하게 지내고 싶어 유성룡의 말이 반가왔다.
결국 이이의 주장은 묵살된다. 어전을 물러나와 이이가 유성룡에게 야단친다. “국사가 달걀을 포개놓은 것보다도 더 위태롭거늘 속된 선비는 시무(時務)를 모르니 그들에게는 바랄 것이 없지만 식견 있는 그대가 어찌 반대한단 말이요?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요.” 유성룡은 늙은 꼰대가 지랄한다고 여기고 코웃음 쳤다. 이이가 죽은 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정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잇따르자 선조는 황윤길을 정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허성을 서장관으로 삼아 일본에 보냈다. 사신을 보내 그들의 동정을 살펴보려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 사절들은 일본에서 푸대접을 당한다. 일본에 온지 5개월 만에야 겨우 국서를 전할 수 있었고 그사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와는 단 한 차례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사절을 위해 연회도 베풀지 않고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였다. 탁자하나를 앞에 놓고 떡 한 그릇과 질그릇 잔으로 술을 한잔씩 주는데 술도 탁주였다. 그나마 술도 두어 순 배 돌리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늦게 본 아들인 아기를 안고나와 거만을 떨며 오만방자했다. 일본에서 이런 푸대접을 받고 온 정사와 부사에게 선조가 물었다. “전쟁을 일으킬 것 같소?” 이 질문에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싸움에 여념 없는 정세대로 대답이 영 달랐다. 서인인 정사 황윤길은 “그들이 반드시 쳐들어 올 것 같나이다!” 라고 하자 동인인 부사 김성일은 아니라고 했다. 도요토미의 모습을 묻는 질문에도 정사는 “그의 눈에 광채가 있고 담력과 지략이 있어보였습니다.” 라고 했고 이에 대해 부사는 “아니옵니다. 그의 눈은 쥐새끼 눈 같았습니다. 두려울 것 없는 자 이옵니다.” 라고 딴말을 한다.
선조가 “어찌하여 의견이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하며 답답해하자 문제의 인물 유성룡이 또 끼어든다. 같은 동인인 부사 김성일을 돕기 위해서였다. “전하, 설령 도요토미가 침범한다 하더라도 그 모양새를 들어보니 크게 걱정할 것 없나이다. 일본이 협박성 국서를 보낸 것도 허풍에 불과하니 근거 없는 일로 명나라에 보고했다가는 변방에 소요만 일으킬 것이므로 미안한 일이 옵니다. 또한 복건성이 일본과 멀지 않아 만약 우리가 중국에 알린 것이 일본사람 귀에 들어간다면 오히려 의혹만 살 뿐이니 결코 명나라에 알릴 필요가 없나이다!” 선조는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유성룡의 말이 달콤했다. 해가 바뀌어 임진년이 되자 왜에서 건너오는 소식이 전쟁을 일으킬 기미가 확실해졌다.
선조는 이때는 이미 죽은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떠올렸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선조는 급히 비변사에 명하여 장수가 될 만한 인재를 추천하도록 했다. 이때 좌의정 유성룡이 딱 한 번 옳은 짓을 한다. 가리포 첨사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로 추천한 것이다. 한편 예전에 선조에게 10만양병설을 강력히 주장했으나 실패한 뒤 물러난 이이는 갑년, 갑월, 갑일, 갑시에 왜적이 북상하여 한양을 점령하고 아군이 크게 패해 도성이 함락될 것이고 이때 선조와 조정대신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예견하고 임진각 언덕에다 관솔로 정자를 지어놓고 이름을 화각정(火脚亭)이라 부쳐놓고 자기의 노복들에게 매일매일 이 정자 기둥과 마룻바닥에 기름을 부어놓으라고 지시했다. 정자에다 아까운 기름을 매일 매일 부어놓으라니 “아무래도 우리 대감마님이 노망이 난 것 같아!” 하면서도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이가 예언했던 시기에 과연 왜장 가등 청정이 왜병을 이끌고 부산을 거쳐 진주를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한양 땅을 포위하였다. 이렇게 되자 목숨이 경각에 이른 선조와 조정대신들은 도성을 버리고 일단 의주로 피난할 것을 결정하게 된다. 비 내리는 컴컴한 야밤에 몰래 궁을 빠져나온 일행은 길이 험하고 안개마저 자욱해져 더 이상 산길을 택할 수 없자 할 수 없이 수로를 택할 것을 결심하고 이른바 ‘모진 개고생’을 해서 겨우 임진강변에 이르렀다. 서둘러 나루터를 찾아보았으나 사방이 온통 칠흙 같은 어둠인지라 앞길을 도저히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헤매이다 적군에게 잡히면 선조이하 조정대신들은 왜군에게 도륙당할 것이 뻔했다. 우왕좌왕하며 절망에 빠져있을 때 율곡선생이 생전에 했던 말을 기억한 한 신하가 화각정을 찾아 불을 놓았다.
기름을 몇 년간이나 듬뿍 먹은 관솔로 지은 정자는 한 번 불이 붙자 사방이 대낮같이 밝아졌다. 비로소 일행은 진로를 잡아 무사히 강을 건너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다. 율곡 이이선생은 자신이 죽은 뒤 선조가 어느 날 어느 때 위태로움에 처하게 되고 자신이 정자를 지은 곳에 도달 할 것을 예견하여 이토록 미리 조치를 취해 선조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또한 이이선생은 죽기 전 크게 나라를 걱정하여 이순신장군을 불러 독용잠처 수유청(毒龍潛處 水猶淸)이라는 글귀를 한지에 써주며 임진왜란의 처방책도 알려주었는바 이순신장군은 이를 토대로 독용(毒龍)인 거북선을 축조하여 왜선을 격침하게 되는바 이이 선생은 주역 상 쾌상인 이괘(離卦)를 짚어 이에 대비하게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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