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뭐니해도 마누라가 최고
일전에 70代중반의 한 남성분이 필자를 방문하였다. 입성이 깨끗하고 피부가 노인답지 않게 뿌옇고 중절모가 어울리는 선비풍의 신사였다. 전부터 필자의 칼럼을 빼놓지 않고 읽어 오셨다고 하며 진즉에 한번 방문하고 싶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연되어 이제야 오게 되셨다 하신다. 생년월일시를 물은 즉 48년 음력 8月 28日이라하고 시는 오전 참 나갈 시간이라 하여 巳 時로 추정되었다. 고로 사주팔자는 戊子年 辛酉月 戊午日 丁巳時가 되었고 대운의 흐름은 순행하여 壬戌.癸亥.甲子.乙丑.丙寅.丁卯로 흐르며 대운수는 8이다.
이 사주는 戊土日干(무토일간)을 시주(時柱)와 일지午火가 생하여 신강사주이다. 연지에 있는 財(재) 子水는 왕토에 눌려 심하게 미약하나 월주의 상관이 왕성하니 戊土의 왕성한 기운을 금으로 바꾸고 이것이 다시 水의 기운을 생조하니 水의 기운이 오히려 역전 되었다. 역술초보자의 경우 이점을 놓치고 이 양반의 재물운이 미약하여 가난뱅이 팔자라 잘못 오진 할 수 도 있다. 사주구성으로 보아 가난한 집안 출신이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큰 부자임을 알 수 있다. 다만 丙寅 대운인 58세~67세 사이가 불안하다. 이때는 화의 기운이 토를 생조하고 상관을 억제하니 생명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는 시기이다.
팔자를 다시 한 번 일람하고 난 뒤 필자 왈 “부모.형제 덕은 없는 팔자이고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자수성가하여 거부가 되는 전형적인 팔자인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은 즉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거부까지는 아니고 먹고 살만한 정도지만 자수성가하셨다는 말씀은 맞습니다.”라고 하며 겸손하게 치레한다. “그런데 58세 이후에 운의 흐름의 불안하여 이때 이후 생명의 큰 위협을 느끼셨을 터인데 다행히도 이운을 무사히 넘기신 것 같아 천만 다행입니다.”라고 하니 짐짓 놀라는 표정이시더니 “그런 것도 팔자에 다 나옵니까? 거 참 신기한군요!”라고 하시며 놀라워한다.
이분은 옛날 망우리 공동묘지가 있던 큰 언덕을 넘어 위치한 경기도 양주 교문리에서 빈농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나셨다. ‘가난한 집에 자식은 많다.’는 옛말처럼 가난한 살림에 식구들만 북적이니 가난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다닐 형편도 못되어 초등학교 졸업 후 학력인정 공민학교 몇 년 다니다 학업은 막을 내렸다. 어려서부터 부지런한 성격 이였고 성격도 적극적 이여서 어린나이에 월부책 장사로 나선다. 지금 식으로 이야기하면 북 쎄일즈맨이 된 것이다. 서울시내의 빌딩의 사무실로 다니며 회사원들에게 이런저런 전집 팜플렛을 펴놓고 월부로 구입할 것을 권했다. 다행히도 낮이 두껍고 언변이 좋아 실적은 사무실에서 항상 상위권 이였다.
문제는 사무실 빌딩에 들어갈 때인데 당시 빌딩수위는 금테 두른 모자에 제복을 입고 위세가 당당했다. 이런 위엄(?)있는 수위들을 피해 숨다시피 빌딩에 잠입하여 신나게 쎄일을 하고 있다가도 수위가 나타나 잡히면 겨우 성공한 할부 계약서도 다 뺏기고 얻어맞기 일쑤였다. 경력이 쌓이다보니 요령도 생겨 당시 귀하디귀한 박카스 병을 Box째 내밀어 안기고 봐줄 것을 부탁하면 수위들은 “높은 분한테 들키면 나만 혼나니깐 요령껏 잠깐만 들어갔다가 시간 끌지 말고 얼른 나와!”라고 당부하며 못이기는 체 출입시켜주었다. 이렇게 뇌물을 바치고 들어간 빌딩에서는 잠깐이 아니라 하루 종일 꼭대기 층부터 맨 아래 층까지 방 하나도 빼지 않고 영업을 했다.
뇌물을 먹여 놓았으니 지도 어쩌지 못 하리라는 배짱 이였다. 이런 영악한 처세와 현란한 말솜씨, 두꺼운 낮 덕으로 월부책장사로 돈을 꽤나 모았다. 여기서 모은 돈으로 자신이 월부책 판매 사무실을 열었다. 사원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쌓은 쎄일즈 요령을 가르쳐 주며 판매를 독려하였다. 월부책 장사들도 각기 자신의 전문분야가 있어 이분처럼 빌딩을 전문으로 타는 사람(빌딩 타기라는 그들만의 속어), 빈집 아줌마 타는 사람(어감이 좀 그렇지만 집에서 살림살이하는 부녀자들을 집중 공략하는 세일즈를 이름), 대학에 출강하는 사람(대학 켐퍼스 구석에 진열대를 펴놓고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듯 파는 쎄일즈를 이름) 등등 자신의 전문분야도 각각 이였다.
아무튼 월부책사업으로 돈을 꽤나 모았고 이 돈으로 인쇄소를 인수했다. 당시는 달력이 꽤나 귀했는데 고급용지에 인쇄된 달력이 고급선물로 각광받던 시기여서 최고급으로 찍어낸 달력으로 크게 히트를 쳐서 여기서도 많은 돈을 모았다. 한편으로는 집이나 땅을 사고팔고 하는 투자에도 나섰고 여기서 대 히트를 쳤다. 이러는 사이 나이도 들어가고 자식들도 커가자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훌쩍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는 대형 마켙을 운영하며 건물도 여러 채 사두곤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 지더니 덜컥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때가 필자가 말한 丙寅대운 초반경이였다.
몇 일째 의식을 잃고 병원에 누워있는 그를 보고 의사는 가족들에게 가망이 없으니 어서 장례준비나 하라고 했고 가족들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는지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헌데 문제는 눈을 뜰 수 없고 말을 할 순 없어도 이들의 대화가 누워서 다 들리는데 안타까워 미칠 지경이라는 것 이였다. 이들이 진짜 호흡기를 때버리면 영락없이 죽을 판이라 젖 먹던 힘을 다하여 힘껏 소리치려 발버둥 치다 눈이 번쩍 떠졌다한다. 아슬아슬하게 죽을 고비에서 벗어났고 마비됐던 팔과 다리도 몇 년간의 피나는 노력을 통해 재활치료에 성공하셨다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눈 감고 누워있을 때 호흡기를 때자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아들놈들이 미워 죽겠다는 거였다. 자신이 빨리 죽어야 아들놈들이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기에 제 애미에게 그리도 강하게 포기할 것을 강권한 것 같다는 생각에 꼴도 보기 싫어지고 울면서 끝까지 반대한 아내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한다. “자식 놈들 아무 소용없어요. 뭐니뭐니해도 마누라가 최고지!” 이분이 필자에게 한 마지막 인사말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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