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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효자(孝子)이야기

2022.03.30

 




                     효자(孝子)이야기 


 효(孝)는 人間으로서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바탕이다. 인간이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여러 가지 도리 중 첫 번째가 부모에 대한 효도(孝道)인 것이다. 당연한 이 도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필자는 알면서도 제대로 행치 못하니 不孝子 임이 틀림없다.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부모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식들이 커서 독립해 나가고 나자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됐다. 이런저런 핑계로 자주 문안인사 드리지 못하다 어쩌다 선심 쓰듯 전화를 드리면 유선너머 저쪽에서 어쩔 줄 모르고 어린애처럼 반가와 하시는 구순 노모의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필자에게 통 연락이 없을 때 서운함을 느끼다가도 어쩌다 애비에게 전화를 하면 뛸 듯이 기뻐하며 반가워하는 스스로를 보며 노모(老母)의 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래서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 했나보다. 


충청도 논산에 함적골은 옛 부터 효자마을로 불렸는데 그 사연이 이렇다. 500여 년 전 세종 때 하늘이 낸 효자(山天之孝)가 태어났으니 성은 강(姜)씨요, 이름은 응정(應貞)이라는 이다. 일찍이 태학(太學)에서 공부하여 장안(長安)에 준사(俊士)로 선발되었고 향약(鄕約)을 짓고 강론하는 등 마을 사람들을 모아 여러모로 깨우쳤다. 강응정이 목숨이 위태로운 절대 절명의 위기에 몰린 적이 있었는데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할 때 한명회 등이 강응정을 단종 복위에 가담한 역적이라 몰아서 죽이려 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응정은 무엇보다도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 유명한데 이런 하늘이 낸 효자가 반역에 가담할 리 없다.” 라는 말을 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한다. 


강응정의 지극한 효심에 대해 문헌이 전하는 내용은 이렇다. 부친의 병이 위중하자 강응정은 목욕재계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천지신명께 부친의 쾌유를 기도하였다. 그 정성이 너무도 지극하여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새 천신(天神)이 하강하여 약을 내려 주었다한다. 강응정은 감사함에 눈물을 흘리며 천신이 준 약을 부친의 입에 떠 넣어 드리니 운명이 지경에 이르렀던 부친의 병이 신비한 효력을 보아 점차 쾌차 하였다고 한다. 또한 하루는 부친이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는데 때는 엄동설한 이여서 강물이 꽁꽁 얼어 빙천(氷川)에서 물고기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던 판이라 난감하였다. 하지만 오로지 물고기를 구해 아버님께 드리겠다는 일념으로 땅도 얼고 물도 얼어붙은 이곳저곳을 헤매었으나 아무리 찾아도 하얗게 얼어있는 얼음뿐 물고기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을 부여잡고 냇가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있는데 물속에서 무엇인가 얼음을 툭 깨고 튀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놀라 일어나 다가가 보니 장정 여럿이 달라붙어 깨어도 깨지지 않을 정도의 두꺼운 얼음이 큰 구멍이 나있고 그 구멍 옆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고기가 펄떡거리고 있었다. 여기에다가 그 물고기 뒤를 이어 한 마리, 또 한 마리 연이어 얼음구멍 밖으로 뛰어나와 빙판위에서 퍼덕거리는 거였다. 강응정은 기쁨에 떨리는 손으로 물고기를 바구니에 담아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담아온 은빛 물고기를 정성껏 손질하여 푹 고아서 부친께 드리니 부친은 세상에 둘도 없는 일미(一味)라 하며 맛있게 드셨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부친은 입맛을 되찾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부친은 가끔 물고기 생각이 나면 아들에게 “그 물고기가 먹고 싶구나.” 하였고 강응정은 이때마다 뛰어가 전에 물고기를 구했던 곳에서 물고기를 구해왔는데 신기하게도 첫날 구했던 꼭 그 숫자만큼만 구할 수 있었다 한다. 


이후에 이 물고기가 번식하여 다른 이들도 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 이곳의 명물이 되었다 한다. 이 냇물이 인내(仁川) 냇물이었고 지금 논산군 양촌면 인천(仁川:인내) 물줄기가 바로 이곳이다. 은빛을 띄고 있다하여 은문어(銀文魚)라 하고 강응정의 지극한 효성 때문에 생긴 물고기라 해서 효자어(孝子魚)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물고기는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어느 강에서도 볼 수 없고 오로지 논산군 양촌면 인천(仁川:인내)에서만 서식한다. 이 은문어는 수백년 내려오면서 ‘을문이’로 이름이 바뀌어 불려 지기도 했다. 지극한 효성 때문에 이런 신비한 일이 벌어지자 이 이야기가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고을원님이 알게 되어 결국 임금에게 까지 알려지게 된다. 나라에서는 강응정을 대효자(大孝子)로 표창하고 정각(旌閣)을 세우도록 명령하였다. 지금도 논산군 양촌면 함적골 인근 서원마을에 이 정각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효도도 부모와 자식 간에 손발이 맞아야 한다. 


옛적 어떤 마을에 약간 아둔한 아들이 살았다. 아버지는 늘 자신을 ‘바보 멍충이 같은 자식’이라고 미워했다. 아들이 들으니 인근마을에 큰 효자가 있는데 효자의 행실이 아침이면 아버지가 신으시는 신발이 차가 울 까봐 아버지가 기상하시기 전 자신이 먼저 신어서 따뜻하게 해 드리고, 아버지가 식사를 하시기 전에 꼭 미리 아버지 상위에 국물을 먼저 맛보아 짜거나 싱겁지는 않은지를 알아보고 아버지가 취침하시기 전에 먼저 이부자리에 누워 따뜻하게 해 드린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아둔한 아들도 칭찬받고 싶어 그리하였다. 아버지의 신을 신고 있자 아버지가 노발대발 하며 함부로 버릇없이 애비 신발을 신었다고 야단 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후 아버지 식사 전에 국을 맛보았더니 이 버릇없는 놈이 애비 숟가락 들기 전에 지가 먼저 처먹었다고 노여워 방방 뛰었다. 


아둔한 아들은 자기가 효도를 했는데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끝으로 아버지가 주무시기 전 이불을 녹여 드리려고 이부자리에 누었다가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난리를 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자신을 막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놈이 미쳐도 유분수지 이제 늙은 애비 이부자리까지 탐을 내는구나. 천하의 불효자식아!” 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이리도 달라진 것이다. 이래서 ‘효도도 손발이 맞아야 가능하다’ 했나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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