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gudowon님의 다른글 더 보기 :: 총 1044
목록 닫기목록닫기 목록 열기목록열기
문화/창작

최선을 다한 25년 뒤 팽(烹) 당하다.

2022.04.12

 




                최선을 다한 25년 뒤 팽(烹) 당하다.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토끼사냥이 끝난 뒤 사냥에 공을 세운 개를 烹(삶을 팽) 즉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실컷 이용해먹고 상을 주기는커녕 차버린다는 말로 이런 배신을 당하는 것을 흔히들 ‘팽당했다’고 표현한다. 세상 살다보면 이렇게 팽 당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보거나 또는 자신스스로 당하기도 하지만 팽을 당해도 너무도 처절히 팽 당한 사내가 있어 여기에 소개코저 한다. 필자의 지인(知人)이며 고객이기도 한 이성실氏는 50대 중반의 남성분이다. 머리는 약간 둔한편이지만 누구보다도 뛰어난 성실성과 책임감이 강한 분이다. 이분의 부인은 피곤해氏로 완전 공주과 여성이다. 


두 분은 20대 중반경 결혼했는데 날나리였던 피곤해씨가 연애한 번 못해 본 이성실氏를 유혹해서 벌어진 결과였다. 남자관계가 난잡했던 피곤해氏는 임신중절 수술도 여러번했고 남자라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치뤘던 선수였는데 어쩌다 남자에게 차이자 홧김에 어리버리한 이성실氏를 유혹해서 일 벌리고 결혼을 해버린(?)것이다. 술을 진탕먹고 취한 척 비틀거리며 여관으로 유인한 뒤 여러 야한 자세로 유혹하여 자신을 덥치게 한 뒤 다음 날 깜짝 놀란 척하며 “흑흑흑! 술 먹여 정신잃게 한 뒤 강제로 욕(?)을 보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책임지세요! 안그러면 나도 가만 있지 않겠어요!” 까딱 잘못했다가는 성폭력범으로 몰려 감옥가게 생겼기에 결혼으로 책임졌다. 피곤해씨는 선천적으로 게을렀다. 


결혼하고 나서 자기 손으로 돈 한번 벌어본 적 없고 아이들 양육에도 관심이 없는데다가 집안일도 등한시했다. 오로지 하는 일이라고는 드라마 보기와 쇼핑, 남자친구들 만나 재미보기 밖에 없었다. 미련스럽게 성실하기만한 이성실氏는 밤낮 돈 벌어다 주는 것 외에 피곤한 몸으로 집안 청소에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정신이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아이들 교육을 위해 미국에 이민온 뒤에도 이모습은 변화가 없었다. 한국에서 작은 보일러가게를 운영했던 이성실氏는 수입이 꽤나 좋아 늘 풍족하게 돈을 벌어다 주었고 위인이 워낙 무식하게(?) 성실하여 밤낮 휴일도 없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니 수입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부인인 피곤해氏는 일하는 아줌마까지 두고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늘 불만이 남편의 잠자리 미숙이었다. 하기사 예전에 그쪽 방면으로 프로 같은 남성들만 상대하다 완전 쑥맥이고 체격도 외소한 이성실氏를 상대하려니 가당치도 않았던 거였다. 


남편 모르게 가끔 외식(?)까지 하면서도 양심도 없이 이런 불만을 터트리곤 했다. 미국와서도 이성실氏의 무식한 성실성과 책임감은 변화가 없었다. 어려서 자식들 팽개치고 바람나서 도망간 무책임한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려했다. 어려서 입은 마음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 자식들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으로 표출된듯했다. 이성실氏는 미국에 와서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 프러밍 일을 했다. 이곳저곳 한인타운 사방을 다니며 광고 스티커를 붙였다. 화장실, 주방, 등등 플러밍이 필요할 듯한 곳에는 욕을 먹어가면서도 열심히 광고를 해나갔고 일이 들어오면 최선을 다하여 성실히 일을 마치었다.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전화가 와도 득달같이 달려가 수리를 해주었고 일요일에도 변함없이 성실히 득달같이 달려가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손님이 많아져 멕시칸 헬퍼 2명을 두고도 늘 일이 많아 허덕였다. 결국 한인 보조기사까지 고용하여 일을 키워나갔고 수입도 점점 늘어났다. 


머리가 조금 나쁘기는 해도 성실을 바탕으로 돈 버는 재주는 있던 것이다. 처음 이성실氏의 사주팔자를 보았을 때 처음 해준 이야기가 “부모형제 복, 처복은 없지만 돈복은 있어 자수성가하는 팔자입니다.” 였다. 피곤해씨는 미국에 와서도 늘 분주했다. 집안 청소나 빨래 등은 멕시칸 도우미를 시켰고 아이들 음식은 늘 음식점에서 TO GO 해서 먹였다. 지손으로 음식한 번 제대로 해먹이지 않으면서도 늘 짜증내고 피곤해했다. 주 전공인 드라마 보기는 미국에 와서도 변화가 없었고 쇼핑도 변화가 없었다. 날나리 기러기 엄마들과 어울려 골프장도 열심히 다녔다. 골프장에서 날나리 남자들과 함께 골프를 치고 뒤풀이로 음식점에 가서 음담패설로 웃고 떠들며 실컷 즐긴뒤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있는 노래방이나 주점에 가서 이놈저놈 끼고 돌았다. 


이성실氏는 이 세상에 ‘고생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고 부인인 피곤해씨는 이 세상에 ‘즐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이들 부부를 가끔 상담하면서 언젠가 이성실氏에게 넌지시 충고를 해 주었다. “이 선생께서는 너무도 성실하시고 자녀들에 대한 책임감이 지나치게 강한 것 같습니다. 이제 자기 자신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심하게 일을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젊은 시절에야 젊음이 있어 그 피곤을 견뎌내지만 이제 나이가 있으니 좀 쉬어가면서 하십시오. 그리고 취미생활이라고는 전혀 없으시다고 했는데 지금이라도 취미생활하나를 정해서 좀 즐기시면서 사십시오. 특히나 내년에는 건강을 특히나 조심해야 하는 때이니 휴식을 취하며 주의 하십시요!” 이에 대해 웃으며 답하기를 “저야 일하는게 취미인데요 뭘! 휴일날 일안하고 집에 있으면 답답해서 오히려 쉬는게 더 힘들어요.” 라고 한다. 


아무튼 아무일 없기를 바랬는데 일은 벌어졌다. 이성실氏가 과로로 쓰러진 것이다. 그렇게 주의를 주었는데도 명심치 못해 일어난 일이였다. 중풍이 심하게 와서 입이 돌아가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급히 운을 뽑아보니 회복하기 어려울것 같았다. 피곤해氏가 와서 묻기에 거짓을 이야기 할 수 없으니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7년 정도 앓다가 결국 회복 못하고 끝날것 같았다. 피곤해氏는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챙겨서 평소에 그렇게 가고 싶던 한국으로 떠났다. 어마어마한 병원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정신도 오락가락 온전치 않은 남편을 다그쳐 합의이혼까지 했다. 남편뒷바라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한국으로 떠나며 “설마 산 사람을 갖다 버리기야 하겠어요?” 라고 하며 썩소(비웃듯이 웃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다 큰 남매도 처음에는 병원에 몇 번 드나들었으나 엄마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엄마가 한국으로 가버린 이후 콧베기도 볼 수 없었다. 결혼 생활 25년 만에 처절하게 팽(烹)당한 것이다. 그렇게도 스스로를 돌보라고 충언했건만 끝내 듣지 않더니 결국 그리되고 말았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좋아요
태그
인기 포스팅 보기