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문둥이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 보따리 내 놓으란다!’는 말이 있다. 옛날 모두가 배고픈 시절 거지 하나가 부잣집 식사 때에 찾아가 “배가고파 죽을 지경이니 찬밥 덩어리라도 좀 적선 하십시요!”라고 청했다. 마음씨 착한 그 집 며느리가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무말랭이 반찬을 작은 소반에 올려놓고 집 마당 멍석 한쪽에 차려 주었다 한다. 허겁지겁 밥을 먹던 거지가 어느 정도 시장기가 가시자 대청에서 식사를 하던 주인집 식구들의 밥상을 보더니 “에이씨! 너무 하는구먼! 지들은 생선반찬 처먹으면서 나는 무말랭이가 뭐야? 사람을 거지 취급하는구먼!”이라했다 한다. 적반하장이다. 이런 놈에게는 몽둥이가 약이지만 다른 처신으로 응대한 이도 있었다.
옛날 어느 주막집에 한 어여쁜 처녀가 늙은 아버지와 함께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밥과 술을 파는 주막을 하고 있었다. 이 처녀는 마음씨가 아주 고왔는데 애비는 게으름뱅이에다가 돈 밖에 모르는 욕심쟁이였다. 그래서 처녀가 과년한데도 시집 보내줄 생각은 않고 부려 먹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옷도 더럽고 얼굴은 물론 온몸에서 고름이 질질 흐르는 흉측한 모습의 문둥이 하나가 구걸을 하러 주막집에 들렀다. 때마침 욕심꾸러기 애비가 주막을 잠깐 비운 틈 이여서 마음씨 고운 처녀는 그 문둥이를 마루 위에 오르게 하고는 국밥을 넉넉히 말아서 막걸리까지 한잔 곁들여 한상을 차려 주었다. “제 아버지가 아시면 혼나니깐 빨리 잡수고 가세요.” 그러자 그때까지 주막집에서 식사를 하던 나그네들이 더러워서 함께 못 먹겠다며 돈도 안내고 모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쯤 되면 사람이라면 무척이나 미안해 할 텐데 이 문둥이는 남이야 뭐라건 말건 천연덕스럽게 퍼질러 앉아 국밥과 막걸리를 천천히 다 먹고 나더니 한술 더 떠서 처녀에게 한다는 말이 “어이! 이쁜아가씨. 아가씨 덕분에 오늘은 잘 먹었지만 내일은 또 굶게 될지도 모르니 이왕 좋은 일 한 김에 아예 돈도 몇 푼만 주게나!”라고 했다. 마음씨 고운 처녀는 아무 말 않고 동전 몇 푼을 집어다가 문둥이에게 주었다. 이렇게 해서 문둥이는 좋아라하고 어디론가 가버렸는데 집에 돌아오다 투덜거리며 나가는 나그네들에게 들어 이 사실을 알게 된 애비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니? 이년이 주막을 망해먹을 심산인가? 그깟 문둥이 때문에 손님도 다 내쫒고 밥과 술에 더해 돈까지 주었다고? 이년 한번 죽어봐라!”라고 하며 매질을 심하게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고나서 며칠 후 처녀가 혼자 있을 때 또 그 문둥이가 와서 구걸을 했다. 그렇게 혼이 났건만 마음씨고운 처녀는 전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친절하게 문둥이에게 전처럼 똑같이 국밥을 넉넉히 말고 막걸리까지 한잔 곁들여 대접을 했다. 그런데 이 문둥이가 국밥을 먹다말고 갑자기 처녀를 불렀다. “이봐! 아가씨. 이 국밥에 파리가 빠져있네 난 아무리 빌어먹더라도 이렇게 더러운 국밥은 먹을 수가 없으니 다른 걸로 바꿔주게!”라고 요구했다. 처녀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가서 새로 상을 보아서 내 주었는데 이번에도 또 처녀를 불러 호통을 친다. “이번에도 또 파리가 빠져 있구만!”하더니 문둥이는 고름이 질질 흐르는 손가락으로 국밥을 헤짚더니 파리라는 것을 처녀에게 내민다.
“봐! 이게 파리가 아니고 뭔가? 아무리 나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런걸 나에게 주었으니 아가씨는 그 벌로 나대신 이 파리를 받아먹게!” 세상에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착하기만한 처녀가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어쩔 줄 모르고 있자 문둥이가 갑자기 슬픈 표정을 하고 “이제 보니 아가씨도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른 게 없구먼! 속으로는 남들처럼 내가 더럽고 징그러운데도 겉으로만 안 그런 척 했던거야!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공연히 세상에는 나를 정말로 반겨주는 사람이 있구나하며 감동했었던 거야!” 이렇게 처녀를 윽박질렀다. 마음씨 착한 처녀는 이렇게 슬퍼하는 문둥이를 보고 문둥이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문둥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문둥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해서 눈 딱 감고 문둥이의 손가락에서 파리를 받아 꿀꺽 삼켜 버렸다. 그런데 문둥이 손에서 파리를 받아먹는 순간 처녀는 갑자기 입안에 생전 처음 맡아보는 감미로운 향기가 퍼지는 걸 느꼈다. 그러자 그런 처녀를 지켜보던 문둥이가 이번에는 국밥을 내밀려 “자, 이왕 나를 기쁘게 할 양이면 이 국밥까지 마저 먹어보게!”라고 했다. 처녀는 크게 마음을 움직여 문둥이가 권하는 대로 그 자리에서 국밥을 깨끗이 다 먹었다. 처녀가 국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깨끗이 비우자 처녀의 몸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하면서 온몸이 눈부시게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그 때 앞에 있던 흉측한 모습의 문둥이도 어느새 모습이 변하여 학처럼 단아한 신선이 되어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처녀의 손을 잡고서는 “네가 조금 전에 먹은 것은 파리가 아니라 선단(仙丹)이다. 너는 원래 전생의 선녀였으나 선계(仙界)에서 죄를 범해 그 벌로 인간세계에 쫓겨 온 몸 이였는데 이제 선단을 먹고 이제 다시 선녀가 되었다. 자 너의 착한 마음으로 벌도 풀렸으니 더 이상 인간세상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 나와 함께 다시 선계로 가자구나!” 이렇게 말한 뒤 처녀의 손을 잡고 훨훨 날아올라 생로병사와 윤회의 고통이 없는 선계로 갔다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사람을 외양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뻔한 이야기보다는 이 세상에는 숨어사는 진정한 도인이 많기에 아무리 초라한 모습을 한 이라도 선입견으로 멸시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과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밀라’는 성경의 용서의 관용 ‘참을 (忍)인 자 세번이면 살인을 면 한다’는 나를 도발하는 자에 대한 인내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