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복과 재복을 겸비한 남자
박선생은 자동차 매매업으로 큰 성공을 이룬 분이다. 한국에서 공업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양대 공대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당시 인문계가 아닌 공고에서 괜찮은 대학에 진학 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 정도로 어려웠 건만 불굴의 노력으로 이룩한 쾌거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은 생각도 못하고 공고 졸업 후 취직이나 하려했지만 학교 수석자리를 늘 차지하고 머리도 영특한 박선생을 학교에서 특별 배려하고 지원하여 이런 결과를 낳았다. 대학 재학 중 군대를 다녀오고 졸업한 뒤 직장 생활을 하다 미국 지사에 파견 근무하는 기회를 얻었고 이때 어려서 이민 온 부인을 만나 결혼하여 미국에 눌러 앉게 되었다. 부인은 의류 업으로 대성한 장인의 막내 딸 이였다. 처음 이들이 교재 할 때 처갓집 에서는 박 선생을 탐탁치않게 여겼다. 딸만 다섯인 딸부자 집 막내딸이 집안도 한미한 박선생에게는 과분하다고 여겨서 이다. 손위 동서들은 모두가 의사, 교수, 변호사, 굴지의 금융회사 에널리스트,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은 큰 사업가등 이였는데 이들에 비해 막내딸의 남자친구는 이에 크게 못 미친다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내딸이 죽자 살자 고집을 피우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대로 어쩔 수없이 둘의 결혼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박선생을 필자가 만났을 때 박선생의 팔자를 보고 필자가 건 낸 첫 마디는 “처복과 재복이 충만한 팔자를 지니셨군요!”였다. 박선생의 팔자는 신왕하고 관살이 미약하며 재성이 있어 식상을 재성으로 화하게 하며 다시 재성이 관살을 생조하는 구조였고 이런 사주팔자는 처복과 재복을 두루두루 겸비하기에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이다. 결혼 후 박선생님은 얼마간 직장생활을 계속하다 대학 동창과 함께 작은 무역업을 시작하였고 여기에서 작은 성공을 거둔 뒤 자동차 수출 입 업을 시작한다. 사업은 점점 커져 딜러쉽을 따서 자동차 판매업을 하면서 중고차 매매업과 자동차 렌트 사업에까지 뛰어든다. 이리 저리 수완을 부려 회사부지도 사들이고 건물도 사들이는 사이 이제는 단단한 중견기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가정도 매우 행복했다. 1남 2녀를 슬하에 두었는데 부인의 가정교육이 철저하여 모두 예의 바르고 학업성적도 우수한데다가 여기서 태어난 애들 같지 않게 한국말도 아주 능숙했다.
집에서는 한국말을 쓰도록 교육했고 특이하게도 한국 연속극이나 한국 만화영화를 어려서부터 늘 일정한 시간 시청시켜 한국어 교육을 시켰다. 억지로 강제하지 않아도 이런 방법으로 한국의 정서를 접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준 것이다. 박선생은 부인의 권유로 한국에 있는 동생들도 불러들여 미국에서 자리 잡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큰 동생을 처음 불러들여서 리커스토아에 취직시켜 몇 년간 일을 배우게 한 뒤 가게를 차려주었고, 둘째 동생도 불러서 자동차정비 기술을 배우게 한 뒤 작은 리페어 샵을 차려주어 먹고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막내 여동생은 간호학교를 다니게 하여 간호사로 취직하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끝으로 연로하신 시부모님을 집에서 모시고 정성껏 모셨다. 처갓집에서는 ‘지지리 궁상떠는 떨거지들 죄다 불러들여서 우리 딸 등골 빼먹는다.’며 성화였지만 착한 부인은 이런 소리는 들은 척도 안하고 시집식구들에게 정성을 다하였다. 친형제인 남편보다도 더 시집식구들을 더 챙기는 마음이 고마웠다. 자식들 양육도 모범적이고 남편과 시집식구들을 자신의 몸보다 더 챙겼다.
봄, 가을로 보약을 지어서 시부모 건강을 챙기고 집에 가정부도 있지만 식구들 먹는 음식은 꼭 자기 손으로 손수 만들어 먹였다. 귀하디 귀하게 자란 부잣집 막내딸이건만 그런 티를 눈꼽 만치도 보이지 않고 식구들에게 헌신적 이였다. 자신의 친부모보다도 시부모를 더 챙기고 자신의 친형제보다도 시집식구인 시동생, 시누이를 더 챙겼다. 친정엄마 조차도 “저년이 뭐가 씌여도 단단히 씌인것 같아! 어떻게 지 부모 형제보다 시댁을 그리 끔찍이 챙기는지 몰라!”하며 혀를 찰 정도였다. 박선생은 이런 부인이 너무도 고마웠다. 자녀 교육에도 성공하여 첫아인 큰딸은 의대 졸업 후 내과의사가 되었고 큰아들은 법대에 진학시켜 변호사로 만들었고 작은아들은 코넬대학에 재학 중인데 장차 경제전문가로 진출할 예정 이였다.
박선생이 부인을 처음 만난 것은 지인의 소개로 였다. 부인을 만나기전 데이트하던 여성이 있었는데 아주 보기드믄 미인 이였다. 허나 성격이 너무 이기적이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깍쟁이’였다. 여자 친구의 이런 성격 때문에 크게 다투고 사이가 서먹서먹할 즈음 지금의 부인을 소개받게 된 것이다. 인물은 전 여자 친구에 비해 다소 떨어졌고 통통한 체형 이어서 처음에는 마음이 별로 가지 않았다한다. 하지만 배려심이 깊고 무엇보다도 착한 것 같아 호감이 조금씩 가게 되었는데 조금 가까워지려는 시점에서 전 여자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다시 사귀어보자는 제안 이였다.
박선생은 지금의 부인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때 많이 갈등했다고 한다. 누가보아도 혹하는 미모를 지닌 여자 친구를 포기하기가 너무 아까웠다. 하지만 ‘이쁘기만 하면 뭐하나? 맨날 양양대며 자기만 위해 달라고 시도 때도 없이 트집을 잡아 사람을 괴롭히는데... 인물은 다소 떨어져도 만나면 편하게 배려해주는 여자가 더 낮지 않을까?’ 고민 끝에 지금의 부인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결정이 박선생의 인생을 확 피게 만든 것이다. ‘순간의 결정이 평생을 좌우 한다’는 말이 있듯이 순간의 작은 선택이 자신을 파멸시키기도 하고, 성공과 행복의 길로 들어서게도 하는 것이다.
지극히 운이 좋은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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