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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늘어진 팔자

2022.04.08

 





                     늘어진 팔자 


 K씨는 주변에서 ‘팔자가 늘어진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태어나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지금까지 변변한 직업도 없이 무위도식 하였으나 금전적 고통은 겪지 않았고 오히려 풍족한 여유를 지니며 살았다. 일평생을 놀고먹고 ‘여자 꼬시며’ 산 일생 이었고 지금도 역시나 같다. 예전에 필자가 K씨의 사주를 보고 한 첫마디가 “여자 꽤나 울리고 사셨겠습니다. 팔자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으나 평생 제대로 된 직업하나 없이 사나 금전의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요, 평생 여자 뒷 꽁무니나 쫓아다니며 희롱할 팔자입니다.” 였다. 필자가 이렇게 말한 것은 K씨의 사주 속에 일생 재물 복이 풍족하나 사주에 정재와 편재가 동주하는 재성혼잡(財星混雜)한 팔자였기 때문이다. 


K씨는 아버지는 의사이시고 어머니는 대학교수인 유복한 집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은 아버지 뒤를 이어 의사가 되었고 누이는 어머니처럼 대학교수가 되었는데 막내인 K씨만 개차반이 되었다. 머리는 형제 중 제일 좋은데 어릴 때부터 공부에는 도통 흥미가 없고 싸움질과 여자 애들에게만 관심이 높았다. 공부하는 꼴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었으나 워낙 머리가 좋아서인지 그래도 성적은 그나마 상위권은 겨우 유지했다. 자신에 말에 의하면 K씨가 성(性)에 눈을 뜬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한다. 집에서 일하던 식모누나 하고 이때 벌써 첫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음담패설 겸 자랑삼아 필자 앞에서 리얼하게 그 과정을 이야기한 바 있다. 


아무튼 아주 어려서부터 이렇게 홀랑 까진(?) K씨는 중학교 들어가면서 부터는 주변에 눈에 띄는 여학생들을 죽자 사자 쫓아다니는 카사노바가 되었는데, 인물도 좋고 공부도 그럭저럭 잘하고 무엇보다도 배경 좋은 집안의 부잣집 막내아들 이여서 여자 아이들도 꼬임에 잘 넘어왔고 여자아이들 부모들도 교재에 적극 찬성하는 편이어서 작업(?)이 무척 수월했다 한다. 대개 부잣집 막내아들이면 유약한 느낌을 주지만 K씨의 경우 성깔도 매서워 깡다구가 쎄니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 껄렁패들과 어울려 못된 짓은 골라하며 지냈다. 여자애들과 음탕한 짓에 몰두한 결과 시끄러운 일도 있었는데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때 한 번 두 번씩이나 상대 여자아이가 임신을 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중학교 때 사건은 부모님이 상대 아이 부모님에게 백배 사죄하고 결코 적지 않은 배상금을 주고 아이를 지울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 여자 아이는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그 아이 엄마도 이때 한 몫 잡으려는 심사였는지 아이를 낳는데 적극 찬성해서 엄청 시끄러웠는데 그 아이 엄마 뜻대로 웬만한 집 한 채 값에 해당되는 돈을 주고도 빌고 빌어 겨우 해결을 봤다 이러고도 정신 못차리는 K씨를 집에서는 아예 내놓은 자식으로 치부했는데 성적은 그래도 상위권이여서 서울에 있는 그렇고 그런 대학에 입학 할 수 있었다. 


대학 입학 후에는 완전 물 만난 고기였다. 예전에 크게 놀란 것 을 교훈삼아 피임을 철저히 하면서 여자들을 자빠트려 나간다. 이러다 군 제대 후 복학 한 뒤 졸업 학점이 모자라 쩔쩔매다 겨우 졸업 후 그래도 자식이라고 아버지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한국에서 손꼽히는 일류회사에 취직이 되어 무역과 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K씨는 계속 불성실했다. 지각하기 일쑤에다가 사내 여사원들과 염문을 뿌려대다 드디어 입사 2년 만에 해고된다. 이후 직업을 가져 본적이 거의 없다. 회사에서 짤린 뒤 아버지에게 뒤지게 얻어터지고 마지못해 대안으로 떠오른 게 미국 유학이었다. 아버지와 형은 펄펄뛰며 반대했지만 어머니와 누이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미국에 건너온다. 그야말로 도피성 유학이었다. 


미국에 와서 시시껄렁한 대학에 등록을 해놓고 어머니가 부쳐주는 돈으로 초호화판 유학생활이 시작되었다. 노는 물이 글로벌 해진 것이다. 한국여자, 백인여자, 흑인여자, 남미여자, 유럽여자 가리지 않고 인물 된다 싶으면 그저 막 자빠트리고 다녔다. 미국에서 첫 번째 결혼을 했고 바람 피 다가 이혼했다. 엘러멘터리스쿨 교사로 양가집에서 곱게 자란 참한 규수였는데 K씨의 번드레한 외모와 언변, 그리고 집안 배경을 보고 넘어갔다가 인생조진 셈이다. 다행히도 애가 안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두 번째 결혼은 전문 피아노 연주자였는데 두 번째 부인과도 바람 피 다가 또 이혼 당했다. 이때도 다행히 아이가 없었다. K씨말로는 자기가 하도 여기저기 뿌리고 다녀서 씨가 부족 해져서 아이가 안 생긴 것 같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고는 웃었다.


세 번째 결혼이 지금 현재의 부인이다. K씨보다 여섯 살이나 연상인 노처녀 였는데 성병 치료차 병원 갔다가 만났다. 부인은 간호사였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둘이 살고 있었다. 인연이 될 라고 해서였는지 K씨도 자신보다 나이가 여섯이나 연상인데도 마음이 끌렸고 노처녀였던 부인도 비록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한 남자이지만 언변 좋고 인물 좋고 집안 좋은 것에 호감을 느끼고 부부가 되었다. 여기서 아들이 하나 생겼다. K씨는 그동안 사업을 해본다고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조르고 졸라 목돈을 타 온 게 2번 이였다. “유산 미리 준다고 생각하고 좀 밀어줘요 엄마! 사내새끼가 계속 놀 순 없잖아?” 두 번에 걸쳐 집 두 채 값 정도 얻어 와서 사업 한답시고 사업은 뒷전이고 룸싸롱에서 지랄발광 분탕질 하며 다 날리는데 3년 정도 걸렸다. 


K씨의 일과는 이렇다. 오후 2시경이 기상 시간이다. 2시쯤 일어나 주방에서 아침을 끼적거린다. 아침 먹고 나면 오후 3시경이다. 대충 씻고 슬슬 외출을 한다. 주로 비슷한 것들끼리 모이는 별 다방 이다. 별 다방에서 낄낄거리며 음담패설 주고받다가 당구장으로 간다. 당구 몇 시간 치다보면 밖은 어둠이 깔린다. 내기 당구니 이긴 사람이 저녁을 낸다. 저녁 먹으며 술을 반주삼아 걸친 후 밤무대로 진출한다. 형편 나쁠 때는 가라오케나 노래방이요, 백수건달 친구 중 횡재하여 돈이 좀 있는 사람이 있으면 룸싸롱 행이다. 아무튼 가라오케든 룸싸롱이든 가서 술 먹고 여자들과 흥청거리고 운 좋으면 2차도 간다. 365일 거의 변함없는 K씨의 생활이다. 돈은 마누라가 버는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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