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운명 - 파탄난 우정 -
강여사와 문여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 이다. 노상 늘 붙어 다녔는데 ‘바늘 가는데 실 따라 간다’할 정도였다. 늘 붙어 다니면서 너무도 가깝다보니 ‘저 사람들 혹시 레즈비언 아냐?’하는 의심을 받을 정도였지만 단연코 그렇지 않다. 중국연변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나 같은 학교를 다녔고 미국에도 함께 건너왔다. 특이하게도 중국에서 같은 나이에 결혼했고 같은 해에 똑같이 딸을 낳았으며 남편과 사이가 원만치 못했던 것도 같고 아기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남편을 버리듯 미국에 온 것도 같다. 미국에 와서도 늘 같이 지냈는데 지압사로 일하면서도 언제나 똑같은 가게에서 함께 일했다.
일하는 가게를 옮겨도 꼭 함께였다. 그러니 필자를 10년 전 찾았을 때도 역시 함께였다. 생긴 것도 비슷하게 생겨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들을 쌍둥이 아니면 형제로 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가늘게 옆으로 쪽 찢어진 눈매에 눈웃음을 달고 있는 것까지 비슷했다. 한마디로 요염하고 섹시한 얼굴에 몸매도 시원하게 잘빠졌다. 처음 필자를 찾은 이후 매년 찾아와 상담을 하곤 했는데 역시 언제나 둘이 함께였다. 언젠가 필자 왈 “쌍둥이도 아닌데 생김새도 비슷하고 거기다 언제나 늘 붙어 다니는 이런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라고 하니 두 사람 동시에 깔깔거리며 웃더니 “아마 전생에 부부였던 것 같습니다!”라고 하며 더 더욱 웃어 댔다. 아무튼 다정한 모습이 보기 좋아 보였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가족 친지하나 없는 판에 이런 친구라도 있으니 둘에게는 너무도 다행한 일인 것 같았다. 상담하면서 물으니 둘 다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했는데 아마도 첫 결혼이 순탄치 못했던 것이 원인인 듯했다. 둘은 항시 같이 일하고 같이 쉬고 늘 한 공간에 있으니 수입도 거의 비슷했는데 이들 사이에는 니꺼 내꺼가 없었다. 망명을 이유로 영주권신청도 했는데 당연히 같은 변호사를 통해서였다. 망명신청이 허락되지 않고 그렇다고 거절 되지도 않은 채 시간만 계속 끌고 있는 것도 둘 다 같았다. 영주권만 나오면 중국에 가서 딸아이를 데려오겠다는 목표역시 같았다. 만약 일기를 쓴다면 이 둘은 일기도 따로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늘 같이 먹고 같은 집에서 같은 시간 같이 일어나고 같은 직장에서 같이 일을 한 뒤 같이 퇴근하여 같이 시장보고 같은 시간에 잠이 드니 하루는 일기를 강여사가 쓰고 그 다음날은 문여사가 쓰는 식으로 해도 무방할 듯 했다. 늘 똑같던 이들의 일상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시작은 영주권에서 부터였다. 두 사람 다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이유로 영주권 신청을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강여사님은 영주권을 받았는데 문여사님은 계속 연기가 됐다. 주위 사람의 소개로 같은 시기에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강여사님의 남자친구는 잘생긴 외모에 공부도 많이 한 회계사였는데 문여사님이 소개 받은 남자는 외모는 물찬 제비마냥 번드르 했지만 알고 보니 여자들 돈 뜯어 기생하는 양아치였다.
처음에는 지, 입으로 비즈니스컨설팅 사업을 한다고 했는데 문여사 표현을 빌리자면 “사업은 개뿔?” 이였다. 강여사님 남자친구는 강여사에게 정성을 다했다. 소형차 이지만 차도 사주고 명품 가방도 선물하곤 하더니 어느 날엔가 콩알 만 한 다이아가 박힌 엄청나게 비싼 반지를 선물 하면서 청혼을 했다. 문여사의 경우 양아치와 처음에는 모르고 살림을 차렸는데 알고 보니 설상가상 이라고 양아치에게는 시퍼렇게 눈뜨고 있는 부인과 새끼들이 3명이나 있었다. 총각 이라고 속이더니 갈수록 태산 이였다. 사업상 어떤 계약이 체결되면 큰돈이 한꺼번에 나온다고 하며 나중에 배로 갚아 주겠다고 꼬득여 뜯어간 돈이 10만불 가까이 되는데 이 돈마저 떼이고 말았다.
강여사는 LA에서 제일 비싸다는 APT에 신혼살림을 차렸고 새남편의 권유로 일도 그만두고 전 남편의 동의를 얻어 딸도 데려왔다. 다행히도 새남편도 딸에게 무척이나 다정했다. 한마디로 “고생 끝! 행복시작!”이였다. 반면 문여사님은 양아치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어떻하든 사생결단 안 떨어지고 문여사의 남아있는 돈을 마저 쪽 ~ 빨아 먹으려는 양아치의 집념은 대단했다. 모처럼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제비로서의 프로의식이 강한 양아치였다. 문여사는 속는 줄 알면서도 ‘나불 나불대는 기막힌 말솜씨’의 양아치에게 남은 돈마저 뺏기고 말았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아깝지도 않아? 이제 몇만불만 더 집어넣으면 대박(?)이 터질거고 그러면 내가 들어간 돈의 배 이상으로 갚아 줄 건데 너무 아깝잖아?” 라고 나불대는 양아치의 꼬득임 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뭐에 홀린 듯이 남은 돈을 탁탁 털어주고만 것이다.
프로제비로서 양아치의 프로의식은 대단했던 것이다. 문여사가 양아치와 밀고 댕기고 있을 때 강여사는 여러 번 문여사에게 양아치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권유를 했건만 문여사가 남은 돈을 양아치에게 주려하자 “너 미쳤니? 아니 된다! 너 왜 그러니?” 하며 단호하게 말렸다. 하지만 끝내 말을 듣지 않자 생전 처음으로 둘이 대판 싸우고 만다. 문여사는 친구가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것을 처음에는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었지만 자꾸만 꼬여만 가는 자기의 처지와 비교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슬슬 부아가 치미는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오해가 쌓여갔고 ‘흥! 지가 언제 적부터 귀부인 사모님이라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점점 건방져 지고 있다!’ 라는 생각을 했고 강여사는 자꾸만 망할 짓을 해가는 친구 문여사가 안타까워 애써 말려보았지만 언제 부터인가 삐딱하게 자신의 말을 곡해하는 친구가 피곤해 지기 시작했다.
달라진 두 사람의 환경은 두 사람 사이에 오해를 만들고 끝내 대판 싸운 끝에 평생 같이 해온 우정을 순식간에 끝내고 말았다. 지금 강여사는 행코팍의 으리으리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두고 살며 고급 승용차로 딸 등하교 돌봐 주는 게 일이고 문여사는 쪽방 같은 골방하나를 세내어 살면서 옛날과 다름없이 지압소 에서 일하고 있다, 십 여 년 사이에 너무도 달라져버린 엇갈린 운명 이였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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